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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려면 자신에게 집요하게 질문 던져야" 옥주현

뮤지컬 티켓 파워 1위, 옥주현 ‘귀르가즘'의 비밀

"즐기고 싶어… 성대 근육 연구하고 음성학 공부"

"무대공포 덮쳐와도… 공연 막간, 복근 운동 100개"

"조여정은 예술 동반자… 운동하며 우정 쌓아"

"핑클 시절, 우린 온실 화초 아닌 들판의 민들레였다"

"뮤지컬은 장기전… 어제 부른 노래 오늘도 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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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로 시작해 최근 ‘레베카'까지. 독보적인 뮤지컬 레이블을 선보이는 현재진행형의 신화, 옥주현./사진=이태경 기자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핑클의 ‘캠핑클럽'을 보며 보냈다. 옥주현, 이효리, 성유리, 이진… 그들과 함께 90년대 IMF 시절을 버티고 2000년대 초 IT버블까지 지내왔다. 당시 인터뷰했던 ‘국민 영웅' 박세리가 핑클의 ‘블루레인'을 부르며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핑클은 다시 없을 만큼 개성과 실력을 갖춘 걸그룹이었지만, 멤버 각자가 새로운 시작을 하며 2002년부터 자연스럽게 활동이 뜸해졌다.


결혼과 이주로 각자 삶을 살던 그들이 오랜만에 완전체로 모여, 캠핑카를 운전하며 먹고 웃고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그들이 좋은 사람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준 것'만으로 감동이 밀려왔다. 한때는 서로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그런 자신이 못나서 자학했던 10대 소녀들. 그렇게 서툴던 젊은 날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마흔 즈음의 여자들은,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주 눈물을 쏟았다.


특별히 옥주현이 눈에 밟혔다. 감정에 복받쳐 자주 울던 그녀는 "그때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몰랐다. 이제는 팬들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정이 많았고 진지했고 무엇보다 프로페셔널했다. 생활인의 시각에서 내일을 걱정하는 멤버들에 비해, 그녀는 자주 현재의 환희에 빠져들었고, 그 몰입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어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다. 멤버들과 오랜만의 공연 준비를 위해 녹음실을 찾았을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보컬 레코딩을 코칭하는 모습이 어찌나 믿음직스럽던지.


옥주현은 핑클 이후 라디오 DJ를 거쳐 2005년부터 뮤지컬 무대에 섰다. 현재 ‘광클릭 완판 신화'를 이어가는 공연계 티켓 파워 1위의 히로인. ‘아이다’로 시작해 ‘레베카'로 독보적인 뮤지컬 레이블을 선보이는 현재진행형의 신화다. 핑클이 추억의 걸그룹으로만 머물지 않은 것은, 이효리의 개인적 포스만큼이나, 20년이 넘도록 날로 성장해온 현역 아티스트 옥주현의 덕이 컸다.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으로 관객들에게 최상의 ‘귀르가즘'을 선사하는 옥주현에게 만남을 청했다.


가수의 목소리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무형의 음원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주술의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나는 옥주현의 뮤지컬 무대에서 깨달았다. 평소 시도 때도 없이 발작적으로 노래하는 이 서구적인 장르에 닭살 돋아 하던 나는, ‘레베카' 공연이 끝나고 한동안 ‘레베카~’로 시작하는 댄버스 부인의 어두운 환청에 기쁘게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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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만나서 함께 떠난 핑클의 캠핑 여행기. 옥주현은 말없이 공들여 요리를 해내곤 했다.

어떤 질문을 받을까 설렌다는 말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지난 여름에서 가을까지, 핑클 멤버들의 ‘캠핑클럽’을 보며 위로받았어요.


"(밝게 웃으며)예전 친구들과 나를 돌아보는 거, 흔치 않은 행운이잖아요. 왜 그때는 그렇게 서툴렀던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한지… 하하. 저도 그 여행으로 툭 털어놓고, 많이 위로받았어요."


핑클 활동 기간은 4년인데, 걸그룹이 무르익던 초기 시절이라 그런지 애틋한 추억이 많았지요?


