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영웅’ 페이커 이상혁... 롤드컵 5회 우승, MVP까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28·T1)이 또 한번 세계를 제패하며 e스포츠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3일(한국 시각)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2024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 이상혁은 소속팀 T1을 이끌고 중국 비리비리게이밍(BLG)을 3대2로 꺾었다. 이로써 이상혁은 롤드컵 5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T1 후원사는 SK텔레콤이다.
이상혁은 게임업계에서 불사대마왕, e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 세체미(세계 최고 미드라이너), 역체롤(역대 최고 롤 프로게이머), 불멸의 영웅, 롤계의 리오넬 메시(또는 마이클 조던) 등으로 불린다. 그가 선택한 게임 닉네임 ‘페이커(Faker)’는 게임업계 GOAT(Greatest Of All Time)를 상징하는 단어다. “전 세계적으로 손흥민, 방탄소년단(BTS)에 뒤지지 않는 명성과 인기를 자랑하는 한국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2013년 첫 우승 이후 5번째 정상
이번 결승에서 이상혁은 최우제, 문현준, 이민형, 류민석과 한 팀(T1)을 이뤄 위업을 이뤘다. 이들은 2022년 롤드컵 준우승(우승 한국 DRX), 2023년과 2024년 2연패를 함께 한 전우들. 이상혁 개인으로는 2013년, 2015년, 2016년, 2023년에 이어 이번까지 5번째 정상 정복이다. 역대 2위는 벵기(배성웅·31·은퇴)로 3회 우승이다. 이상혁은 이번 결승에서 MVP(최우수 선수)를 받으면서 2016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결승 MVP에 선정됐다. 결승 MVP에 2번 선정된 것도 이상혁이 처음이다.
이상혁은 2013년 17세 나이로 프로게이머계에 도전장을 내민 뒤 바로 롤드컵을 제패했다. 10년이 넘은 지금도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e스포츠는 빠른 반응 속도와 높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탓에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전성기로 본다. 이상혁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해 해설자나 코치로 변신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관록을 잃지 않고 있다.
그 역시 “페이커도 한물갔다”는 뒷말에 시달렸다. 지난 5월 국제 대회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을 앞두고 손목 부상을 당했고, 상반기 게임업계를 덮친 광범위한 디도스(DDoS) 공격으로 정상적인 경기와 연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컨디션 난조로 애를 먹었다. 지난 8월 국내 리그인 LCK(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에서는 젠지(Gen.G)에게 0대2로 패했다. 당시 그는 벽에 머리를 기대며 심하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 배정된 이번 롤드컵 진출권은 4장. 정규 리그를 4위로 마친 T1은 지난 9월 5위 KT 롤스터와 한 장 남은 롤드컵 진출권을 놓고 혈투를 벌여 5세트 끝에 3대2로 간신히 이겼다. 롤드컵행 ‘막차’를 탔다. 1위는 한화생명이었다.
롤드컵 본선에서 이상혁은 팀 후배들 최우제(제우스), 문현준(오너), 이민형(구마유시), 류민석(케리아) 등을 다독이면서 강력한 팀워크를 창출했다. 지난 4년간 ‘제오페구케’라는 별칭으로 함께 동고동락한 저력이 이날 결승에서 나왔다. 이상혁 개인으로서도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활약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혁은 경기 후 “이번 저의 우승을 보고 많은 선수가 저처럼 꿈을 갖고 계속해서 본인만의 삶을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스포츠의 역사이자 아이콘
이상혁은 이미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이 열광하는 글로벌 아이콘이다. 지난해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그를 ‘2023년 스포츠계 10대 파워 리스트’에 선정했다. 축구 황제 메시를 비롯, 야구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의 연봉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국내 프로게이머 중 최고 수준인 1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중국 리그인 LPL 게임단에서 2년전 연봉 2000만달러(당시 245억원)에 영입을 제안한 적도 있다. 그는 “목표는 돈이나 명예보다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라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전설의 전당’ 1호로 헌액됐고, 그의 업적을 모아 롤을 운영하는 라이엇게임즈에서 지난 5~6월 서울 중구에 ‘페이커 신전(神殿)’이란 기념 공간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잠시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권에서는 그를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 부른다. 높은 산, 긴 강처럼 ‘가장 뛰어나면서 가장 오래간다’는 뜻이다. 이상혁이 출전한 이번 롤드컵 결승전은 694만명이 시청했고, 역대 가장 많은 시청자를 기록한 e스포츠 경기로 기록됐다.
이상혁의 통산 전적은 964승 469패(승률 67.3%).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농구 마이클 조던(승률 65.9%·706승 366패), 축구 리오넬 메시(승률 67.8%·732승 208무 140패)에 뒤지지 않는 승부사다. 게임업계에선 “페이커가 은퇴하면 한 시대가 끝나는 것”이란 논평이 나올 정도다. 롤드컵 우승 5회 외에도, LCK 우승 10회, e스포츠 월드컵 리그 오브 레전드 부문 초대 우승,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그가 프로게이머 세계에서 이룬 업적은 단연 백미(白眉)다. 이번 5번째 롤드컵 우승으로 그 화려한 이력서를 한층 더 빛나게 장식했다.
☞롤(LoL)·롤드컵
롤(LoL)은 5대5로 팀을 이루어 상대 팀 기지를 파괴하는 목표를 가진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를 가리키는 애칭이다. 미국 라이엇게임즈(현재는 중국 텐센트가 인수)가 2009년 출시한 뒤 매달 1억명 이상이 즐기는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롤드컵은 라이엇게임즈가 직접 여는 리그오브레전드 세계 대회로 공식 약칭은 ‘월즈(Worlds)’ 또는 ‘월드 챔피언십(World Championship)’인데 국내에선 ‘롤’과 ‘월드컵’을 합쳐 이렇게 부른다. 여덟 지역(한국, 중국,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베트남, 브라질, 라틴 아메리카) 국내 리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한 팀들이 세계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2011년 첫 대회를 했다. 2024년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개최되었다. 역대 14번 대회 중 한국 팀이 9번 우승했다.
[양승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