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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서울대 몇 명 보냈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 강남 8학군 교장의 이유 있는 외침

[아무튼, 주말] [이옥진 기자의 진심]

“학교는 학원 아닌, 사람 키우는 곳”

서울 중동고 이명학 교장의 혁신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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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문이 총동문회 단톡방에 그해 서울대 합격자 수를 올리면서 ‘이사장님과 교장 선생님이 애쓰셨다’고 쓴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글을 보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합격이 이사장, 교장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중략) 근 7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올해 서울대에 몇 명이나 갔냐?’는 질문이 우리 사회와 학교 교육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지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서울대에 몇 명 갔냐’는 질문은 그만둘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달 말 ‘중동고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란 제목의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200자 원고지 11장 분량의 이 글은 거친 표현도 더러 나오는, 선언문에 가까운 글이었다. ‘여기는 사람을 교육하는 학교지, 입학 성적으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니다’ ‘앞으로도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느냐에 일희일비 마시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참교육자’ ‘진정한 스승’ ‘이런 분이 교육부 장관을 해야 한다’ 등의 칭찬이 대부분이었는데, ‘저런 교장 선생님은 처음 봤다’는 놀라움 섞인 반응도 많았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지난해 서울 중동고에 부임한 이명학(67) 교장이다. 중동고는 이른바 ‘강남 8학군’에 속하는 자율형 사립고다. 강남 8학군이 어떤 곳인가. 자녀를 명문대로 보내고자 하는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곳이자, 학력 세습, 집값 폭등, 위장 전입 등 사회 문제의 진원 같은 곳 아닌가. 역사학자 오제현은 강남 8학군에 대해 ‘서울의 일개 고등학교 학군의 의미를 넘어, 한국 사회의 공간적·구조적 위계 질서를 상징하는 키워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명학 교장의 편지는 대한민국 입시 전쟁 최전선에 있는 8학군 학교 교장이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서울대 입학생 수로 학교 서열을 매기지 말라고, 학교는 학원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곳이라고 소신을 밝힌 것이다. 그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던 말을 했다.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말이 통용되는 한국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입시 전쟁이 벌어지는 8학군에서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지난 4일 만난 이명학 교장은 한국 교육에 대한 생각을 기탄없이 쏟아냈다.


◇학교는 명문대 입학생 수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니다


-어떤 뜻에서 편지를 썼나.


“학교라는 곳은 원래 인류의 축적된 지식과 사람됨을 배우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느냐로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70년도 더 됐다. 언론이 앞장섰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서울대에 몇 명 보내느냐가 지표가 되니까 적성에 맞추어 다른 대학에 가겠다는 학생을 억지로 서울대 입학 점수가 낮은 학과에 강제로 입학 원서를 쓰게 했던 시절도 있었다. 도대체 이게 학교가 할 짓인가. 학교는 명문대 입학생 수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니다.”


-이 편지가 왜 화제가 됐다고 보나.


“많은 분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내가 대신해줬기 때문 아닐까.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은 강남 지역 학교에선 10% 미만, 다른 지역 학교는 1%도 안 된다. 그럼 90%가 넘는 학생들은 무엇인가? 서울대 입학이 뭐가 중요하냐고, 공부 말고 더 중요한 가치도 있다고 누군가 말해줘야 했던 것이라고 본다.”


-명문대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그게 왜 중요한가? 서울대에 가면 학생들의 장래가 보장되나? 나이 들어 고교 동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면 답이 다 있다.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살아온 친구들이 행복도나 삶의 질이 훨씬 낫다.”


그는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해서 학교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에 대해 “웃기는 일”이라고 했다. “한둘 특출한 학생 말고, 학교 교육만으로 학생을 서울대에 입학시킬 수 있을까. 학부모님 열정과 학원의 입시 교육이 (서울대 입학을) 가능하게 하는 거다. 그런데 서울대 많이 보내면 공은 학교 차지가 되니 겸연쩍다. 적게 입학시키면 무슨 죄라도 진 것 같으니 답답하고….”


-학교 교육만으로 서울대 가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부정하고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공교육에서는 중간 수준의 학생에게 맞춰서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가, 성적이 중요한 건 사실 아닌가.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가 아니라,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열심히 했느냐가 중요하다. 둘 다 노력에 대한 칭찬을 똑같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공부만 칭찬을 받아야 하나? 우리 학교에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 은상을 받은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다’고 했다. 그 학생이 왜 공부를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욕을 먹어야 하나? 나는 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줬다. 나는 이 학생이 장차 ‘오징어 게임’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한 고등학교에 가서 보니까 한 반 35명 중에 7~8명이 자고 있더라. 5분의 1이 자는 거다. 전국으로 따지면 수십만 명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가.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에겐 다른 걸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좋은 대학을 나와야 인생을 편하게 잘살 수 있다는 편견이다. 그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편견을 가진 학부모가 있는 이상 우리나라 교육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학업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아이가 한둘인가. 공부에서 조금 뒤처지면 마치 낙오자가 된 듯 삶을 포기한다. 공부 말고 얼마든지 많은 다른 길이 있는데도….”