"우리가 ‘센 언니'들이었어요(웃음). 매니저 오빠가 나중에 그랬어요. ‘너희들은 따로 있으면 괜찮은데 같이 있으면 악마같이 무서웠다’고. 각자 다른 무기로 천하무적이었어요. 아이돌 가수들은 한 끼 먹고 버틴다는데, 우리는 달랐어요. 배고프면 악에 받쳤죠. 약간 동물 같고 원초적이랄까. 하하하."


옥주현을 보면 나는 항상 ‘드림걸스'의 제니퍼 허드슨이 생각났다. 요정처럼 가녀린 소녀들 사이에서 글래머러스한 몸으로 목청껏 노래하던 자의식 강한 소녀. "제가 6으로 시작되는 체중을 가진 최초의 아이돌이었을 걸요? 하하." 옥주현이 배가 꺼질 것 같은 우렁찬 목청으로 웃었다. 스케줄에 쫓겨 급하게 먹고 체한 날들이 많았고, 협찬받을 옷도 없어 여러모로 성격이 나빴던 시기였다고.


아이러니지만, 옥주현은 걸그룹 이후 자신의 진가를 아는 진정한 백조로 거듭났다. 요가와 발레로 건강 미인이 되고, 압도적인 성량과 노력으로 믿고 보는 뮤지컬 톱스타가 되는 과정은 ‘아이돌의 성년식'을 보여주는 모델처럼 보인다. 18살에 데뷔했던 요정이 어느새 마흔 살의 디바가 됐다. ‘아이다' ‘엘리자벳' ‘캣츠' ‘스위니 토드' 그리고 ‘옥댄버(옥주현의 댄버스 부인)’로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까지.


특히 옥주현이 무대에서 ‘레베카’라는 이름을 발성할 때마다, 그 매혹적인 유령이 산 자들의 마을을 덮치고 포효하는 것처럼 들렸다. 영화 ‘디아더스'의 니콜 키드먼을 연상시키는 고딕적인 자세는, 마른 그녀를 더욱더 길고 앙상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검은 드레스는 ‘여주인’ 레베카에 대한 상복으로 보였다. 정확하고 우아하게 꽂히는 대사를 들으며, 나는 옥주현이 안톤 체호프의 연극에 출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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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월드 클래스 뮤지컬 ‘레베카'. 옥주현 캐스팅은 관객들의 n차 관람으로 유명하다. 모든 공연 분장을 직접 하는 옥주현.

지난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으로 무대에 선 당신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전기가 오른 것처럼 보였어요. 객석도 ‘옥댄버'의 소리에 감전되고 싶은 ‘광신도들’의 열기로 가득 찼죠(웃음).


"(미소지으며)그랬죠. 무대에 오르면 올림픽 경기장에 선 선수 같아요. 제가 쓰는 목 근육은 정말 섬세하고 얇거든요. 다칠까 조심하면서도, 최고 수준까지 끌어서 쓰죠. 전 히치콕이 만든 영화 ‘레베카'는 일부러 안 봤어요. 거기서 댄버스 부인은 좀 꿈꾸는 듯 하다죠. 그래서 오로지 원작 소설을 파고들었어요. 댄버스의 습관, 움직임, 말투를 전부 내 스타일대로 디자인하고 싶었어요."


‘디자인’이라는 발음이 명료하게 들렸다.


연기한다가 아니라 디자인한다는 표현을 쓰는군요. 그건 소리뿐 아니라 몸의 형태도 세공한다는 의미겠지요?


"네. 댄버스는 덩어리진 후덕한 몸이 아니라 마르고 곧은 몸이죠. 탄수화물을 조절하고, 척추를 곧게 하기 위해서 발레를 시작했어요. 유령 같고 창백하고 볼이 패이고 꼿꼿한 여자가 무너질 때, 그 충격이 얼마나 배가되겠어요? 누군가 날 부를 때도 턱이 아니라 몸 전체가 움직이도록 습관을 들였죠."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으로 화려한 남성 편력을 자랑했던 레베카는 죽은 이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옥주현은 레베카를 ‘연인'으로 설정한 채 댄버스 부인을 연기했다. "가령 제 대사는 이런 식이죠.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레베카와 침대에서 당신들 모두를 비웃었어요. 나의 레베카는, 나의 레베카는...’ 제게 댄버스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사람이었어요. 차갑지만 만지면 데이고 마는…"


발성의 디자인은 어떻게 하나요? 객석에서 당신 노래는 마치 다른 마이크를 쓰는 것처럼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리더군요.


