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퀸, 800만을 위로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 퀸의 고향 영국 누르고 매출 2위
"그 시절 영국엔 두 명의 여왕이 있었다."
1970~80년대 세계 대중음악계를 지배한 록밴드 '퀸'에 쏟아진 찬사다. 록밴드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7일 관객 800만명을 돌파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20분쯤 누적 관객 수 800만203명을 기록했다. 국내 개봉한 음악 영화로 최초이자 최고 기록이다.
최근‘보헤미안 랩소디’신드롬의 주역이 된 영국 밴드 퀸. 왼쪽부터 브라이언 메이, 프레디 머큐리, 존 디콘, 로저 테일러. 리드 보컬 프레디는 1991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유니버설 뮤직 |
한국 매출은 영국을 뛰어넘은 상태다. 매출 1위는 북미 시장으로 16일까지 1억8042만달러(약 2040억원). 2위가 우리나라로 6113만달러(약 692억원)이고 3위 영국은 5863만달러(약 664억원)다. 전 세계 누적 매출은 약 6억8700만달러로, '맘마미아'를 뛰어넘었다. 그 저변엔 단연 '퀸 음악의 힘'이 있다.
패배자를 위한 노래
퀸이 활동한 1970~80년대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섹스 피스톨스 등 하드록과 메탈록이 대세를 이룬 '록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이들 사이에서 오페라와 클래식을 가미하고, 디스코까지 시도한 퀸에는 '잡탕'이란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폭넓은 장르 도전이 '대중성'을 확보한 강력한 무기가 됐다. 김경진 팝 칼럼니스트는 "퀸은 실험성과 대중 팝 성격을 동시에 추구했다. 아바·비틀스와 함께 '국내 3대 불패 신화' 소리를 들으며 TV·광고 등에 여기저기 흘러나온 퀸 음악의 친숙함이 흥행 주역"이라고 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루저(패배자)를 위해 노래한다'는 퀸 음악의 주제 의식이 현재 한국 사회 가장 큰 화두인 '위로'의 문화 코드와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사회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란 대사처럼, 퀸은 무명 밴드로 시작해 2집 활동 후반부에 가서야 '킬러 퀸'을 히트시키며 비로소 빛을 본 '원조 루저'였다. 영화 후기엔 "'더 이상 패자를 위한 시간은 없어. 왜냐면 우린 모두 세계 챔피언이니깐'이란 가사를 따라 부르다 울었다"는 글이 유독 많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대중과 이룬 소통도 뛰어났다. 발 구르고 손뼉 치며 부르는 '위 윌 록 유' 등은 처음부터 관객 참여를 염두에 두고 썼다. "수만 관객을 한 손에 움켜쥔다"는 프레디의 화려한 무대 매너와 수 톤의 조명, 거대 장비를 동원하느라 적자를 면치 못했던 밴드의 열정 또한 이를 뒷받침했다. 퀸에 제2의 전성기를 돌려준 것도 15만 관객이 동시에 '에오!'를 외쳐 전설로 남은 영국 웸블리 공연장의 '라이브 에이드(1985)'였다.
프레디의 목소리부터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1년 유럽의 인지과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뚜렷이 뇌리에 각인된 노래'를 조사한 결과 '위 아 더 챔피언스'가 1위에 올랐다. 인류 DNA에 각인된 호전적 외침 속 흥분된 감정을 머큐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끌어낸다는 것. 퀸 노래가 태아의 뇌 회로를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평론가들은 그러나 "퀸은 결코 프레디의 목소리에 기대는 팀은 아니었다"고 했다. 프레디가 쓴 '보헤미안 랩소디' 외에도 '위 윌 록 유'(브라이언 메이), '라디오 가가'(로저 테일러),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존 디콘) 등 여러 히트곡이 다른 멤버 손에서도 탄생했다. 2003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퀸은 '밴드 멤버가 모두 이름을 올린 유일무이한 밴드'로 기록됐다. 에이즈로 죽은 프레디의 삶이 "퀸 음악을 더 아름답게 만든 비극적 서사"란 평도 있다. 김윤하 음악 평론가는 "프레디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곡을 쓰고 노래했다. 자신의 비극적 체험으로 명곡을 완결한 서사가 더 큰 감동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윤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