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에 갓 쓰고, 운동화 신고... '방탄소년단'도 가세한 '힙한' 한복 열풍
가볍게 입고 SNS에 인증하고, 젊은 층에 번지는 한복
샤넬부터 스트리트 웨어까지, 시대정신 입은 한복의 변신
방탄소년단이 입은 개량 한복 의상. 도포를 응용한 재킷이 요즘 유행하는 로브(가운)처럼 현대적이다./유튜브 캡처 |
"얼쑤, 지화자, 좋다~"
노란 팔작지붕 아래, 한복을 입은 청년들이 ‘덩기덕 쿵더러러’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신곡 ‘아이돌(IDOL)’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아프리카풍 비트에 전자 음악과 국악을 버무려 흥겨움을 더한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지 5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억 뷰를 돌파했다.
이번 뮤직비디오에선 특히 한복을 응용한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도포를 변형한 재킷에 갓을 연상시키는 모자를 목에 걸치고 나이키 조던과 오프화이트 운동화를 신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한복에 한정판 운동화라니, 정말 힙하다(멋지다)" "빌보드 무대에서 한복을 입고 공연한다면 좋겠다"라며 호평을 보냈다. 한 유튜버는 "현대적으로 업데이트된 한복이 마음에 들었다. 세계적인 그룹이 됐음에도,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평했다.
◇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지는 한복 입기
한복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이유는 한복의 대중화에서 찾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복은 결혼식이나 명절처럼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었지만, 이제 일상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복 입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한복을 입고 모여 놀거나 여행하는 동호회가 생기는가 하면, 개량 한복을 생활복으로 입는다.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에서 #한복 을 검색하면 122만여 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한복스타그램 #한복대여 #한복스냅 등 관련 게시물도 수십만 건에 달한다.
차이킴, 리슬, 하플리 등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생활 한복 브랜드의 등장도 열풍을 뒷받침했다. 최근에는 철릭(綴翼·고려 시대 말부터 문무관의 복장으로 사용된 포)을 응용한 원피스나 한복 위에 배색 치마를 덧입는 스타일링이 인기다.
차이킴의 철릭 원피스(왼쪽)과 한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리슬의 커플 룩./차이킴, 리슬 인스타그램 |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씨는 이런 분위기가 반갑다. 1세대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2006년부터 한복과 현대복을 조합한 화보를 통해 한복의 패션화를 시도해 왔다. 2014년에는 한복진흥센터와 신한복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한복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관심을 두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한복이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한복을 맞추는 고객들에게 종종 현대복과 함께 입을 것을 권한다. "청바지와 터틀넥 니트에 두루마기나 배자(褙子·저고리 위에 덧입는 옷)를 입으면 정말 우아하고 멋스럽다. 한복은 소재가 고급스럽고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에 일상복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 경계 허물어진 시대, 한복의 현대화는 시대정신
한복은 평면재단을, 서양복식은 입체재단을 기반으로 한다. 한복이 여유롭고 풍성한 멋을 지녔다면, 서양 옷은 몸의 곡선을 드러낸다. 상반된 특성을 지닌 옷이 한데 어우러질 수 이유는 이것이 곧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간호섭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학과 교수는 "요즘은 고정관념이나 경계 없이 개인의 해석이 중요한 시대"라고 짚었다.
그 역시 누빈 두루마기에 가죽 바지와 페도라를 매치해 입곤 한다. 작년에는 미국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와 협업해 한복의 현대화 작업을 진행했다. 간 교수는 "한복은 시대에 맞춰 변화를 거듭해 왔다. 조선 시대만 해도 초기, 중기, 말기의 한복을 보면 소매선과 배래의 길이가 다르다. 한복에 현시대의 감각을 불어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샤넬(2015 크루즈 컬렉션, 왼쪽)와 캐롤리나 헤레라(2011 S/S 컬렉션) 등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한복에서 영감을 얻어 패션쇼를 선보였다./각 브랜드 |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 한복은 세계 무대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캐롤리나 헤레라, 드리스 반 노튼, 장 폴 고티에 등 서양 디자이너들이 한복을 응용한 옷을 선보였고, 2015년에는 프랑스 명품 샤넬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한복을 주제로 크루즈 컬렉션을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듀오 썬데스쿨(Sundae School)이 한복을 재해석한 스트리트 웨어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한복 소재인 오간자로 만든 셔츠와 누빔 바지 등이 캐주얼 복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 임, 신디 임 씨는 "스트리트 웨어하면 흔히 티셔츠나 후디를 생각하지만, 한복을 응용해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인 옷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시즌 바니스 백화점에 입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 썬데스쿨은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스트리트 웨어로 주목받았다./썬데스쿨 |
한편, 한복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왜곡이 되는 경우도 많다. 경복궁이나 인사동 근처에 가면 색색의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만히 보면 서양의 드레스에 들어가는 페티코트(Petticoa·치마 안에 받쳐 입는 빳빳한 속치마)를 입어 치마를 한껏 부풀리는 등 대부분 전통 한복과 거리가 먼 형태다.
이혜순 디자이너는 "왕실의 한복과 기생의 한복, 중국의 싸구려 원단이 섞인 정체불명의 한복이 전통 한복으로 둔갑해 유통되고 있다"며 "시대에 따라 한복은 변형되고, 진화해야 한다. 하지만 정체성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변형이 아니라 훼손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간호섭 교수는 "현대에 맞게 새로운 감각을 가미하되, 전통 한복은 고유한 멋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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