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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믿고 찾는 맛집 '기사식당'… 혼밥족도 가족 손님도 몰린다

2018 서울 기사식당 로드


주차 안내원의 지휘봉에 홀려 차를 대고 식당에 들어간다. 주문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음식이 빠르게 상에 놓인다. 따뜻한 밥에 인심 좋은 주인이 수북하게 담아주는 반찬을 비우고 나면 숭늉이나 인스턴트커피, 요구르트 서비스가 기다린다. 셀프 배식대에 놓인 밥과 국·반찬을 더 가져다 먹거나 '혼밥'한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빠르고 푸짐하고 저렴하게'를 내세운 기사식당이 '혼밥러(혼자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밥 성지'로 통하는 이유다.


몸과 마음이 시려 집밥이 더 생각나는 계절이다. 혼밥해도 서럽지 않고, 온 가족이 가도 저렴한 서울의 기사식당을 찾았다. 지난 1년간 SK텔레콤 길 안내 서비스 T맵에서 '기사식당' 검색 순위가 높았던 기사식당과 택시 기사들이 추천한 맛집을 공개한다.

기사식당의 꽃은 '돼지불백'

믿고 찾는 맛집 '기사식당'… 혼밥족

1 코다리찜, 갈치조림, 임연수 구이 등으로 소문난 수유동 '진미기사식당' 주인 박용기·정은영씨 부부는 "이렇게 퍼주다 보면 남는 날도 있것지!"라며 활짝 웃었다. 2 밥 볶아 먹는 게 진리인 자양동 '송림식당'. 3 연남동 '감나무집기사식당'의 돼지불백 한상 차림. 4 영양밥 같은 돌솥밥이 기본 제공되는 자양동 '우성식당'. 5 '반찬 무한 리필'에 김치찌개가 5500원인 역삼동 '영동 스낵카'. 6 돈가스 맛집으로 유명한 장안동 '장안정'의 정식. 7 택시 기사의 휴게소 같은 역삼동 '영동 스낵카'. 8 택시 기사보다 일반 손님이 더 많은 '남산 돈가스 거리'.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옛날에 기사식당은 주차하기 편리하고 저렴한 맛집이 최고였죠. 밥 먹고 나와 차에서 잠시 눈 붙일 수 있는 곳이면 금상첨화였고요. 넓은 주차장이 있는 식당들은 일반 손님이 많아지면서 대부분 기사식당 간판을 내렸어요. 여기는 변함이 없어 좋아요. 여전히 기사들을 '우대'해 줍니다."


20여 년 택시를 몰았다는 김상길(68)씨는 광진구 자양동 송림식당 앞에 차를 대며 이렇게 말했다. 택시 기사에게 "단골 기사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곳, 송림식당을 빼놓지 않는다. T맵 '기사식당' 검색 순위도 1위. 일반인도 많이 찾는다. 자양동 기사식당 중에서도 터줏대감인 송림식당은 40년 전통을 자랑하며 점심·저녁 가리지 않고 만석이다. 주차 민원이 많아 식당 건물 앞에 주차 타워를 추가 증축한 뒤 손님이 더 밀려드는 모양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운전기사들은 1층, 일반 손님들은 2층으로 안내한다. 메뉴판엔 돼지불백(8000원), 해장국·김치찌개·된장찌개(모두 6500원)가 전부. 메뉴에 없는 '돼지불백볶음밥'이 유명하다. 돼지불백에 곁들여 나온 반찬과 상추를 넣어 가위로 잘게 자르고 밥을 넣어 볶아 먹는 게 '송림식당 스타일'이다. 밥 따로, 돼지불백 따로 먹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돼지불백엔 선지해장국, 숭늉, 물김치, 반찬 등이 기본으로 나오고 이후 셀프로 추가해 양껏 먹을 수 있다. 선지해장국은 "한 그릇 더!"가 절로 나올 만큼 진국이다. 계산을 하면 주인이 요구르트를 손에 쥐여 준다. 영업시간은 오전 6시~오후 11시.


