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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돼지 품종, 밑간, 튀기는 온도, 횟수… 돈가스 맛있는 집은 이유가 있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돈가스 편

서울 성수동 '윤경'


돈가스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유를 묻자면 이런 답이 자주 나온다. "튀기면 신발도 맛있어." 맞는 말이다. 칼로리가 맛이라는 농담이 있듯 오랜 기간 기아에 시달린 인간은 고열량 음식에 쉽게 굴복한다.


그렇다고 튀김이 간단한 조리법은 아니다. 튀김옷의 겉은 고온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화학 현상이 발생한다. 대략 섭씨 120도 언저리에서 나타나는 이 반응 덕에 인간이 좋아하는 고소한, 이른바 고기 구울 때 그 복잡다단한 맛이 생겨난다. 그리고 튀김옷 속에서는 열로 인해 증기가 생겨나고 그 증기로 재료가 익게 된다. 튀김 기술은 이 두 가지 현상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렸다. 돈가스는 돼지고기에 반죽을 입혀 튀긴 음식이다. 이 한 문장에 무수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 어떤 돼지고기를 쓸지, 부위를 어디로 할지, 튀김옷의 빵가루 입자 크기, 수분 함유량, 달걀과 우유의 사용 여부, 밑간의 종류도 맛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더불어 기름의 온도와 시간, 튀기는 횟수도 집마다 차이가 있다. 되는 집은 이 모든 방법에 의도와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은 집은 의도가 없고 이유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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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 ‘윤경’ 대표 메뉴인 윤경정식(앞)과 등심돈가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합정역 근처 반지하에 자리한 '최강금돈까스'는 의도와 이유가 명확한 집 중 하나다. 작은 창이 지상으로 살짝 나온 반지하에 있지만 옹색하거나 꾀죄죄한 느낌은 없다. 하얗게 칠한 벽과 깔끔한 나무 집기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작고 네모난 주방을 따라 바 좌석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주방을 향해 둘러앉아 있다. 15석 안팎 좌석이 전부다. 이 집은 지리산에서 자란 '버크셔K'라는 교잡종 돼지고기를 쓴다. 진달래꽃이 핀 것처럼 선홍빛으로 촉촉한 원육은 고기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상품(上品)임을 알 수 있다.


출렁이는 기름에 고기를 넣으면 봄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5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 돈가스라고 부를 수 있는 고기를 꺼내 기름을 뺀다. 다시 5분 정도 시간이 지난다. 이때 잔열로 고기는 속까지 익는다. 송판 탁자에 다시 하얀 접시가 올라가고 채 썬 양배추 한 움큼과 돈가스가 놓인다. 안심 돈가스는 들기름을 뿌리고 함초 소금을 찍어 먹으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기름이 적고 부드러운 안심 돈가스를 입에 넣으니 과하지 않은 육향이 잔잔히 맞이한다. 등 지방이 붙은 채로 성형한 등심은 맛이 더 확실하다. 등 지방 특유의 달착지근한 감칠맛과 검붉은 소스가 힘을 겨룬다. 여기에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먹으면 돈가스가 아닌 정겨운 백반을 먹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합정에서 한강을 따라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성수동이 나오고 그곳에 돈가스집 '윤경'이 있다. 천장과 바닥, 벽까지 윤기나는 나무로 인테리어를 한 이곳은 단정하지만 허전하지 않고 깔끔하지만 유난스럽지 않다. 메뉴판도 여백과 글자가 평화로이 공존하고 있다. 소고기가 아쉽지 않게 올라가는 스테이크 덮밥, 다시마로 숙성한 연어를 올린 연어 덮밥, 재료를 가득 넣어 어린애 팔뚝만 하게 말아주는 후토마키(太卷き·큰 김밥) 등 어지간한 일식 메뉴는 총망라돼 있다.


그럼에도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돈가스다. 그중 '윤경 정식'을 시키면 커다란 새우·가리비 관자 튀김, 안심·등심 돈가스, 연어회가 나온다. 어지간한 양이 아니면 깨끗이 비우기 어려울 정도다. 위압적으로 생긴 새우는 탱탱한 살이 이에 박히고 결대로 찢어지는 가리비 관자는 촉촉히 몸을 벌린다. 안심 돈가스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튀김옷을 지나면 마음이 놓이는 부드러운 속살이 기다리고 있다. 지방이 거의 없으며 고기 결이 곱고 부드러운 안심은 부위 특성을 최대한 음미하도록 속에 살짝 빨간 기운이 남을 정도로만 튀겨낸다. 여기에 쓴맛이 거의 없는 영국산 맬던(Maldon) 소금을 찍으면 앰프와 스피커의 만남처럼 맛이 증폭된다.


근육이 붙은 병사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고기를 씹는다. 탄탄하지만 퍽퍽하지 않은 육질이 턱을 통해 느껴진다. 겨자를 올려 소스에 푹 담가 먹으면 익숙한 맛이 크게 다가온다. 힘을 주어 접시를 비우고 나면 호텔 침구처럼 단정히 놓인 토마토, 파슬리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더라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챙기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모여 손님 앞에 올라올 한 접시를 만든다. 돈가스라고 쉽게 말하고 쉽게 먹는 그 음식도 그렇다.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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