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머슬자매가 말하는 ‘근육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주말] 머슬마니아 제패 송서윤·서현 자매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 노보텔 앰배서더에 마련된 ‘머슬마니아' 무대에 두 자매가 섰다. 언니는 검은색 가죽으로 된 비키니 수영복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고, 카메라를 향해 총쏘는 포즈를 취했다. 파란색 수영복을 입은 동생은 언니 어깨에 손을 올리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이들은 이날 보디빌더 대회에 참가해 석 달 동안 키운 근육을 공개했다.
근육은 이제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조제를 먹고, 헬스장에서 무거운 기구를 들고 밀고 당기며 근육을 가꾸는 ‘머슬 여인’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공들여 가꾼 근육을 뽐내기 위해 대회에 나가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인 송서윤(28)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머슬마니아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온 뒤 2019년 5월부터 법원에서 일했다. 대회에는 혼자 나간 게 아니다. 동생 송서현(24)씨는 전체 1위인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서현씨는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3월 대학원에 진학한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만난 송서윤(왼쪽)·서현씨 자매. 언니 서윤씨는 이곳에 있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근육과 공부가 서서히 계단식으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엄마 따라 나선 근육 대회
-대중 앞에 근육을 뽐내며 서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저 근육을 만든다는 생각만 했지, 대중 앞에 선다는 게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는데, 준비하면서 보니 비키니도 입어야 하고, 인터넷에 사진도 돌아다닐 수 있다니 슬슬 걱정이 됐죠. 그런데 잘못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몸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니 개의치 않았어요. 특히 대회가 임박하니까 쏟아부은 노력이 너무 커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죠.”
-자매 모두 공붓벌레였을 것 같은데, 돌연 근육 가꾸기에 도전한 이유는 뭔가요.
“중·고등학교 다닐 땐 잠자는 시간과 등·하교하는 시간 빼고는 무조건 공부만 했죠. 대학 다니고, 로스쿨 다닐 땐 운동을 병행하기는 했는데, 변호사 시험 준비할 땐 어깨, 등, 목이 늘 결리고 자세도 틀어져 있었어요. 운동할 시간이 충분치 않아 체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둘 다 건강해지기 위해 근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죠.”
-대회까지 나갈 결심은 어떻게 했나요?
“엄마가 먼저 머슬마니아 대회에 도전하셨어요. 저(동생)와 언니 말고도, 오빠와 남동생을 키우느라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요. 지금 열여섯 살인 막내를 낳고 체력이 떨어지셔서 기절도 하시고, 이석증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셨어요. 그래서 요가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근육을 만들어 머슬 대회에 나가보겠다'고 선언하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도 덩달아 도전해보기로 한 거죠. 그때가 작년 7월. 대회를 딱 석 달 남겨둔 시점이었어요.”
지난해 10월,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한 언니 서윤(왼쪽)씨와 동생 서현씨, |
-석 달 만에 근육이 만들어지나요.
“인터넷에 올라온 저희 사진을 본 사람 가운데서는 ‘근육이 얼마 없네’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이 대회에는 여러 체급과 분야가 있어요. 물론 근육이 중요합니다. 저희는 근육에 더해 포즈와 건강미를 보여주는 파트에 출전한 거고요. 근육을 만들기 위해 석 달 동안 다이어트 식단 짜서 그대로 따랐어요. 매끼 탄수화물 100그램을 먹기 위해 고구마나 현미밥·떡을 먹었고, 단백질 100그램을 섭취하기 위해 닭가슴살, 계란 흰자, 흰 생선만 먹었어요. 원래 둘 다 삼겹살을 너무 좋아해서 한번 먹을 때 혼자 2인분 이상 먹는데요, ‘조금 즐거워지려고 이거 한 입 더 먹으면, 러닝머신을 10분 더 타야 한다’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지요. 매일 웨이트트레이닝 1시간30분,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 1시간 등 2~3시간 운동했어요.”
