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父라 출생신고 못한다는 내딸, 아기띠 매고 택배일하며 지켰죠
[아무튼, 주말] ‘사랑이 아빠' 김지환씨 분투기
지난 28일 사랑이와 함께 만난 김지환 대표. 아이가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니 김 대표 얼굴에 '아빠 미소'가 번졌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김지환(44) 아빠의품(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대표는 16개월만에 딸 사랑이(가명·7) 출생신고를 했다. 사랑이 아빠가 무심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하여야 한다(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제2항)’는 법 조항에 막혔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 주민센터 가서 출생 신고서 한장 내면 되는 일이 이 미혼부에게는 세상 어느 시험보다 어려웠다. 법률 구조공단을 수시로 드나들고 1인 시위와 재판 끝에야 사랑이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아이로 등록될 수 있었다. 2013년에 태어난 아이를 2014년 9월에야 출생신고 하던 날, 아빠는 주민등록상 생일을 그해 1월로 적었다. 실제 태어난 날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등록해주고 싶어서. 지난해 12월 중순 그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에서 출생신고도 안 된 8세 아이가 친모에 의해 살해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료기관이 출생 즉시 이를 관계 당국에 통보하는 ‘출생 통보제'가 시급하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 28일 김 대표를 다시 만났다.
–미혼부 출생 신고가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나도 내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법률구조공단이나 가정법원에 물어봐도 다들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이 엄마와는 임신 중기를 지나면서부터 갈등이 심했고,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미혼부의 출생신고 절차가 엄격한 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민법의 친생 추정 조항 때문이다. 아이 엄마가 법적으로 혼인한 상태라면, 아이는 친아빠가 따로 있어도 엄마의 법적인 남편의 자녀로 추정을 받는다. 이 경우 미혼부가 출생 신고를 하게 되면, 중복 출생 신고가 된다. 이를 막고자 미혼부모가 낳은 아이의 출생 신고는 엄마로만 제한해 놓은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처럼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친부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생긴 법 조항”이라며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는 요즘 친생 추정 조항은 아이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했다.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했다. 8개월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로.
“원래는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인데, 내 새끼 일이니 뭐든 하게 되더라. 출생 신고 안 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건강보험 혜택도 못 받고 어린이집도 못 보낸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니 나도 일하러 갈 수가 없었다. 월세와 관리비가 밀리면서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 노량진 고시원으로 가게 됐다. 부모와도 연을 끊은 상태였다. ‘아이 고아원에 보내라’는 말이 가슴에 대못으로 박혔다. 몇 년 후에 나도 자식 키워 보니 그제야 부모님 아프게 해드렸다는 걸 알았다.”
–돌도 안 지난 아이와 고시원에서 어떻게 살았나.
“일반 주택인데 방은 각자 쓰고 부엌과 화장실은 공유하는 형태의 고시원이었다. 고시원 사장님이 돈 있으면 있는 만큼만 받고, 없으면 안 받으셨다. 고시생들도 다들 착했다. 고시생 3명과 살았는데, 밤 10~11시까지 밖에서 공부하다 늦게 들어오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했다. 우리 아이 첫돌 잔치도 그 고시생들이 케이크 사 들고 와서 해줬다. 그 친구들 모두 고시 붙었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지낸다. "
최근에 일면식도 없는 미혼부를 도와 그의 딸 아이를 돌본 선행이 알려지면서 배우 김혜리에게 관심이 모여지고있다./스포츠조선 |
–경제 활동은?
“아이가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일자리가 13번 바뀌었다. 타이 마사지숍에서 아이 한쪽에 눕혀 놓고 카운터 보고, 아기띠 한 채로 청소하고, 유모차 끌고 택배 일을 했다. 아기 데리고 다닌다고 들통나서 잘리기도 하고···. 그러다 탤런트 김혜리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일면식도 없는데 1인 시위 하는 걸 봤다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근처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서부터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중개 보조로 일하면서, 여행사 운전기사로 투잡을 뛰었다.”
–출생 신고는 어떻게 했나.
