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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 걱정 없이 오페라를”… 에디슨 축음기 잘 팔린 이유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교수 ‘전염병과 음악사의 영향’ 발표

조선일보

1918년 10월 미국 음악잡지 뮤지컬 쿠리어 1면 하단에 시카고 오페라단의 순회공연이 취소됐다는 기사가 났다. 스페인 독감이 퍼져 수많은 공연장이 폐쇄되고, 음악가들도 공연을 취소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피해 스위스에 있던 스트라빈스키는 돈벌이를 위해 성악가 3명, 연주자 7명만 나오는 음악극 ‘병사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듬해 9월 순회공연에 나섰지만 단원들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모조리 취소했다.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프로코피예프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4개월짜리 연주 여행을 포기했다. 에디슨 축음기는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인플루엔자에 걸릴 위험 없이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광고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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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에 걸릴 위험 없이 다양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에디슨 축음기.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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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 미셸 세르(1658~1733)가 1720년 당시 마르세유에 흑사병이 창궐한 모습을 그린‘마르세유의 흑사병’. 생상스는 전염병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죽음의 무도’를 작곡했다. /위키피디아

최근 경기아트센터가 주최한 ‘코로나19 특별 포럼’에서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음악사에 미친 영향’을 발표, 중세 유라시아를 휩쓴 흑사병부터 지금의 코로나까지 전염병과 음악 사이에 숨은 흥미로운 역사를 포착했다.


14세기 중반 발병한 흑사병은 온몸이 수포로 끓다가 사나흘 만에 피를 토하며 죽는 무서운 병. 사람들은 어두운 감정인 슬픔이 전염병을 일으키므로 즐거운 생각을 해 좋은 피를 촉진해야 한다고 믿었다. 흑사병에 걸렸다 살아난 프랑스 작곡가 기욤 드 마슈도 “음악은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과학”이라며 ‘행운의 치료법’을 만들었다. ‘저녁엔 눈물 흘려도 아침엔 웃는다’는 부제를 붙인 애가(哀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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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흐는 약 300곡의 칸타타를 작곡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00곡이 약간 넘는 정도다.

바흐도 전염병에 맞서는 음악을 남겼다. 1723년작 칸타타 ‘내 몸 성한 곳 없으니’(BWV25)는 당시 10만 목숨을 앗아간 마르세유 대역병의 희생자들을 다독인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경기 음악으로 써서 더 유명해진 생상스 ‘죽음의 무도’엔 흑사병 이후 유럽에 뿌리 내린 ‘죽음도 삶의 일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관념이 녹아 있다. 옛날 사람들은 독거미한테 물려 발작할 땐 와인을 마시고 지칠 때까지 춤추면 낫는다고 믿었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 생상스는 앙리 카잘리스의 시를 토대로 한밤중 해골들이 무덤에서 뛰쳐나와 광란의 춤을 추면서 전염병 공포를 극복하려는 이 곡을 썼다.

조 교수는 지난 5월 밤베르크 심포니가 발표한 디지털 음원 ‘희망의 반성(REFLECTIONS OF HOPE)’에 주목한다. 에두아르트 리사치가 작곡한 이 곡의 부제는 ‘코로나 전염병에 대한 교향악적 답변’. 단원 86명이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연주 모습을 촬영해 합쳤는데,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 올린 사람은 지휘자가 아니라 영상 및 오디오 담당자였다. 곡 중반 단원들은 20개 넘는 각자의 모국어로 “질병” “감금” “백신” 같은 단어를 중얼거린다. 코로나 시대의 경험을 공유하는 퍼포먼스다. 조 교수는 “훗날 코로나 시대의 음악이 나온다면 지금의 위기를 이겨낸 걸 기뻐하는 음악이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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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독일 밤베르크 교향악단에서 첼로 단원으로 활동하며 작곡도 하는 에두아르트 리사치(Resatsch). /밤베르크 심포니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서울대 음대 기악과 및 독일 하노버음대, 파리 고등사범음악원, 말메종 음악원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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