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휘두르고, 그저 걷고… 이런 게 예술이면 할 만한데?
어려운 전위예술을 따라해보는 아마추어 예술가 15인의 기획展
"예술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기'… 할수록 미술 치유의 힘을 경험"
이건용 작가의 '신체드로잉'(좌)과 이를 따라한 주부 조나정씨. /페이스갤러리·갤러리175 |
"저게 현대미술이면 나도 하겠네."
이 생각이 출발이었다. 유명하기는 하나 진의를 알기 어려운 전위예술을 실제로 따라 하는 이른바 '따라따라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은 2016년.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재능 기부 현대미술 수업을 듣던 동네 주부들이 주축이 돼 스터디 모임을 꾸렸고, 해당 작품을 실제로 따라 하는 작업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 아마추어 '예술가' 15인의 이색 전시가 서울 통인동 갤러리175에서 21일까지 열린다. 기획자 임은빈(44)씨는 "제도권 미술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분들"이라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따라 하기'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들이 따라 한 것은, 처음 봤을 때 '이게 뭔가' 싶은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러시아 추상화가 말레비치의 그림은 온통 검정으로 칠해졌을 뿐이고, 유고슬라비아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The Artist Is Present'는 그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참 서로를 응시할 따름이며, 영국 작가 리처드 롱의 '도보로 만들어진 선'은 그저 작가가 풀밭 위를 걸어 직선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따라 하면 할수록 "미술 치유의 힘을 경험"(김경애)하게 됐다. 조나정씨는 '왜 꼭 화면을 마주 보고 그려야 하는가'를 되묻는 화가 이건용의 신체 드로잉을 따라 했다. 일단 몸으로 부딪치자 예술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이옥자씨는 화가 박이소가 사흘을 굶은 채 밥솥을 어깨에 메고 뉴욕 브루클린 다리 위를 홀로 걷는 퍼포먼스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을 따라 하기 위해 두 끼를 공복으로 보냈다. "걷고 또 걸으며 문득 든 생각은 기본적 생존 문제 말고 세상 그 무엇이 중요할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데이비드 호크니부터 루초 폰타나까지 아우르는 모작이 완성됐으나, 모방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주부 임정은씨는 "모방은 '원작을 얼마나 똑같이 따라 하느냐'로 가치를 가늠하는 반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따라 하는 행위 자체"라고 했다. 조영은씨는 "남의 시선 의식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예술은 예술이라는 이름 덕에 '왜! 내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했어' 말할 용기를 준다"고 했다.
이들은 4년째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모여 이런 작당을 벌이지만, 오후 2시면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기 때문이다.
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