“먼저 법원에 성(姓)본(本) 창설 허가심판청구를 했다. 이를테면 우리 아이가 광화문 김씨 시조가 되는 거다. 이걸 하려면 갓난아이가 이를 청구할 수 없기에 대리인이 필요한데, 나는 아이의 법적 대리인도 친권자도 아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서 생물학적 친부임을 증명해 특별 대리인임을 인정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성본 창설 허가가 나오면, 이번엔 뿌리가 자신부터 시작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를 만들어 달라는 소송을 해야 한다. 이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구청에 ‘내 자녀가 맞음을 인정해 달라’는 인지(認知) 신청을 해야 한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져야 아이가 가족관계등록부상 내 자녀로 기재될 수 있다. "
–듣기만 해도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포기하는 아빠들이 많았다. 사랑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의 1인 시위와 재판 과정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이듬해 일명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이 생겼다. 아이 어머니 이름이나 등록 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유전자 검사 결과를 거쳐 친부임을 증명하면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는 법이다.
–사랑이법도 생겼는데, 미혼부를 돕는 단체(아빠의품)를 만들었다.
“나는 미혼부라면 다 나처럼 아이 엄마를 찾을 수 없어서 출생 신고를 못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랑이법을 적용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빠들에게서 계속 도와달란 연락이 왔다.”
–무슨 말인가.
“행방불명이 아닌데도, 출생 신고를 못 해준다는 엄마들이 많다. 출생 신고를 하면 기록이 남는데, 그걸 꺼린다. 청소년 미혼모는 부모님이 알까 봐, 대기업 다니는 고학력 여성은 잃을 게 많아서, 법적인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성과 아이를 낳은 경우 등. 이런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데, 현행법으로는 엄마가 안 해주고 버티면 방법이 없다.”
–인천에서 숨진 8세 아이의 경우가 그랬다. 친생부는 신고를 원했는데, 법적 배우자가 따로 있던 엄마가 끝까지 거부해서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엄마가 자수를 안 했다면, 그 아이의 죽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생신고는 단지 복지 혜택을 못 받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 생존 문제다. 이걸 지금까지 계속 말해왔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 하는 김 대표(오른쪽). 미혼부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
–지난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출생 통보제가 시급하다’는 성명을 냈다. 여가부도 출생 통보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출생 통보제는 꼭 필요하지만, 병원 외 출산을 낳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엄마들이 신고 안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기록을 남기기 싫다는 건데, 통보제를 하면 병원 밖으로 숨어버리지 않겠나. 가족관계등록법에 엄마만 등록할 수 있다는 걸 엄마 또는 아빠로 바꿔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21대 국회에 이런 내용의 법안이 이미 발의돼 있지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과거에도 (곧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이런 분위기는 몇 번 있었는데 흐지부지됐다.”
–얼마 전 총리도 나서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번엔 뭔가 바뀌지 않겠나.
“미혼부 출생신고 문제를 얘기했을 때, 단 한 명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법을 고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가족관계등록법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한다. 미혼부를 도와달라는 게 아니다. 나에겐 돌을 던져도 된다. 당연히 가져야 할 아이의 권리를 지켜달라는 거다.”
–혼자 아이 키우기로 한 선택을 후회한 적 없나.
“단 한 번도(없다). 신용불량자 되고, 부모와 연도 끊어지고 정말 아무것도 안 남은 암담한 상태인데도 우리 딸이랑 있으면 그렇게 행복했다. 단칸방에서 애를 바라만 봐도 좋았다.”
1975년 미국에서는 사별한 아내 대신 아기를 키우는 남자에게는 ‘보육은 엄마 몫’이란 이유로 보육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당시 변호사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이를 대법원에 제소했다. 대법원은 판결했다. “사회보장법에 내재된 젠더 차별은 세 명의 당사자, 곧 아내, 남편, 아기 모두를 차별한다.” 김 대표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지난해 타계한 미 연방 대법원 대법관 긴즈버그의 말이 떠올랐다. “남성 또한 성별에 근거한 차별로 고통받는다.”
[남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