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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조선일보

불국사, 첨성대만 가셨나요? 올 봄엔 ‘경주 청보리밭’에서 추억 만드세요

[아무튼, 주말]

천년고도의 숨은 명소 ‘히든 경주’를 찾아서


경주는 도시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신라 천년 고도(古都)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과 풍경이 넘친다. 첨성대, 불국사, 대릉원, 동궁과 월지…. 경주를 대표하는 명소라도 매번 같은 곳만 돌고 돈다면 여행은 지루해지기 마련. 경주 여행을 업데이트할 때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한 경주엔 여유롭고 색다르게 즐길 숨은 여행지가 많다. 젊은 여행족이 ‘좋아요’를 연거푸 누르는 ‘히든 경주’를 찾았다.


◇천년의 유적 너머 청보리가 출렁인다


‘히든 경주’의 첫번째 목적지는 분황사다.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으로 이미 유명한 유적지이지만 이맘때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따로 있다. 분황사 앞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청보리다. 경주에서 만나는 청보리밭이라니! 청보리밭은 분황사와 황룡사지 주변에 넓게 펼쳐져 있다. 면적은 4만㎡. 경주시가 계절마다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봄에는 청보리나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나 메밀꽃 등을 심는다. 어느새 무릎까지 키 자란 청보리는 이달 말이면 허리까지 자라 5월 초까지 절정의 초록빛 장관을 선사한다. 5월 말엔 누렇게 익은 보리를 수확한다니, 경주의 청보리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때마침 청보리밭을 누비며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이 보였다. 뒤따라 청보리밭을 천천히 걸으며 봄바람을 느낀다. 출렁대는 청보리밭을 걷다 보면 구황동 당간지주황룡사지를 자연스레 만난다. 청보리밭 사이에 우뚝 선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에 있던 것으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은 사찰의 행사를 알리기 위한 당(幢)이나 번(幡)이라는 깃발을 매다는 깃대인데, 이를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특이하게 거북 모양의 받침돌이 있어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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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 너머 광활한 빈터가 황룡사지다. 비록 터만 남았지만 그 규모가 상당하다. 신라 진흥왕 때 공사를 시작해 선덕여왕 때 완공된 황룡사는 동서로 288m, 남북으로 281m에 달했다. 불국사의 8배에 달하는 동양 최대 사찰로 위상을 떨쳤다고 한다. 높이 80m가 넘는 9층 목탑도 자랑거리였지만 고려 때 몽골군의 침략으로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황룡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황룡사역사문화관에 들르면 된다. 10분의 1 크기로 복원한 황룡사 9층 석탑 모형과 황룡사의 역사를 담은 3D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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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 분황사에 들러 모전석탑까지 눈에 담으면 금상첨화. 초록 잎 무성한 고목으로 둘러싸인 분황사 내부도 봄이 한창이다.


◇겹벚꽃 아래 낭만적인 산책길


분황사에서 신라왕경숲을 지나 보문교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명활성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보문호를 오가며 몇 번이고 지났던 길이지만 명활성이라는 이름과 위치가 낯설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산·월성·대릉원·황룡사·산성 등 다섯 지구 중 가장 생소한 산성 지구에 해당한다. 신라시대에 축조돼 수도를 방어했던 산성 일부가 복원돼 있다.


명활성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명활성 입구에서 진평왕릉으로 가는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다. 이 길은 황복사지를 지나 선덕여왕릉까지 이어지는데, 선덕여왕길이라고 부르는 총 6.1㎞ 코스다. 명활성 입구에서 진평왕릉까진 1.8㎞로 가볍게 걸을 만하다. 숲머리마을 뒤편 둑 따라 이어지는 이 길은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숨은 명소. 4월 중순부터는 겹벚꽃이 만발하는데, 중간중간 쉬어가기 좋은 의자와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둘레길 걸을 때 내려다보이는 한옥 마을은 보문숲머리 먹거리촌이다. 한정식, 한우물회, 석쇠구이, 막국수, 순두부 맛집과 운치 좋은 카페들이 모여 있어 허기를 달랠 수 있다.