"이번엔 영국 영어의 악센트를 한국말의 어조에 적용했어요. 패티김 선생님의 음성 이미지를 응용해서 차갑고도 다크한 느낌을 살렸죠. 가창을 논할 때 사람들은 대개 진성 가성 두성 흉성처럼 발성으로만 얘기하는데, 저는 언어 그 자체가 갖는 이미지를 분석해요."


오랫동안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부딪히는 이미지를 관찰해왔다고 했다. "성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음색을 고급스럽게 낼 수도, 파삭하게도 낼 수도 있답니다. 그 질감을 알면 디테일이 풍부해지고, 소리에서도 4D처럼 향기가 나죠."


옥주현이 노래할 때는 실제로 무대에 블랙 올리브나 진한 적포도주 향기가 났다.


그리고 나는 최근 두 편의 영화에서 그녀가 말한 후각적인 사운드를 경험했다. ‘블랙머니'에서 이하늬가 뉴욕 월가의 하이클래스 영어를 구사할 때와 ‘기생충'에서 조여정이 한국어와 짧은 영어를 섞어서 리드미컬하게 속삭일 때. 순식간에 커브를 돌며 공기의 마찰력을 높이는 진동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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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는 소리를 멀리 보내야 해요. 뮤지컬 배우는 마이크 앞에 발음을 선명하게 가져다 놔야죠.”/사진=이태경 기자

혹시 음성학을 공부했나요?


"여정이(조여정)와 그런 주제로 피곤할 정도로 깊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하하. 저는 이비인후과 의사와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귀와 코와 목과 입을 스트레칭한 후, 전체를 연결해서 쓰면 언어의 순환이 일어나서 소리가 쾌적해져요. ‘스위니 토드’의 작곡가 스티브 손드하임은 여러 명이 동시에 부르는 세레나데 곡을 많이 썼어요. 그러면 소리가 섞여서 안 들리는데, 사람들이 물어요. "어째서 니 소리만 정확히 들리니?."


목소리를 크게 냈겠지요.


"아니요. 발성을 크게 하면 망해요(웃음). 한국어 발음은 마무리가 목구멍 뒤에서 떨어져요. 소리가 앞으로 나가기 힘들죠. 영어와 이탈리아어는 천장이 높은 카페에서 수다 떨면 소리가 둥글게 울려 퍼지는데, 한국말은 잘 안 들리니 크게 내서 시끄럽죠. 언어의 구조를 파악하고 속도까지 조절하면, 소리가 정확히 앞에 떨어지도록 발음할 수 있어요. 핀 마이크 앞으로 딱 떨어지도록."


어떻게요?


"ㄴ, ㅁ 등 자음마다 달라요. 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없던 면적을 파는 거예요. 언어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해요. 저는 매일 공연해야 했고, 잘 들리면서도 목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이 비밀을 풀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요?


"질문을 던졌어요. 제가 가는 길을 즐겁게 가고 싶어서요. 이건 집요하고도 피곤한 제 성격 탓이에요. 동시에 저의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20대 때 저는 힘으로만 소리를 지르다 보니 성대 결절이 왔어요. 혹시 성대를 찍어보셨나요?"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며)성대가 이렇게 생겼어요. 여기가 저음, 중음, 고음을 담당해요. 지퍼처럼 생겼죠? 이 부분의 식도가 부으면 소리가 탁해져요. 그래서 공연 전엔 매운 음식도 못 먹죠.


음역대가 체인지되는 순간을 ‘빠샤'라고 하는데, 이때 힘을 많이 쓰면 결절이 오거든요. 이걸 돌려서 수수깡처럼 쓰면 돼요. 저희는 영어나 이태리 말이 아니라 한국어로 노래하잖아요. 그래서 한국어로 빠샤를 하는 순간, 높낮이가 다른 음역대에서 화성과 발음이 선명해지는 법을 찾았어요. 음성학의 우주는 정말 광대해요."