이 교장은 ‘명문고’는 서울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가 아닌, 이 학교를 나온 동문들이 사회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 몇 명 갔다고 명문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르게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 동문이 많은 학교가 명문이다.”


-어떤 교육 정책이 필요한가.


“이번 대선이 참 의아하고 화가 났다. 어느 후보도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더라. 자칫 잘못하면 역린을 건드린 듯 난리가 날 테니 그랬겠지만…. 학교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은 공부를 시키고, 공부가 싫은 애들은 최저 학력만 이수하면 다른 소질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입시 공부 강요가 없어져야, 학교 교육이 정상화된다.”



◇허울뿐인 인재상부터 뜯어고쳤다


이명학 교장은 성균관대 한문교육과에서 32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재미있는 수업으로 이름난 명교수였던 그는 ‘대한민국 스승상’ ‘100대 좋은 강의상’ 등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국가 기록 등을 수집·정리·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장을 지냈다. 2020년 8월 정년 퇴임했는데, 모교인 중동고에서 교장으로 부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학교수를 하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정년 퇴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공원에서 운동하다 갑자기 주저앉았다. 병원에 가보니 관상동맥 90%가 막혀 있어서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지방에 내려가 쉬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에서 교장을 해달라고 하더라. ‘네가 안 맡으면 학교를 어떻게 할 거냐’ 같은 동문들의 협박을 이길 수 없었다. 인생의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1년간 중동고를 이끈 소감은.


“부임할 때 전체 선생님에게 ‘나는 학원 원장이 아니다. 고3 담임들에게 서울대 많이 보냈다고 칭찬도 하지 않을 거고, 못 보냈다고 질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지금까지 그 말을 지키고 있다. 대학에만 있다가 고등학교에 와보니 아주 작은 것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학교를 믿어야 하는데 사소한 것까지 문제 삼는 학부모도 계시고….”


-사소한 것까지 문제 삼는 학부모라면?


“공부 더 시키라는 분, 원격 수업 하지 말라는 분, 급식 반찬 타박하는 분 등 다양한 학부모가 있었다. 불만을 제기하실 때마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하고, 원칙대로 한다. 어떤 학부모는 자기 자식이 학교에서 혼났다고 교사에게 욕설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그 집에 직접 전화해서 학부모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사과를 받았다.”


-부임하면서 학교 인재상부터 바꾸셨다고.


“원래 학교 인재상이 ‘창의적 글로벌 리더의 산실’이었다. 이런 좋은 인재상이 또 있을까. 그러나 구체적 목표와 실천이 없는 인재상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의 지식인층이나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과 편리만 생각하는 행태를 보면 화도 나고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하는 답답한 생각도 들지 않나. 그래서 거창한 구호보다 차라리 우리 사회에 사람다운 사람을 한 명이라도 가르쳐서 내보내자는 생각을 했고, 인재상을 ‘의롭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중동인’으로 바꿨다.”


-또 어떤 것을 바꿔놓았나.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만 주던 장학금을 다른 재능이 있는 학생, 품성이 좋은 학생에게도 주기 시작했다. 고교 3년 동안 친구를 잘 배려하고 의롭게 생활한 학생에게 주는 ‘Mr. 중동인상’, 무슨 일이든 창의적 발상으로 끊임없이 도전한 학생에게 주는 ‘도전 창의상’, 많은 책을 읽은 학생들에게 주는 ‘다독상’을 만들었다. 이 상들의 상금은 많게는 1000만원인데, 취지에 동감한 동문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해준 것이다.”


이명학 교장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행사도 만들었다. 학교에서 편지지와 봉투, 도서 목록을 보내면 학부모가 자녀에게 쓴 손편지와 읽히고 싶은 책 제목을 학교로 보낸다. 학교는 편지와 함께 해당 책을 학교 경비로 구입해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이 행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님에게 손편지를 처음 받아본 학생이 많았다. 편지를 쓰다가 눈물이 나서 겨우 썼다는 어머니도 계셨고, 편지를 받고 나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한 학생도 있었다. 무뚝뚝한 아버지한테 손편지를 받고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교가 어떻게 해서든 학생을 서울대에 보내는 일 말고,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에게 배운 선행, 대를 잇는 ‘키다리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는 이명학 교장의 오랜 별명이다. 교수 재직 시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조용히 돕곤 했다. 이 교장은 2011년 성균관대 합격 통지를 받고도 등록금이 없어 등록을 망설이던 한 여학생의 사연을 듣고 등록금을 대신 내줬다. 이 교장은 2015년 본지와 익명으로 인터뷰하며 자신의 선행에 대해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은 눈에 밟혀서 안 도와줄 수가 없다”며 “선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을 받을 때마다 상금을 전액 기부했던데.


