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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혀 흩뿌려진 사람들, 그 참혹했던 여정 따라…

장편소설 '떠도는 땅' 펴낸 김숨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삶 그려

"열차속 소리와 냄새, 흔들림까지 당시를 생생히 재현하고 싶었다"

"엄마, 우리는 들개가 되는 건가요?"

1937년 러시아 연해주 신한촌에는 조선인 이주 명령이 내려진다. 일주일치 식량과 옷가지만 챙겨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화물과 가축 운반용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에 실린 소년은 엄마에게 말한다. "우릴 혁명 광장에 몰아넣고 총으로 탕, 탕 쏴 죽이려다 총알이 아까워서 그냥 버리기로 했대요."

조선일보

소설가 김숨은 "이어지는 이야기로 강제 이주 이후의 정착 과정, 새로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김숨의 장편소설 '떠도는 땅'(은행나무)은 연해주에 정착한 조선인 17만명이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비극을 다뤘다. 소설은 한 달여간 열차 한 칸에 갇힌 27명의 사람에 집중한다. 식사와 배설이 함께 이뤄지는 열차 한 칸 속의 소리와 냄새, 흔들림까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작가 김숨은 4년간의 집필 기간, 꼼꼼한 자료 조사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의 인생을 복원했다. 4일 만난 그는 "사람들의 복장, 열차 안에서 먹었던 음식 같은 일상적인 부분이 가장 조사하기 어려웠다"면서 "여러 자료 속에서 한 문장을 겨우 찾아내 이야기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했다. "한정된 공간이나 시간 속의 인물을 들여다보는 소설 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주 후의 정착 과정보다는 열차에 실려 이주하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소설 속 열차 한 칸에는 27명의 사람이 탔다. 끊임없이 오고 가는 말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드러난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까지 "한 인간의 최초와 최후가 함께 열차에 실려가는 것"만 같았다. 노인은 "내가 여기서 죽거든 몸뚱이를 멍석으로 둘둘 싸 열차 밖으로 던져버려라"고 당부한다.


"실제로 열차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많았고, 시체를 그대로 놔둘 순 없으니까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열차가 멈춰 섰을 때 땅에 묻어줬다고 한다. 전염병도 돌아 아이들이 많이 죽어서 그해 태어난 1937년생 고려인이 거의 없다고들 하더라." 그는 "역사를 소설로 옮길 때는 함부로 상상해서 쓸 수 없다"면서 "살아남으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는 소설이길 바란다"고 했다.


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대산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받은 작가 김숨은 최근까지 '한 명' '흐르는 편지'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을 써왔다. 이번엔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열차에 오른 금실, 숙청 대상으로 카자흐스탄 감옥에 끌려간 형을 찾는 인설 등의 목소리로 강제 이주의 아픈 역사를 소환했다.


그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역사적 변동으로 운명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버린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면서 "위안부 피해자도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도 뿌리가 뽑혀 흩뿌려진 사람들, 그 후에도 어딘가에 이식되지 못한 존재들 아닌가"라고 했다. "이들을 실은 열차가 마치 끝없이 돌고 도는 회전목마처럼 느껴졌다. 땅을 찾아 떠난 조상에 이어 그들의 후세대도 여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살 곳을 찾아 떠돌고 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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