벚꽃길을 걷다 보면 멀리 우뚝 선 진평왕릉이 서서히 보인다. 진평왕은 신라 제26대 왕이자 선덕여왕의 아버지. 밑둘레 10m, 높이 7m의 소박한 봉분이다. 으레 왕릉에서 볼 법한 문인상, 무인상, 호석, 돌난간, 도래솔(무덤을 둘러싼 소나무)이 진평왕릉에는 없다. 왕릉을 둘러싼 건 오래된 크고 작은 고목과 이름 없는 들풀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경주 시내에 있는 155개 고분 중에서 왕릉으로서의 위용은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고분은 진평왕릉뿐이다’라고 썼다.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 때문일까. 진평왕릉은 숨은 소풍 명소로 꼽힌다. 왕릉 주변에 돗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내는 친구와 연인들을 볼 수 있다. 비밀의 숲 같은 왕릉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계절이다.


◇요즘 대세 ‘나룻배 포토존’


경주시 석장동 동국대학교병원에서 형산강 쪽으로 내려가면 금장대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금장대는 형산강변에 서 있는 암벽이다. 예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기러기도 쉬어간다는 ‘금장낙안(金藏落雁)’으로 유명하다. 암벽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누각이 있는데, 느긋하게 형산강과 경주 시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최근 경관 조명을 개선해 야경 명소로도 뜨고 있다.


금장대 입구에 있는 수변공원도 지난해부터 소셜미디어에서 경주의 새로운 사진 명소로 주목받는 곳이다. ‘나룻배 포토존’이 그 주인공. 수변공원에 버려진 폐목선 한 척이 주변과 어우러져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든다. 웨딩 사진을 찍기에도 좋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커플이 줄을 잇는다.


금장대 수변공원을 찾을 이유는 또 있다. 산책로 따라 피기 시작한 유채꽃 때문이다. 4월부터 피기 시작한 유채꽃은 5월까지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월정교 앞 남천 주변에도 유채꽃이 피기 시작했다. 2018년 개통한 월정교는 1200년 전 신라의 교량을 복원한 것이다. 곧게 뻗은 회랑과 웅장한 2층 문루가 근사하다. 2층에는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전시하는 홍보관이 있다. 교각 위에서 바라보는 남천과 일대 봄 풍경도 여유롭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연인들도 보인다. 어느 방향을 건너든 월정교 주변엔 공원과 산책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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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리초야의 이색 디저트 '말차 먹은 첨성대'.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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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늘어선 교촌마을도 걷기 좋다. 경주 최부자댁과 향교, 전통 체험과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골목을 따라 고즈넉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교촌길에는 북적이지 않으면서도 이름난 맛집, 디저트 가게도 많다. 소셜미디어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리초야의 ‘말차 먹은 첨성대’는 첨성대 모양 쿠키가 앙증맞게 녹차 아이스크림 위를 장식한다.


◇향기 없는 꽃이라도


일몰 시간이 다가오면 황성공원으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빛누리정원에서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빛누리정원은 지난해 12월 문 열었다. 경주예술의전당 북편에 있다. 커다란 연꽃 조형물을 중심으로 LED 장미 1만405송이와 LED 수국 1만5780송이가 설치됐다. 신라 수막새에서 볼 수 있는 연꽃 문양을 모티브로 삼았다. 면적 4920㎡를 채운 꽃들의 향연은 일몰 후 시작된다. 클래식, 가곡, 가요에 맞춰 장미와 수국 색이 달라지는 라이트쇼가 펼쳐진다. 향기 없는 꽃이라도 분위기에 취한다. 경주의 색다른 밤을 만나기 좋은 ‘신상’ 여행지. 라이트쇼는 일몰 후 오후 10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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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바다도 추가해볼 만한 여행 옵션이다. 감포항까지는 보문관광단지에서 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감포항에서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송대말등대나 한적한 감포해수욕장, 문무대왕릉까지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감포항을 따라 조성된 해안둘레길도 걸어볼 만하다. 감포깍지길이라고 이름 붙은 해안둘레길은 사람과 바다가 깍지를 낀 길이라는 뜻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 깍지를 끼고 걷기 좋은 길. 특히 4구간에 해당하는 해국길은 깍지를 끼고 걸어야만 하는 고샅길이 이어진다. 감포공설시장 건너편에서 시작되는 해국길은 1920년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지금도 여전히 적산 가옥과 옛 창고, 술집, 목욕탕, 우물, 신당 등이 남아 있다. 근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골목길 따라 크고 작은 해국을 그린 벽화가 이어진다. 감포항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해국계단길은 커다란 해국이 그려져 이 길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곳이다. 향기 없는 꽃에 이끌려 숨은 경주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경주=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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