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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동태탕 전문 음식점의 주인공은 내장 건더기… 기름 품은 곤이·애, 건져도 건져도 끝이 없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동태·생태탕편

구리 수택동 '옹기종기동태탕'

조선일보

경기 구리시 ‘옹기종기동태탕’의 동태탕. 마무리는 수제비로 해도 나쁘지 않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사람이 부산에 내려가면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 의사소통. 부모님은 꽤 고생하셨다. 경상도 특유의 빠르고 억센 억양, 게다가 '얼라(아기)', '정구지(부추)'와 같은 사투리까지 섞여 외국어와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장사를 마친 밤이 되어 겨우 네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으면 아버지는 늘 '못 알아먹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음식. 생선을 즐기지 않았던 아버지는 '부산 음식 먹을 게 없다'는 말과 함께 "서울에서는 생선이라고 해봤자 고등어에 동태, 생태찌개 정도만 먹었지"라며 낮은 밥상을 바라봤다.


덕분에 솜이불을 장롱에서 꺼낼 때쯤 되면 집에서 동태찌개 끓여 먹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머니는 초피가루, 고춧가루 팍팍 넣은 부산식이 아닌, 얇게 썬 무와 동태 몇 토막, 사정이 좋은 날은 생태 한 마리에 알, 곤이를 넣고 초저녁 노을처럼 은근한 붉은빛이 도는 국물을 끓였다. 그런 밤마다 아버지는 구하기도 힘들었던 진로 타령을 하며 빈병을 늘려 갔다. 어릴 적에는 그 맛을 몰랐다. 차라리 지독히 맵고 짠 부산식 매운탕이 입에 더 맞았다. 그러나 혈기가 빠지고 몸속에 엉기고 맺힌 것이 많아지면서 속을 풀고 내리는 시원한 국물이 당기기 시작했다.


북창동 '속초생태집'은 생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찌개 하나로만 다루기에는 아까운 집이다. 시청역에서 나와 휴대폰 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운 북창동 골목을 파고들면 나오는 이 집은 생태, 도루묵, 곰치 등 속초에서 잡히는 생선을 주로 쓴다. 메뉴판에 없는 생선들이 선반식 냉장고에 보인다면 손가락으로 딱 찍어 끓여 달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루묵, 곰치 같은 것을 보글보글 끓이고 있으면 대포항 동명항 생각이 사라진다.


그중 생태찌개는 역시 대표 메뉴의 자질을 갖췄다. 커다란 냄비를 상 가운데 올리고 가스불을 올린다. 미나리 숨이 죽기를 기다린다. 국물 속에 초록 미나리가 풀어져 내리면 먼저 젓가락으로 훌훌 건져 먹는다. 봄을 기다리는 아삭한 식감이 입 안에 울린다. 미나리가 끝나면 생태 차례다. 생태의 부드러운 육질은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이 필요한 수준이다. 내장의 고소한 맛이 나는 곤이와 살짝 쓰지만 달달한 뒷맛을 가진 알을 국물과 함께 먹는다. 미나리에서 나온 청량한 향이 속 깊은 국물에 우러나 뭉쳤던 속과 몸을 마사지하듯 풀어준다. 국자로 앞 접시에 국물을 연신 퍼 담는다. 답안지를 밀려 쓴 학생처럼 움츠렸던 마음이 서서히 데워진다.


경기 구리시 수택동 '옹기종기동태탕'은 오로지 동태로만 승부를 보는 집이다. 구리역 앞, 차들이 양옆으로 가득 주차를 해놓은 뒷길을 간신히 뚫고 지나가면 한편에는 단독주택들이 가득 찬 주택가가 펼쳐지고 한편에는 공용주차장이 연달아 있다. 그 도로에서 밝게 빛나며 사람이 가득 찬 곳이 있다면, 바로 이 집이다. 메뉴는 동태애탕, 동태머리탕으로 간단하다. 그냥 "동태탕 주세요"라고 하면 동태애탕이 사람 수대로 나온다. 따로 곤이, 알, 애를 사리 추가할 수도 있다. 고민하기 싫고 동태 내장을 특히 좋아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장모둠으로 간다.


얼마 되지 않아 양푼이 상 위에 오른다. 내장모둠을 시켰다면 그 양푼만큼 내장을 또 국물에 넣어준다. 가스불을 올리고 시간을 보낸다. 깨끗이 정돈된 실내를 부지런한 종업원들이 종종걸음으로 옮겨 다닌다. 홀로 찌개 하나 끓여놓고 반주를 하는 노인, 아이를 옆에 눕혀두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부부가 있다. 밖으로는 옷깃을 여미고 뛰듯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보인다. 국물이 부글부글 끓으면 살짝 낮춰 조금 더 맛을 우린다. 붉은기가 진해질 때쯤 건더기를 푼다. 이 집의 주인공은 동태가 아니라 내장 건더기다. 기름을 잔뜩 품은 곤이와 애는 아껴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푸짐하다. 건져도 건져도 끝이 없는 건더기를 밥 위에 올리고 김치 한 조각 곁들여 입에 넣는다. 진득하게 졸아든 국물도 들어간다. 탄환처럼 묵직한 액체가 속을 타고 내려간다. 이 집에서는 보통 냄비 바닥이 보이고 나서야 식사가 끝난다. 그러면 몸에는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생선의 담백하고 선한 맛이 가득 찬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젊은 날 서울에서 먹던 그 찌개의 맛은 어땠을지. 그 맛을 그리워하며 젊은 날을 보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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