송림식당 인근 우성식당은 돌솥밥 세트 메뉴를 내세웠다. 고구마, 단호박, 콩 등을 올려 갓 지어낸 돌솥밥은 영양밥 수준이다. 여느 기사식당처럼 생선구이와 조림, 볶음류 등 메뉴가 다양해 결정장애를 부른다. 인기 메뉴는 청국장(6000원)과 '오불백(오징어불고기백반, 8000원)'. 2인 이상 손님을 위한 세트 구성도 있다. 노상 주차라 아쉽지만 관리 요원이 상주해 주차를 돕는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오후 10시 30분.


직접 볶아 먹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구워 주문과 동시에 접시에 담아내는 돼지불백은 마포구 연남동 감나무집기사식당과 성북구 '성북동 기사식당 거리'에 있는 쌍다리돼지불백이 유명하다. T맵 기사식당 검색 순위 각각 2, 3위에 올랐다.


감나무집기사식당은 연남동답게 20~30대 젊은 층이 더 많은 분위기다. 불향 은은하게 나는 돼지불백(9000원)에 '미니' 잔치 국수, 달걀부침 등이 양은 쟁반에 한 번에 담겨 나온다. 다만 2~4인이 함께 식사하는 경우가 많아 혼밥이 다소 외로울 수 있다. 이에 비해 40여년 전통의 쌍다리돼지불백은 분점을 내며 쏠림 현상이 덜해졌지만 '금왕돈까스'와 함께 기사식당 맛집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집이다. 반찬은 단출하나 돼지불백 양이 넉넉하다. 영업시간은 감나무집기사식당이 24시간, 쌍다리돼지불백이 오전 9시~오후 9시 30분(둘째·넷째 주 일요일 휴무) .

매콤한 코다리 찜, 푸짐한 돈가스

믿고 찾는 맛집 '기사식당'… 혼밥족

수유동 ‘진미기사식당’의 임연수 구이와 코다리찜.

강북구 수유동 기사식당 거리엔 현재 네다섯 곳이 '기사식당'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 그중 진미기사식당은 코다리 찜(7000원)으로 블로그와 맛집 커뮤니티에 자주 등장한다. 5년 차 택시 기사 이정배(66)씨는 "조림류 잘하고 반찬 맛있는 집"이라고 소개했다.


이 집 코다리 찜은 성북동 코다리 맛집 '성암 동태랑 코다리'처럼 코다리 한 마리에 콩나물을 수북하게 얹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따뜻한 돌솥밥에 제법 실한 코다리를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셀프바의 반찬은 전남 구례 출신으로 음식 솜씨 좋은 주인이 직접 만든다. 흔한 기사식당 반찬들이 아닌 갓김치, 파김치, 매생이 전과 같은 반찬들이 수시로 '리필' 된다. 식당 옆 골목이나 대로변 노상 주차해야 한다. 24시간 영업.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는 '동부상운'의 10년 차 택시 기사 남기본(74)씨는 강남구 도곡동 영동코다리(구 영동낙지)를 추천했다. "코다리찜, 갈치조림, 돼지불백 등 모든 메뉴가 7000원인 곳이에요. 문 연 지 10여 년 됐는데 기본적으로 맛이 다 괜찮아요." 영동코다리의 코다리 찜은 꾸덕한 코다리를 양념에 조려내 코다리 자체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식사 시간대 주차가 쉽진 않다. 영업시간은 8시 30분~오후 10시.


바삭하고 푸짐한 돈가스도 기사식당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남산 케이블카 주변에 형성된 남산 돈가스 맛집들은 택시 기사보다는 관광객이나 나들이객 차지가 된 지 오래다. 남씨는 "남산 지날 때는 소파로에 있는 남산돈가스를, 강남 지날 땐 윤화돈까스를 찾는다"고 했다. 남산돈가스는 1992년에 남산 케이블카 근처에서 문 열어 우여곡절 끝에 1997년 남산돈가스 거리와 조금 떨어진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돈가스(9000원)와 생선가스(9000원), 치즈돈가스(1만2000원), 반반가스(1만원) 말고도 조선국밥(7500원), 꽁치김치찌개(7500원)를 판매한다. 퇴계로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가 인기. 윤화돈까스는 소고기함박까스(8000원)와 윤화정식(8000원)을 빼면 모두 7000원으로 착한 가격대를 자랑한다. 영업시간은 남산돈가스 오전 8시 30분~오후 10시, 윤화돈까스 오전 9시 30분~오후 10시.