처음 질문은 성대결절이었으나, 결국엔 코와 귀와 악관절의 해부도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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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김과 조수미의 사랑을 받는 옥주현. 뮤지컬 ‘캣츠'의 툼 후퍼 감독은 공식 커버곡으로 옥주현의 ‘Memory’를 유일하게 인정했다./사진=이태경 기자

"사람들은 제게 묻죠. ‘발레는 어떻게 해요? 다이어트는 어떻게 해요?’ 저는 이렇게 묻는 사람의 지속성을 못 믿어요(웃음).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질문하고 그다음엔 ‘뭘 공부하면 되는지?’를 물어야죠. 적성에 맞으면 오래 하고 싶고 오래 하려면 탐구하게 돼요. 계속한다는 건 그냥 숨 쉬듯이 놓지 않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래 한 사람이 보여주는 우주는 깊이가 달라요. 그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찾은 우주예요."


어떤 질문을 좋아하나요?


"저는 이런 질문을 좋아해요. "언니는 어떤 습관부터 들였어요?" 생활에서 무엇을 습관으로 했느냐가 핵심이거든요. 저는 운전할 때 간판을 읽으면서 발음 연습을 해요. 막히는 구간에선 막히는 구강 면적을 계속 팠어요. 그렇게 한개 두개 발음을 마스터했어요. 제가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밥 먹듯이 연습하고, 숨 쉬듯이 연구해봐’예요. 하하."


그게 괴롭지 않고 즐거운 이유는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찾아지는 보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그 보물찾기를 함께 할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자신에겐 조여정이 그 기나긴 탐구의 동반자라고. 조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으로 떠나기 직전에도 ‘레베카' 무대를 찾았다. 나는 무대 뒤에서 그녀들과 포옹을 나누며 생각했다. ‘어쩌면 서로를 이렇게 끔찍하게 좋아할 수 있을까!’.


조여정과 옥주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동반자지요?


"네. 저와 여정이(조여정)는 화상 통화를 자주 해요. 게을러질 땐 서로를 거울처럼 보고 다잡죠(웃음). 보통 사람들이 그러듯 만나면 밥 먹지만, 후식으로 수영이나 헬스를 해요. ‘대체 우리 언제까지 관리하면 살아야 할까.’ ‘그래도 괴롭진 않잖아.’ 이러면서요. 수영할 땐 여정이가 제 몸의 정렬과 물살의 각도를 봐줘요. 남들이 보면 시시해도, 저희 스스로는 와일드하면서도 시적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부지런하고 직설적인 성격은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했다. 옥주현은 1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가정 형편상 성악 레슨을 포기하고 미술을 공부했지만, 끝내 재능을 감추지 못해 고교 시절 라디오 노래자랑에 나갔다.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불러 장원을 하며, 걸그룹 멤버를 찾던 ‘귀 밝은’ 스카우터에게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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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져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믿는 옥주현. 성대 훈련으로 결절된 목을 틔우고, 발레 수련로 짧았던 목선을 늘렸다./사진=이태경 기자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네. 저는 30살까지 엄마와 같이 살고 같이 잤어요. 엄마는 과일 껍질도 버리지 않고, 율피도 꿀에 개어 얼굴에 바르시는 분이에요. 겨울엔 난방도 안 하고 잘 땐 발코니 창을 열어두세요. 그게 몸에 좋다는 거죠.


핑클 활동할 때는 쓴소리도 많이 하셨어요. "너 라운드 티 입지 마. 목 짧아. 니트 입지 마, 등에 살 많잖니." 뮤지컬 ‘아이다'로 데뷔할 때는 더 냉정하셨죠. "니 대사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런데 그런 객관적인 눈이 큰 도움이 됐어요."


신뢰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근본 원리를 파고드는 건 본인 성격인가요?


"그런 거 같아요. 오랜만에 만나면 사람들이 "그새 키가 또 컸어!’ 놀라는데 전 속으로 그래요 ‘당신 키가 준 거예요.’ 제가 계속 커 보이는 건 발레를 해서예요. 발레를 하면 대칭이 잡히고 근육의 길이가 길어져요. 그것도 질문을 통해 알게 됐어요. 20대 때 어느 날 어른들을 보니 팔뚝이 짧아진 느낌이었어요. "왜 근육이 쪼그라들지?"


짧아진 근육을 늘리는 운동이 발레였어요. 나이 들면 머리에서 가장 먼 기관부터 퇴화가 된다고 하죠? 바로 발끝이에요. 저는 발끝과 아치를 섬세하게 깨우는 작업을 많이 해요. 그거 아세요? 치매 예방에는 한 발로 서서 중심 잡기가 좋아요. 대칭은 기억력을 자극하죠. 기초 학문은 파면 팔수록 보물 같은 지혜를 줘요."


