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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별명은 ‘청와대 마돈나’... 가슴에 17cm 수술 자국, 그래서 더 독하게”

[아무튼, 주말] 청와대 여성 경호관 1호 출신 배우 이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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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포즈를 취한 배우 이수련. 여기서 늘 경호관 복장으로 근무했던 그녀는 그만두고 10년 만의 첫 방문이라고 했다. 청와대 색깔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꽃분홍 블라우스를 골랐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거 다 식어서 못 먹으니깐, 환불을 해주든지, 다시 가져오든지!”


우아하게 차려입었지만, 입을 열면 천박함이 콸콸 흘러나온다. 불륜녀가 배달원에게 진상 짓을 한다.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의 한 장면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세상에 다시 없을 인간 말종!’ 같은 제목으로 조회 수 1000만을 넘겼다.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미는 장면을 연기하려고 그녀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누구는 ‘냄새나니까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했고, 또 누구는 ‘여자네? 남편 벌이가 시원찮아요?’라고 물었다. 이렇게 체득한 것을 연기로 표현한 그는 배달원이 아니라 불륜녀 역을 맡은 배우 이수련(42)이다.


2023년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는 넷플릭스 ‘사이렌: 불의 섬’이 작품상을 받았는데 이 여배우가 대표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태후의 최측근으로 음모를 꾸미는 최 팀장, 영화 ‘돈’에서 유부녀 매니저…. 상상을 초월하는 그녀의 이전 경력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이대, 군대, 청와대.’


배우 이수련은 대통령 경호실 최초의 여성 경호관이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VIP를 경호한 그녀는 돌연 사직하고 배우로 전향했다. 밑바닥 인생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이 배우를 전 직장인 청와대에서 만났다. 10년 만의 첫 방문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전 직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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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관 시절 이수련

이수련은 청와대 경호관이 됐을 때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굳게 닫혀 있던 금녀(禁女)의 공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청와대 경호관에 지원한 계기가 있나요?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원래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다들 학원에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돈은 없고, 뒤처질 순 없어 원장 선생님을 찾아가 말했죠. ‘언론인이 되고 싶은데, 학교도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다녔다. 돈이 없다. 수업만 듣게 해준다면 모든 심부름과 청소를 전담하겠다.’ 학원 잡일을 하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청와대 경호실, 최초 여성 대통령 경호관 공채’라는 공고를 본 거예요. ‘최초’라는 말에 끌렸고, 채용 전형을 보니 언론사 시험 과목이 거의 비슷했어요.”


-합격해 일해보니 어떻던가요.


“경호실은 유관 기관과 협조하거나 지휘 통제할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입사 후 여러 기관을 돌며 다양한 훈련을 거칩니다. 공수 교육, 해병대 훈련, UDU 등 육해공군을 아우르는 군사 훈련도요. 여중·여고·여대라는 ‘수녀 라인’을 지나온 제겐 군사 훈련이 가장 낯설었어요.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어요. 생리 기간에도 바닷물에 몇 시간 동안 빠졌다 기어올랐다를 반복하며 IBS 훈련을 했고, 11m 높이에서 뛰어내리고, 몇 km 바다를 수영하다 모래 섞인 주먹밥을 입에 욱여넣기도 했죠. 다들 저를 ‘독한 X’이라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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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관 시절 이수련

-경호관의 일과를 소개한다면.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났어요. 전 여성이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훈련을 했죠. 매일 아침 달리기, 수영, 사격까지 2~3시간씩 연습했어요. 경호관은 총기를 숟가락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해요. 동기 중 가장 저조한 명중률로 출발해 25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담배꽁초를 정확히 맞히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죠.”


-남성들의 문화는 적응할 만했나요?


“힘들었죠. 왜 시간만 나면 축구하고, 배구하고, 족구하는지 몰랐어요. 축구하느라 헤딩을 하면서도 ‘쉬는 시간엔 좀 내버려두지’ 싶었는데, 하다 보니 그게 조직 문화더라고요. 제가 못 하는 게 없도록,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어요.”


-그 시절 별명이라면.


“청와대 마돈나(웃음). 제가 VIP 옆에 있고, 최초의 여성 경호관이다 보니, 기자들에게 사진도 많이 찍히고, 유관 기관에서 구경하러 오고 그랬어요.”


-기억에 남는 선배가 있나요?


“경호실은 보안 구역이라 늘 막내가 청소를 해요. 전 매일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의 커피 자국까지 맨손으로 긁어내고, 선배들 책상을 물걸레로 닦았죠. 어느 날 한 선배가 부르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 앞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그리고 사수가 저를 효자동 구둣방으로 데려갔어요. 신발을 맞춰주셨는데, 정장 구두처럼 생겼는데 볼이 넓고 쿠션도 두툼해 운동화처럼 편하더라고요. 그 구두를 신고 나니 진짜 경호관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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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관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수련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들과 여러 국빈을 모셨는데 특별한 일화라면.


“대통령 관련 내용은 말할 수 없어요. 국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 장관이에요. 세 번 이상 모셨는데, 매번 절 기억하시곤 ‘당신이 하는 일을 응원하고 있다’고 하셨죠. 같이 온 미국 경호원들은 키가 2m에 달했는데, 작은 체구의 저를 보곤 ‘혹시 닌자(무술인)냐? 비밀 무기를 숨기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자도 기억에 남아요. 저를 만나곤 UAE도 여성 경호관을 뽑았거든요. 저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여성 경호관 훈련도 맡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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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한 때 경호 중인 이수련(왼쪽). /이수련 제공

-최근접 경호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뭔가요.


