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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또 심신미약 감형 받나, 부실수사 아닌가… 거듭된 의혹이 여론 불지펴

강서 PC방 살인 사건에 100만명이 분노한 까닭은

또 심신미약 감형 받나, 부실수사 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29·가운데)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김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감형받으려는 의도 아니냐”며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연합뉴스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에는 왜 순식간에 젊은 세대 100만 명이 분노했을까. 세 가지 약한 고리가 있다. 하나는 PC방이라는 익숙한 공간, 둘째로 소위 심신미약, 마지막으로 경찰 불신이다.


지난 14일 오전 8시 10분 서울 강서구 한 PC방에서 손님 김성수(29)가 PC방 아르바이트생 신모(20)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김을 엄벌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동참한 사람 수가 10일 만에 100만 명. 역대 최고 기록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은 "PC방 손님이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짧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불이 붙은 건 17일부터.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강서 PC방 살인 사건 요약'이란 제목으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댓글이 수백 건씩 붙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퍼 날랐다. 언론뿐 아니라 경찰도 사건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5일 만인 19일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관할서인 강서경찰서를 방문해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22일에는 가해자 김의 신상도 공개했다. 국민 여론이 여기까지 끌고 온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살인 사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과거 사건들과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일상공간

사건이 일어난 PC방은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10~30대 청년들에게 익숙한 생활공간이다. 사건 요약 글이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될 때 "내가 간 적 있는 PC방이다" "나도 PC방에서 일할 때 저런 손님을 만나 곤욕 치렀다"는 식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범죄심리학자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익숙한 공간에서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더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며 "흔히 벌어지는 범죄라도 택시나 아파트 주차장 같은 곳에서 벌어지면 큰 이슈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서울 강남역의 한 술집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20~30대 여성들은 일상 곳곳에서 당한 성추행이나 살해 위협 사례 등을 공유하며 사건을 이슈화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사건 현장이었던 강남역에 사람들이 조화와 애도 메시지를 남겼던 것처럼 이번에도 문제의 PC방 앞에 자연스럽게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생겼다.


또 이번 사건은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나 야구 커뮤니티 등 주로 남자 회원 비중이 많은 곳에서 이슈화가 시작됐다. 피해자가 남자인 데다, 그들이 PC방이란 공간에 훨씬 더 익숙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심신미약

25일 현재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이번 사건 관련 청원 글이 700건 넘게 올라왔다. 그중 100만 명이 동참한 청원은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피의자 김이 경찰 조사에서 우울증을 앓았다고 진술했고, 김의 가족도 그의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 이 때문에 '김이 이른바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받는 걸 막아달라'는 취지의 청원이 가장 큰 공감을 받은 것이다. 형법에는 우울증뿐 아니라, 만취나 치매, 조현병 등의 이유로 정상적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를 심신미약이라고 보고 그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선 형을 감경해주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4~2016년 피고인이 심신미약을 주장한 1597건 중 이를 인정한 건 305건(약 20%)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은 강력범이 심신미약을 주장해 인정받은 사례 때문에 여론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이 조현병을 이유로 사형을 면했고,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조두순도 술에 취했단 이유로 감형됐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이번 사건 청원에 이어 셋째로 동참인이 많은 청원이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약 61만 명)이다.

경찰 불신

서울에서 재직 중인 한 경찰 고위 간부는 "서울청장이 강서경찰서에 달려간 건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신씨가 죽기 전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김에게 주의만 주고 떠났다. 결국 김이 흉기를 챙겨 다시 돌아와 신씨를 살해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살인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또 뒤늦게 공개된 사건 현장 폐쇄회로(CC)TV에는 김과 함께 PC방에 왔던 동생(26)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영상엔 김의 범행 당시 동생이 피해자를 뒤에서 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 나와 "동생이 공범인데 경찰이 제대로 수사안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동생은 '형을 말리려고 했다'고 진술했고 실제로 말리는 장면이 CCTV에도 찍혀 있다"며 "현장 목격자 증언 중에도 '김의 동생이 주위에 도와달라고 소리쳤다'는 내용 등이 있는 걸 고려하면 공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경찰의 해명에도 여론은 차갑다. 인터넷에는 '경찰이 부실 수사를 덮으려고 동생을 옹호한다'는 음모론까지 확산하고 있다. 빈번히 일어나는 강력 사건이라도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 문제가 겹치면 큰 이슈로 번지는 건 흔한 일이다. 대표적 사건이 2012년 수원서 발생한 '우원춘 사건'이다. 조선족 동포인 우가 길 가던 여성을 납치해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가 112 신고를 했지만 경찰의 엉성한 대처로 살인을 막지 못했던 걸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결국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이 사퇴하고 경찰은 112 신고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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