‘옥댄버(댄버스 부인)’나 ‘옥트니 휴스턴(휘트니 휴스턴)’이라는 별명 말고 ‘옥백과사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었다. 조곤조곤 수다 떨듯 스스로 체득한 전문지식을 쏟아놓는 모습이 신기했다. 틴에이저로 시작해, 대중 앞에 노출된 사람으로 마흔을 맞았는데, 어떻게 좋은 에너지로만 차곡차곡 자기를 채웠을까.


"사업도 실패해 봤고,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라고 느낀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다 감사함만 남아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던 거죠."


후렴구처럼 되뇌는 ‘질문했다'와 ‘즐겼다'는 옥주현에게 크고 작은 고민을 푸는 만능 열쇠처럼 보였다. 재능과 즐거움이 통합될 수 있는가,는 모든 예술가에게 미스터리인데, 오직 그녀에게만은 예외인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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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와 함께 한 뮤지컬 ‘스위니토드'에서 러빗 부인을 연기한 옥주현

너무 긴장해서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마리아 칼라스도 분장실에서 벌벌 떨다가, 누군가 등을 밀어주면 겨우 무대로 떠밀려 나가곤 했답니다.


"아! 진심으로 이해해요. 처음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어요. 지금은 관객들의 숨소리가 느껴져요. 객석이 보이진 않지만, 제가 나오길 잔뜩 기대하는 그 공기의 결이 다 느껴져요. 사실은, 공기가 바뀌는 그 느낌이 제 목을 조여와요."


저런! 그래서요?


"1막이 끝나면 20분의 인터미션이 있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복근 운동 100개를 하고 2막에서 부를 ‘레베카'를 한번 불러봐요. "선배님, 시간 됐습니다" 스태프의 안내로 무대에 오를 땐, 공포로 거의 미치기 직전이 돼요."


관객의 기대감이 당신에겐 힘이자 두려움이군요. 무대에선 오히려 결심한 듯 옥타브를 올려 ‘귀르가즘' 서비스를 해서, 대체 저 에너지의 끝은 어딜까 궁금했어요.


"진심으로 최고로 만족시켜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 순간, 전 이걸 기억해요. ‘옥주현! 발레부터 식단까지, 생활의 모든 루틴을 니가 잘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어 왔잖아. 이 이상 어떻게 더 해?’ 그러면 올림픽 같은 그 순간을 즐기게 돼요.


공기의 밀도가 너무 높을 땐 이렇게 외쳐요. ‘니가 이걸 빼먹었니? 저걸 놓쳤니? 니가 다져놓은 걸 기억해.’ 그렇게 믿음의 벨트를 매고 객석으로 몸을 던져요. 습관의 시간을 믿고 뛰어드는 거죠."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그 어떤 모습도 에러가 아닌 가장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자, 문득 궁금해져요. 핑클은 당신의 뿌리예요. 그 시절이 당신에게 남긴 유산은 뭐죠?


"음… 달콤하고 예쁜 소리를 많이 썼는데, 그게 지금의 제겐 유산이 됐어요. 가령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은 열 살부터 60살 황후의 목소리까지 다양하게 써야 했는데, 큰 도움이 됐죠. 생각해보면 노래든 마음이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던 시절이었어요."


자존감은 괜찮았나요?


"당시엔 좋지 않았어요. 너무 어렸죠.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지, 난 노래를 잘해’ 세뇌하면서 버텼지만, 네 명 다 자존감에 상처가 있었어요. 그래서 캠핑클럽 할 때 그렇게 많이 울었나 봐요."


핑클은 어떤 사람들이었죠?


"자기 색이 강하고 귀여운 사람들이었어요.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그게 매력적이었죠. 예능 할 때 이미 싹이 보였어요. 잘 가꿔진 온실 안의 화초가 아니라, 들판에 핀 민들레 같았어요. 하하. 핑클의 1호 팬이 저였어요. 전, 핑클의 모든 걸 다 사랑했어요. 사랑이 넘쳐서 곁을 주는 친구들에겐 뭐든 다 해주고 싶어요."


