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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삼가 다육이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이 된 식물

‘반려 식물’ 기르는 ‘집사’

식물 호텔·병원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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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식물 집사’로 유명한 ‘그린어스(green us)’가 아파트에서 150여 종의 식물을 키우는 모습./그린어스 인스타그램

“물 준답시고 부엌에 오랫동안 방치했던 게 문제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꽤 오래 키운 거라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삼가 식물의 명복을 빕니다.”


직장인 이현정(29)씨는 최근 올겨울 들어 죽어버린 식물 10여 종의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죽은 식물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하나씩 올린 다음, 죽은 이유와 간단한 소회를 쓰고 명복을 빌었다. 일부 관엽식물은 시든 이파리를 말려 책에 끼워 놓았고, 일부는 병에 꽂아 섭섭함이 가실 때까지 두고두고 보았다. 이씨는 “오래 쓴 물건도 망가지면 굉장히 섭섭한데 직접 키운 식물은 서서히 노래지고 시들면서 죽는 과정을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 속상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내가 잘못 키워서 죽게 만든 것 같아 추모하는 마음으로 장례식을 기획했다. 앞으로 다른 식물을 죽이지 않기 위한 ‘오답 노트’ 성격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씨는 코로나가 본격화한 2020년부터 ‘식물 집사’로 살고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듯, 식물도 반려(伴侶·짝이 되는 동무)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키우고 돌보는 것이다.


이씨뿐 아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모임이 줄어들고 야외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자, 집에서 식물 키우기를 취미 삼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서점에는 ‘식물’을 주제로 한 에세이가 20여 권 넘게 쏟아져 나왔다. 과거엔 가드닝·원예 중심 실용서가 많았다면, 최근의 서적은 ‘식물 집사’들이 반려 식물과 살아가는 솔직한 소회를 털어놓는 에세이가 대다수다.

◇매일 크는 식물에 위로받는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식물 집사’로 유명한 ‘그린 어스(green us)’는 자신의 아파트 ‘식물방’에서 150여 종의 식물을 키운다. 처음에는 거실에서만 식물을 키우다, 아예 방 하나를 비우고 식물만 키우는 ‘식물방’을 만들었다. 30대 여성인 그는 “신혼집을 꾸미면서 싱그러운 식물로 ‘플랜테리어(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인도고무나무, 떡갈고무나무, 몬스테라가 첫 식물이었다”고 했다. 과거엔 다육이도 잘 키우지 못했을 정도로 서툴렀지만, 온라인 줌 수업으로 분갈이 등을 배우며 점차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는 “겨울이 되면서 가습기를 과하게 틀어 창가 쪽에 결로와 곰팡이가 많이 생겨 고생하기도 하고, 벌레와의 전쟁도 수시로 일어난다”면서도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느끼는 성취감과, 싱그러운 식물이 주는 힐링이 정말 크다. 이국적인 식물들을 볼 때면 잠시 휴양지에 온 듯한 기분도 느낀다”고 했다.


식물 장례식을 했던 이씨도 “처음에는 바질처럼 직접 키워 먹을 수 있는 식물을 기르다가, 자라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화분 수가 30개까지 늘어났다”며 “식물은 죽기 전까지 매일 자란다는 게 제일 큰 매력인 것 같다. 식물이 새 잎을 내면 잘 키우고 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진짜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게 실감나서 더 정이간다”고 했다. 이씨와 같이 사는 동생은 가끔 ‘사람 위에 식물 있다’고 푸념도 한단다. “식물엔 수돗물보다 빗물이 더 좋다고 해서, 비 오는 날 페트병에 빗물을 잔뜩 모아놓았는데 같이 사는 동생이 생수인 줄 알고 마셔버렸어요. 동생은 왜 헷갈리게 빗물을 모으느냐고 화내고, 저는 왜 귀한 빗물을 네가 먹느냐고 화내고···. 이제는 매직으로 크게 써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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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AK플라자 분당점에 있는 ‘플랜트 호텔’에선 여행·출장 등으로 관리가 어려운 식물을 대신 맡아 준다. /garden earth

◇식물 병원부터 호텔까지 생겨

‘식물 집사’들이 늘면서 반려 식물이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도 인기를 얻고 있다. 대전시는 2013년 3월부터 ‘화분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병들고 아픈 반려 식물을 치료해준다. 일반 병원처럼 치료실, 입원실도 갖추고 있다. 화분은 1인당 3개까지 맡길 수 있다. 이용료는 무료. 2019년 580개, 2020년 1109개, 지난해에는 1807개의 화분이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국립세종수목원도 지난해 8월부터 식물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수목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 직원 중 원예 분야 경력자나 관련 전공자가 7일 이내 답변을 달아준다. 최근 상담은 4년 된 유레카 레몬 나무를 베란다에 10일 정도 뒀는데, 잎이 점점 말라가면서 갈라진다는 것. 사진을 본 전문가가 답변을 달았다. “사진을 보니 냉해를 입었거나, 건조·과습에 의한 증상으로 보입니다. (중략)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 두시고, 과한 바람은 좋지 않으므로 조심해주세요.”


세종수목원 관계자는 “최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반려 식물이 인기지만, 정작 식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다는 생각에 상담실을 운영하게 됐다”며 “월평균 60건 이상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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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호텔에 보관 중인 식물들./garden earth

여행·출장 등으로 장기간 집을 비워 식물 관리가 어려운 집사를 위한 ‘식물 호텔’도 있다. AK플라자 분당점에 있는 가든 어스(GARDEN EARTH)의 ‘플랜트 호텔(PLANT HOTEL)’이 대표적. 호텔 담당자는 “호텔 서비스뿐 아니라 키우던 식물을 사정상 못 기르게 될 경우, 다른 고객이 분양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입양 서비스’ 등도 운영하고 있다”며 “식물을 좋아하는 회사이자 브랜드로서 어떻게 하면 식물이 죽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여러 서비스를 내놓게 됐다. 취지에 공감하는 이용자들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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