“쑥스럽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 처음 입을 떼 본다. 상금은 그냥 받을 때마다 학교에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달라’며 기부했다. 내가 등록금을 도와준 학생은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홀어머니, 장애인 동생과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열여섯 살 때부터 나무젓가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학생이 대학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4년 내내 지켜봤다. 학생 어머니께서 누가 도와주었는지 끈질기게 물어왔는데,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학생은 지금까지도 누가 자기를 도와줬는지 모를 거다.”


이 교장은 2006년 ‘참빛누리 봉사단’을 만들어 매달 사회복지 시설을 찾는 봉사 활동을 했다. 한 재활원에서 어깨 아래로는 왼손 세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지체장애인 정은숙씨가 대학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못 한다는 사연을 듣고 성균관대 후배, 제자들과 십시일반으로 등록금을 마련했다. 4년간 이 후원에 동참했던 한 동문은 “이명학 선배가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니까 모두 믿고 (후원 약정에) 사인했다”고 했다. 정은숙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평소 주변에 이런 선행을 많이 권유하나.


“주변에 돈 있는 사람이 많다(웃음). ‘버는 것에 비하면 얼마 안 되지 않느냐’고 권유하면, ‘이제 그만 좀 해’ 하며 툴툴대면서도 참여한다. 이런 일을 함께하자고 했을 때 선뜻 나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행복함을 느낀다.”


이 교장의 선행은 부전자전(父傳子傳)인 듯했다. 2011년 타계한 부친 이상목 선생은 평생 모은 재산을 두 아들이 졸업한 중동고에 기부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교장 형제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중동고에 10억원을 기부했고, 중동고는 이상목 선생의 호를 딴 ‘고천 장학 기금’을 만들었다.


-부친은 어떤 분이셨나.


“선친께서는 평양이 고향인데,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홀로 월남해 일가친척 하나 없는 이곳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서울대 치과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6·25전쟁이 일어나 군정 장교로 입대했고, 그 뒤 육군군수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셨다. 예편 후 작은 사업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늘 하신 말씀이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었다. 홍제동 슬레이트 판잣집에서 살 때, 우리 집에 신문 배달하는 또래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 신발보다 그 아이 신발을 먼저 사 주셨다. 당시는 서운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부모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내 자식, 부모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나


-고전 연구를 오래 했다. 오늘날 고전의 가치는 무엇인가.


“고전은 ‘내일로 가는 옛길’이다. 고전 속에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들어 있다. 천 년 전에도 유효했고 천 년 뒤에도 유효한 것이 고전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인간 삶의 해답이 그 안에 있다.”


이 교장은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경구라며, 공자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란 말을 소개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 교장은 또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오언절구 ‘등관작루(登鸛雀樓)’에 나오는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도 추천했다. 누대에 올라 이미 황하도 보이고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도 보이지만 내 시야에 만족하지 않고 천 리 밖까지 보길 바라며 한 층을 더 올라간다는 뜻인 이 구절에는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많은 이가 한자를 어려워한다.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고 말하기 위해 한자를 알아야 한다. 요사이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한자 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인데 이를 무시하고 낱말의 사전적 의미만 외우니 정확한 뜻을 모르게 된 것이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독해력은 물론 학력 수준이 더 낮아질 것이다.”


-자녀는 어떻게 키웠나.


“제1 원칙이 ‘간섭하지 않기, 잔소리하지 않기’였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해본 적도 없다. 아이 인생은 아이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부모는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한들 달라지나?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때가 있다. 그때가 혹 늦게 오더라도 부모는 기다려줘야 한다. 속은 터지더라도.”


이 교장의 아들은 학창 시절 꽤 방황했고, 이 교장 역시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묵묵히 아들을 믿고 기다렸다. 이런 경험은 지난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우신 적이 있으셨는지요? 혹 내 체면이 손상되는 것 같아 그러신 것은 아닌가요? (중략) 한 인간에 대한 평가의 척도가 공부밖에 없습니까?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크고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학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있다. 그러니 지금 좀 못한다고 조급해하거나 화내지 말고 기다려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자녀가 의지할 곳이 부모 말고 또 누가 있나? 내 자식인데 부모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나? 그리고 남의 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 다른 집 아이는 다른 집 아이고, 내 아이는 내 아이다. 내 아이의 장점을 높이 평가해 주면 된다.”


-중동고 학생들을 비롯한 우리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공부 못한다고 절대 주눅 들지 말고, 내가 공부 말고 어떤 일이든 열심히 성실하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라. 또 스마트폰 들여다보고 인터넷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것 등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 냉정하게 따져봐라. 인생이 결코 길지 않다.”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려운 질문이다. (한참 생각하다) 학생들이 내 말이나 행동을 보고 느낀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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