그 자신, 남의 발톱의 큐티클까지 정리해주며 좋아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핑클로 받은 사랑이 너무나 커서 이제는 살면서 그 사랑을 다 갚아야 한다고. 그 시절 응원하던 어린 팬들이 자라서 공연계에서 일하는 걸 보면, 인연이 새록새록 소중해 뭐든 아낌없이 주고만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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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진정성 있게 성장한 핑클 멤버들.

아이돌에서 처음 뮤지컬로 왔을 땐, 뮤지컬 팬들의 비난과 의심이 자기를 키웠다고 했어요. 그만큼 단단해진 거겠지요. 혹시 승부욕이 발동했던 건가요?


"아니요. 승부욕은 아니에요. 전 정말 이 일을 즐기고 싶었어요. 관객도 나도 즐기려면 내가 잘해야 했어요. 결국은 내 즐거운 고민이 관객도 즐기도록 만든 셈이죠."


다시 음반 작업을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신보를 즐기는 기간이 너무 짧아졌잖아요. 지금은 음반보다는 콘서트에 공을 쏟고 있어요. 여자 뮤지컬 넘버가 아닌 남자 넘버를 신청받아서 불러요. 다카라즈카라고 일본 여성가극단 느낌도 나고. 보람이 커요."


레파토리가 너무 많아서 다 소화하려면 역시나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연기를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뭐든 도전장을 내밀고 싶진 않아요. 조금씩 번지듯,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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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맑은 얼굴의 옥주현.

자기 목소리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지요?


"따뜻함이요. 저한텐 아주 따뜻하게 들려요."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조수미 중 누가 가깝다고 느끼나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의 빅 팬이죠. 전 조수미 자서전을 보면서 목을 쓰는 이론을 연구했어요. 성악도로서 그녀의 당당함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특별히 뮤지컬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어떤 의미죠?


"오늘 한 퀄리티의 노래를 내일 이 시간에도 똑같은 퀄리티로 부른다는 거죠. 어제보다 피곤해도 안 되고 목을 잘못 쓰면 대참사가 일어나요. 올림픽 장기전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전 공연할 때 몸의 상태가 가장 좋아요.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면 다시 한번 더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다니까요(웃음)."


브로드웨이나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지는 않나요?


"아니요. 전 15년 동안 우리 뮤지컬 무대에서 성장했어요. 여기서 계속 만들어가고 싶어요. 특별히 이쪽에 꿈을 갖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우리말 발음으로 노래하고 목 쓰는 법을 전달하면서요."


자신이 공부한 이론과 실전을 유튜브 채널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안겨주기 위해서 유료로 개설할까 해요. 그냥 지나가시는 분들은 사절이에요(웃음). 저와의 시간 동안에 분명 얻는 게 있으실 거예요."


꿈이 있나요?


"지금 이 상태로 건강하고 즐겁게 노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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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배움은 끝이없겠지요? “그게 이 일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사진=이태경 기자

마지막으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남한테 노하우를 묻기에 앞서, 자기가 뭘 하면 즐거운지를 집요하게 물어야 해요. 자기 즐거움을 찾아서 집중하면 예상치 못한 길이 자꾸 나타나요. 그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의 힘을, 저는 믿어요. 즐거워야 계속하고, 즐겁게 계속하려면 잘해야 해요. 그 과정을 이어주는 게 또 질문이죠. 어느 날 빛이 비칠 때, 결과물의 밑동에서 제가 발견한 것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물음표였어요."


그러니 계속 자기를 탐문하라고, 자긍심 충만한 목소리로 옥주현이 말했다.


"어떤 질문을 선물처럼 받게 될 지 기대돼요"로 시작됐던 인터뷰가 "성장하려면 자기에게 질문하세요"로 끝이 났다. 모든 질문마다 얄미우리만치 빈틈없는 현답을 준비해놓은 옥주현. 살아온 삶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답의 연속이었던 사랑스러운 완벽주의자.


‘내가 즐기고 싶어' 스테이지에 서도, 두려움은 폭풍처럼 우리를 덮친다. 그때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자문자답으로 수련한 ‘자기 전문성’에 대한 믿음이다.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은 ‘주어진 재능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곧 인생'이라고 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어떤 작품이든 ‘옥주현의 완판 신화'는 계속될 것 같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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