“VIP 보호죠. 경호관은 끝없이 ‘죽는 훈련’을 해요. 큰 소리가 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소리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츠러들어요. 경호관은 그 본능을 이기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체위를 확장하며 내 뒤를 보호하는 훈련을 합니다. 위험한 물체가 날아오면 내 몸을 던져 덮고 막아내서 주변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게 존재의 목적이에요.”


-무섭지 않았나요?


“전혀요. 저는 선천성 심장병 환아였어요. 모르는 분들의 수혈로 살아났지요. 덤으로 사는 생명이라고 여겨요. 그러다 보니 ‘가치 있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죠. 한 번 사는 인생,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죽으면 너무 좋잖아요. 특히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뜻을 모아서 선출한 행정기관이고, 나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니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죠. 저희는 ‘경호관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고, 살아서가 아니라 죽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말해요. 현충원에 묻힌 선배들을 볼 때마다 그 옆에 묻히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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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관 시절 이수련

◇가슴의 수술 자국


이수련의 가슴에는 17cm의 긴 수술 자국이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커버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수술 자국을 가리지 않나요?


“심장 수술을 한 분이나, 그런 아이가 있는 분들은 알아차리고 메시지를 보내요. ‘우리 아이도 심장 수술을 했는데, 배우님이 잘 사는 거 보니 우리 아이도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심장 수술이 삶에 장애물이 된 적은 없나요.


“육군사관학교 입시에 떨어진 적이 있어요. 심장 수술 자국 때문에 체력 시험도 못 봤지요.”


-육사는 왜 지원했나요?


“집에 돈이 없었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때 IMF 사태가 터졌어요. 주부이던 어머니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용돈을 받은 적도, 학원에 다닌 적도 없어요. 매점에서 많이 사 먹는 친구가 가장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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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청와대 경호원 배우 이수련(아무튼주말 게재 전 사용금지)-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언제부터 배우를 꿈꿨나요.


“작은아버지가 연극배우였어요. 어릴 때부터 연극을 볼 기회가 많았죠. 그때부터 동경만 하고 배우가 되겠다는 말은 못 꺼냈어요. 제가 뛰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춤이나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데 경호관 10년을 하고 나니 ‘이제 못 할 것이 없다.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3세에 데뷔한 이 배우의 꿈


-배우로 데뷔하기에 젊은 나이는 아니었는데요.


“다들 그랬어요. ‘네가 전지현, 송혜교랑 동갑이야. 그들은 다 주인공을 하고 있는데 네가 걔들보다 예뻐?’ 그런데 전 톱스타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착한 딸이었어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살았는데, ‘공부만 잘하면 정해진 길을 잘 갈 수 있다’고 배웠는데, 어느 순간 왜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청와대 경호관 그만둘 때 부모님 반응은.


“아쉬워하셨죠. 부모님은 제 직장의료보험 피부양자였기에 건강보험증에 내 직장명인 ‘청와대 경호실’이 기재돼 있었어요. 그 의료보험 카드를 가지고 다닐 만큼 자랑스러워하셨죠. 그런 딸이 모든 지위와 경력을 버리고 연기를 하겠다니, 걱정이 많으셨죠.”


-배우의 삶은 어떻던가요?


“오디션에 수백 번 떨어졌어요. 경호원은 표정이 있으면 안 돼요. 그래서 강남역 연기 학원에서 스무 살 어린 친구들과 울고 웃는 것부터 연습했어요. 당시 전 이력서에서 이대와 청와대 경호관을 뺐어요. 배우 데뷔 10년 가까이 되어서야 ‘인간극장’ 등으로 그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죠.”


-오디션에서 가장 상처 받은 말이라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들요. ‘눈을 좀 집어야겠다’ ‘조명 안 받게 생겼다’ ‘그리 예쁘지도 않은데 왜 그 나이에 연기가 하고 싶으냐’ ‘빨리 취집해 아기나 낳지’…. 나중에는 화도 안 나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화내는 것조차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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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련이 펴낸 책 '청와대를 떠난 배우'

-가장 재미있었던 촬영은요?


“드라마 ‘황후의 품격’요. 비중 있는 배역을 처음 맡았고, 모든 회차에 다 등장했거든요. 그 전에는 시체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주연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작품의 흐름에 동행할 수 있어 좋았어요. 장나라 배우가 주연이었는데 동갑이라 친해졌어요. 제가 ‘청와대를 떠난 배우’라는 책을 냈을 때도, 말도 안 했는데 이미 주문했다고 캡처해 보내주더라고요.”



-앞으로 목표라면.


“염혜란 배우님 연기를 너무 좋아해요. 저도 그분처럼 연기하고 싶어요. 김윤석·송강호·최민식 배우님 같은 역할을 하고 싶고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청와대 시절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여자 경호관이라는 직업도 있다’는 걸 소개하기 위해서였는데, 제가 강의 끝에 이렇게 말했어요. ‘사실 인생은 모르는 거다. 제가 나중에 레드 카펫을 밟는 배우가 될 수도 있다’고. 세상에 없는 세 가지가 정답, 비밀, 공짜래요. 미래를 단정 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기 바랍니다. 운동이든 취미든 아르바이트든. 그 모든 것에 공들인 간절한 시간이 여러분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줄 겁니다. 모든 일, 모든 관계는 그렇게 다 소중해요.”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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