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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호랑이 그림? 파초 한 그루가 더 낫다

[아무튼 주말] 복을 부르는 인테리어 풍수

조선일보

2021년도 벌써 아흐레가 지났다. 한 달 후 2월 3일이면 입춘(立春)이다. 그날 ‘立春大吉(입춘대길)’을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일 것이다. ‘새해[立春] 크게 길하라!’는 뜻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2021년 신축년은 이때부터다. 해가 바뀌고 철[節]이 바뀌면 자연의 기운이 바뀐다. 그에 따라 사람의 운도 달라진다. 좋은 운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거주 공간에 작은 변화를 주어 좋은 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인테리어 풍수다.


2001년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 아내였던 크리스틴 데스쿠에트는 결혼 전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이자 TV 진행자로 활동했다. 대사 아내로 한국에 와 풍수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접목해 ‘리빙 인테리어’란 책을 출간했다. 그녀는 말한다. “순풍에 노 저을 때 순행하듯, 풍수 힘을 이용하여 건강과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미국·지중해·프랑스·영국 스타일을 고객 취향에 따라 부엌·거실·침실 등에 적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테리어 풍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연예인들과 백화점 인테리어 시공에 경험이 많은 노진선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연예인들은 개성이 강해 자기만의 인테리어를 좋아하는데, 대개는 해외에서 보고 온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요즈음은 일반인들도 자기 주장이 반영된 인테리어를 선호한다. 일부 사업가 가운데 북에서 들여온 ‘백두산 호랑이 그림’, 혹은 ‘김정일 추사체’를 인테리어에 활용해 지도자 기운을 받고자 하는 분도 있다.” ‘김정일 추사체’란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독특한 글씨체와 추사 김정희 글씨체를 빗대어 말함이다. 실제로 북한에서 백두산 호랑이 그림이나 김정일 글씨 등이 은밀히 수입되어 유통된다고 한다. 극성스럽다.


데스쿠에트와 노진선 두 디자이너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람마다 원하는 기운이 무엇인가에 맞게 그림·소품·화초 등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재물을 얻고자 하면 배 그림[船畵]도 좋다. 빈 배가 아닌 화물이 가득 찬 배이어야 한다. 또 출항이 아닌 입항선이어야 한다. 승진이나 권력을 원하면 웅장한 산 그림이 좋다. 풍수 격언 ‘산은 인물을 키워주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山主人水主財]’의 변용이다. 둘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그림이 있는가?


1000원권 지폐 한 장으로도 가능하다. 앞면에는 퇴계 선생, 그리고 뒷면에는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가 실려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도산서원이다. 멀리 청량산 자락이 힘차게 내려오면서 낙동강 물을 만나 좋은 기운이 뭉친 곳이다. 재물과 명예의 기운을 주는 그림이다. 그림 속 소나무 기운도 예사롭지 않다. 소나무는 종로(宗老·최고 어른)의 기운을 준다. 북한산 ‘백두산 호랑이 그림’보다 좋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어떤 인테리어 풍수를 하고 있는가?”라고 독자들께서 물으실지 모른다. 거실에 파초 한 그루를 키운다. 왜 파초인가? 필자의 해명보다 학자 군주이자 풍수에 능했던 정조 임금의 파초 그림과 관련 시로 대신한다.


“庭苑媚春蕪(정원미춘무), 綠蕉新葉展(녹초신엽전), 展來如箒長(전래여추장), 托物大人勉(탁물대인면).”


“정원 아름다운 봄 싹 무성해지는데, 푸른 파초 새잎을 펼치네, 펼치는 잎 빗자루처럼 길어, 그 파초를 보고 대인들이 힘쓰네.”


마지막 문장은 풍수의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과 같은 의미다. ‘파초의 기상을 보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라’는 뜻이다. 파초는 주기적으로 줄기 한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붓 모양으로 곧추 새싹을 올린 뒤, 순서대로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넉넉하게 잎을 펼친다. 줄기는 곁가지를 치지 않으며 그 색은 늘 푸르다. 정조 임금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이 파초를 읊었던 이유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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