이 밖에 동대문구 장안동의 장안정도 돈가스 기사식당 맛집으로 꼽힌다. 정통 돈가스뿐 아니라 매운 돈가스, 냉면, 설렁탕을 두루 맛볼 수 있다. 맛 방영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연인이나 가족 외식 손님이 더 많다. 오전 9시~오후 9시 30분 영업하며 매주 월요일 휴무.

반계탕, 꼬막비빔밥, 연탄불 생선구이도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개인택시를 30년 넘게 하다 보니 매번 먹는 메뉴가 질릴 때도 있어요. 그런 날은 특식을 찾죠." 기사 백동현(60)씨는 마포구 신공덕동 화원기사식당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몸보신용 반계탕(7500원), 짜글이찌개(7000원) 등 메뉴가 다양하다. 백씨는 "효창동 기사식당 거리에 있다가 두 번 이사한 집인데 옮겨간 곳을 졸졸 따라다니게 되더라"며 웃었다.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주차장 근처에서 2대째 운영 중인 서가네식당은 김치오삼볶음(8500원)과 알탕(8500원)이 대표 메뉴지만 겨울에만 선보이는 특별식 꼬막비빔밥(9000원)을 먹으려고 차를 세우는 손님이 많단다. 기존 돌솥비빔밥에 제철 꼬막을 투하한 꼬막비빔밥은 지글지글 타는 소리부터 식욕을 돋운다. 양념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다. 인근에 있는 47년 전통의 '순천기사식당'과 '일번지기사식당'도 찾는 이들이 꾸준하다. 영업시간은 오전 8시~오후 9시 30분.


생선구이 그릴이 등장하며 많이 사라진 연탄불 생선구이를 여전히 맛볼 수 있는 기사식당도 있다. 중랑구 상봉동 연탄불생선구이기사식당에선 연탄불에 구운 불백, 고등어와 삼치구이(모두 7000원)가 기다린다. 주문과 동시에 돌솥밥을 올리고, 연탄불에 생선을 바로 구워준다. 영업시간은 오전 8시~오후 10시.

저렴한 가격에 한 끼 해결 '영동스낵카'

5년 차 개인택시 기사 김기범(50)씨는 "기사식당도 일반 손님이 늘면서 메뉴판 가격은 올리고, 기사들이 식사하면 음식값을 1000원씩 빼주기도 하는데 그래도 한 끼에 6000~8000원 하다 보니 결국 저렴한 곳으로 향하게 된다"고 했다. 그를 비롯해 기사들이 "부담 없이 식사할 수 있다"고 꼽은 식당은 강남구 역삼동 한티역 7~8번 출구 부근에 있는 영동 스낵카. 1972년 이동식 식당인 스낵카로 개조한 버스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주차장에 전시돼 있다. 식사는 그 옆 식당에서 할 수 있다. 메뉴는 한·중·일식으로 나뉜다. 짜장밥 5000원, 김치찌개 5500원, 우동 4000원, 어묵과 삶은 달걀 반쪽을 넣은 '오뎅우동'이 4500원이다. 가장 비싼 메뉴는 뚝배기에 제공되는 호주산 소불백과 북어찜, 콩비지로 모두 7000원을 넘지 않는다. 택시 기사들은 "음식이 특별히 맛있다기보다 그야말로 기사들이 많이 찾는 기사식당"이라고 했다. 식사 시간대에 가면 택시 회사 주차장처럼 택시가 즐비하다. 식사 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워셔액(1500원)까지 재충전해 갈 수 있다. 24시간 영업.


한편 주류 판매 기준은 식당 별로 다르다. 반주(飯酒)조차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식당이 있는가 하면 일반 손님에게만 제한적으로 주류를 파는 곳도 있다. 식사 시간에 제한을 두진 않는다. 오전 11시, 오후 2시와 8시 이후 등 한가한 때를 공략하는 게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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