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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방정식도 못 풀던 다빈치, 어떻게 인체해부도를 그렸나

스티브 잡스 전기 쓴 아이작슨, 다빈치의 노트 7200쪽 분석

 

방정식도 못 풀던 다빈치, 어떻게 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월터 아이작슨 지음|신봉아 옮김|아르테|720쪽|5만5000원

700쪽 넘는 이 책에서 독자를 매혹하는 요소는 저자다. 타임지 편집장을 역임한 월터 아이작슨(67)은 지난 2011년 펴낸 스티브 잡스 전기가 한국에서만 60만 부 팔려나가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가 궁금해 책을 집어들 것이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전기는 그가 숨진 지 30년 후인 1550년 이미 나왔다. '최초의 미술사가'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조르조 바사리(1511~1574)가 펴낸 '뛰어난 화가·조각가·건축가의 생애'의 일부로서다. 레오나르도와 동시대 인물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와 교류한 사람들 인터뷰를 전기에 반영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를 50차례가량 인터뷰했던 아이작슨은 꽤나 고심했을 것이다. 어떻게 바사리의 '현장 취재'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레오나르도 연구에만 50년을 바친 미술사학자 마틴 켐프(77) 옥스퍼드대학 명예교수의 걸출한 저작 '레오나르도'(2004)도 신경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이야기꾼인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를 '천재'라 부르길 주저함으로써 진부한 신화를 깨뜨린다. 그는 "레오나르도에게 '천재'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를 벼락 맞은 특별한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오히려 그의 가치를 축소시킨다"면서 레오나르도의 재능이 신에게서 비롯했다고 쓴 바사리를 반박한다.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이 개인의 의지와 야심을 통해 완성되었으므로,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한번 배워볼 수 있는 종류라고 주장한다.

방정식도 못 풀던 다빈치, 어떻게 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그림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기원전 1세기 로마군 장교 비트루비우스의 책에 나오는 이상적인 인체 비율에 다빈치 자신의 해부학적 연구 결과를 결합해 구현했다. 아이작슨은 이 그림이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는 설에 무게를 싣는다. /아르테

하버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이력답게 아이작슨은 7200쪽 가까운 레오나르도의 노트를 충실히 분석한다. 사생아로 평생 가족다운 가족을 갖지 못했으나 다정다감한 성격에 진홍색 옷을 즐겨 입으며, 산만한 완벽주의자이자 전쟁화에 매료된 채식주의자였던 거장의 생애를 탐구한다.


아이작슨이 그려내는 레오나르도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초인적 두뇌를 지닌 '가뿐한 천재'가 아니다. 기하학에는 능했으나 산수에는 약해 평생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손이 느려 회반죽 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는 프레스코 벽화도 그리지 못했다. 그림을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일로 악명 높아서 오늘날 그가 전부 그렸거나 주도적으로 그렸다고 알려진 작품은 열다섯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이작슨은 말한다. "창조력은 때때로 천천히 뜸을 들이는, 심지어 아주 꾸물거리는 작업 방식을 요구한다."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레오나르도는 평소처럼 꾸물댔다.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까 걱정된 의뢰인이 그를 호출했을 때, 레오나르도는 "대단한 천재성을 지닌 사람은 때로는 가장 적게 일할 때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한다"며 "아이디어와 그 구성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방식을 골똘히 고민한 다음에야 거기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창의성은 협업에서 나온다"는 아이작슨의 지론은 이번 책에서도 반복된다. 레오나르도의 그림 '성모와 실패'에는 조수들이 그린 수많은 복제화가 존재하는데, 아이작슨은 이를 놓고 "어떤 버전이 '오리지널'이고 어떤 것이 일개 '복제화'에 불과한가 하는 미술사학자들의 전통적인 질문을 살짝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거장과 제자들의 협업이 이뤄졌던 레오나르도 작업실의 성격에 주목한다. "역사 속에서 창의성이 상품으로 발전한 많은 사례와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의 피렌체 작업실은 개인의 천재성과 팀워크의 결합을 통해 굴러갔다."


레오나르도의 탁월한 관찰력도 노력의 산물에 가까웠다고 해석한다. 딱따구리의 혀 모양에까지 관심을 기울인 노력이 입술 근육에 대한 강박적인 해부학 연구로 이어졌고,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려내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에서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아이작슨의 관심은 오랫동안 '창의성'이었다. 그 관심이 '잡스의 영웅' 레오나르도에 다다르며 도약하고 무르익는 과정이 흥미롭다. 작품 분석까지 시도한 도전 정신도 높이 살 만하다. 다만 결론에서 굳이 '호기심을 가져라', '한 분야에 갇혀 있지 마라' 등 '레오나르도에게서 배울 점' 리스트를 제시하는 건 어리둥절하다. 이것은 자기계발서인가, 전기인가.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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