또 하나의 도전, 법원 사람들도 놀라
자매를 대회로 이끈 건 어머니 유효숙(55)씨다. 유씨도 시니어 부문에 나가 1위를 차지했다. 마흔에 막내아들을 낳았지만, 위로 세 아이도 돌보느라 산후 조리를 제대로 못 했다.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자 근육을 키워 대회 나가는 것을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 올렸다. 유씨는 두 딸의 대회 출전에 “아이들에게 사회에 해가 되는 게 아니라면 해보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다”며 “근육 키우기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공부를 통해서 맛보는 것과는 또 다른 성취와 매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만난 송서윤(왼쪽)·서현씨 자매. 언니 서윤씨는 이곳에 있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근육과 공부가 서서히 계단식으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
-아버지 반대는 없었나요.
“대회 나가는 전날에야 말씀드렸어요. 좀 보수적인 분이라(웃음). 당일 입상했다고 하니 ‘어, 수고했어. 축하해’라고 하시더라고요.”
-공부하는 것과 근육 키우기, 뭐가 더 어려운가요.
“범주가 다르니까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성과가 계단식으로 나오는 게 비슷한 것 같아요. 초반 한 달 정도는 몸이 날씬해지고 탄탄해지는 것 같긴 한데, 정작 근육은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내가 과연 대회에 나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운동했더니 두 달이 지나면서 서서히 근육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공부도 그렇잖아요. 처음엔 아무리 노력해도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의욕이 생기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쌓여가다가 성적이 확 오르니까요.”
-법원도 보수적인 직장일 텐데, 비키니 사진을 윗분들이 좋게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언니)는 부장판사님 밑에서 판결문 초안을 잡는 일을 하는데요. 대회 나가기 전엔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대회가 끝나고 인터넷에 사진이 돌아다니니까, 판사님이 그제야 아시고 ‘대단하다' ’열심히 했네'라고 하셔서 놀랐죠. 우리 사회도 머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비키니는 건강한 몸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한 수단일 뿐이에요. 허벅지나 히프, 허리, 등 라인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유니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생 송서현씨가 운동하는 모습. |
-일하는 데 근육이 도움 됩니까.
“근육을 가꾸고나서는 정신 집중이 잘됐어요. 대회를 준비하려면 시간 관리를 정말 철저히 해야 하거든요. 운동할 세 시간을 빼놓고, 나머지 21시간으로 하루를 산다는 생각으로 생활하다 보니 매 시간 최선을 다하게 돼요. 법원에서는 원래 오후 6시에 저녁밥 먹고 7시부터 야근해 밤 10~11시까지 일을 해요. 그런데 대회를 위해 운동할 시간이 필요하니, 1시간 먹던 저녁을 5분 만에 닭가슴살 먹는 걸로 해치웠어요. 그러고 나선 바로 헬스장 가서 2~3시간 운동한 뒤 다시 9시에 법원으로 와서 일하다 퇴근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끝내야 하니 집중력이 높아진 거죠.”
-서울대 출신이라 더 화제가 됐죠?
“대회 결과는 운동에 대한 집념과 과정을 통해 성취한 건데, 학벌이 많이 부각돼 아쉽기는 해요. 하지만 저희 자매가 학창 시절 성취와 머슬 대회 성취를 지독한 노력으로 보여줬다는 댓글도 있어서 뿌듯했어요.”
지난해 10월, 머슬마니아 대회에 출전한 언니 서윤(왼쪽)씨와 동생 서현씨, |
-근육 키우기 요령을 알려준다면.
“식단 관리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평소에도 바른 자세로 생활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가령 TV를 보더라도 가끔씩 벽에 기대 1자로 서서 보는 방식 같은 거죠. 만약 근육을 선명하게 커지게 하고 싶으면 자신이 들 수 있는 최대치를 들어 올리는 운동을 해야 돼요. 근육의 수축뿐만 아니라 이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요.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죠.”
-앞으로도 대회에 계속 나갈 건가요.
“처음부터 저희는 석 달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서 끝내자고 다짐했어요. 둘 다 입상까지 했으니, 더는 나갈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저희처럼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데 만족합니다.”
[곽창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