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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언덕’의 석양, 미술관·성당… 퀘벡의 가을에는 오직 기도하게 하소서

[아무튼, 주말] 낭만 찾아 떠나는 캐나다 퀘벡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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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Quebec) 여행의 길동무가 될 만한 책을 찾는다면, 단연 캐나다 소설가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警監) 시리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타일의 추리소설로, 주인공 아르망 가마슈는 단풍잎 붉게 물든 퀘벡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각종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아마추어 화가인 노부인이 숲속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스틸 라이프’의 책장을 덮었을 때, 13시간의 긴 비행이 끝나고 마침내 퀘벡 공항에 착륙했다. 이제부터 출구는 영어 ‘Exit’가 아니라 불어 ‘Sortie’다. 퀘벡은 캐나다의 한 주(州)이지만, 1608년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정착해 만들어진 지역. 1763년 영국에 최종적으로 패배하기 전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주정부 공용어는 불어. 단 ‘퀘벡’이라는 이름은 북미 원주민 언어인 알곤킨어로 ‘좁은 물길’을 의미한다.


◇'도깨비 언덕’에서 모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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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유효하다. 퀘벡 여행을 이야기할 때 6년 전 드라마 ‘도깨비’가 아직도 언급되는 건, ‘클리셰’라 할 수 있을 만큼 뻔한 그 이야기의 영원성 때문이다. 퀘벡주 여행의 핵심은 주도(州都) 퀘벡 시티. 그중에서도 동화처럼 아기자기한 유럽풍 건물이 늘어선 구시가지 ‘올드 퀘벡 시티’다.


루아얄 광장에서 마주친 현지 가이드는 기자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더니 인솔하던 루마니아인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 ‘도깨비’ 영향으로 퀘벡엔 한국인 관광객이 아주 많이 찾아옵니다. 퀘벡은 도깨비 덕에 막대한 관광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죠.”


캐나다 관광청에 따르면 ‘도깨비’가 종영한 2017년 퀘벡에 도착한 한국인 수는 2016년 대비 60% 증가했다. 한국인 관광객 지출도 퀘벡 시티에서는 2016년 80만달러에서 2017년 220만달러로, 퀘벡주에서는 620만달러에서 1억55만달러로 대폭 늘었다. 관광청 관계자는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퀘벡 직항 전세기를 띄우게 된 것도 ‘도깨비’ 흥행 덕”이라고 귀띔했다.


이 도시의 랜드 마크인 샤토 프롱트낙은 ‘도깨비’에서 주인공 김신(공유)이 소유했던 바로 그 호텔. 유럽의 성(城)을 방불케 하지만 실제로는 캐나다 호텔 기업 페어몬트가 1893년 성 형태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다. ‘도깨비’에서 은탁(김고은)과 김신이 편지를 주고받던 금빛 우체통이 바로 이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 있다. 도시의 중심인 프티 샹 플랭 거리의 대표적인 명소는 ‘도깨비’에서 퀘벡과 서울을 연결하던 빨간 문. 극장 건물의 옆문으로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여닫을 수 없지만,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이 밖에 은탁이 김신에게 프러포즈한 ‘목 부러지는 계단’, 1년 내내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상점 ‘부티크 드 노엘’ 등도 포토 스폿으로 유명하지만, 퀘벡 시티 관광의 백미를 꼽자면 샤토 프롱트낙과 세인트 로렌스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호텔 뒤편 아브라함 평원(일명 ‘도깨비 언덕’)이다. 드라마에서 김신이 세상 떠난 친지들의 묘지를 조성해 놓고 상념에 잠겼으며, 마지막 회에서 환생한 은탁과 재회한 곳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일광(日光)에 따라 변화하는 루앙 대성당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화가 모네처럼, 이 언덕에선 종일 강바람을 맞으며 샤토 프롱트낙에 드리우는 햇살의 변화무쌍함을 관찰할 수 있다.


◇미술관서 배우는 ‘유혹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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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몬트리올 미술관에선 ‘유혹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이 미술관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인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의 1877년작 ‘10월(Ocotober)’은 가로 108.7㎝, 세로 216.5㎝의 커다란 유화. 검정 모자, 검정 드레스 차림으로 고혹적인 미소를 선보이며 낙엽 속을 걷는 그림 속 여인은 티소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뉴턴 부인. 티소와 만난 스물두 살에 이미 두 명의 사생아를 둔 이혼녀였다. 붉고 작은 입술, 촉촉한 눈망울, 페티코트가 살짝 드러나도록 적당히 들어올린 치맛자락, 은근하게 젖힌 고개.... 그야말로 ‘플러팅(유혹)’의 정석과 같은 그림. 그림 앞에 오래 서 그녀와 눈을 마주치다 보면, 그 눈빛의 열기에 달아 뺨이 후끈해진다.


퀘벡시티에서 자동차로 3시간가량 떨어진 몬트리올은 퀘벡주에서 가장 큰 도시. 도시의 중심에 있는 자크 카르티에 광장, 병자를 치유한다는 성 요셉 성당, 야경으로 유명한 몽 로열 공원 등이 보통 패키지 투어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필수 코스다. 패키지 투어가 과외학습이라면 자유여행은 자기주도 학습. 영원히 잊지 못할 ‘나만의 특별한 여행’을 꿈꾼다면 한나절쯤 시간을 빼 몬트리올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뉴욕이나 파리도 아닌 몬트리올 미술관,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1860년 설립된 이 미술관 소장품은 4만7000여 점,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유럽을 탈출한 컬렉터들이 기증한 19세기 유럽 미술품으로 유명하다. 르누아르나 마티스 같은 대중적으로 친숙한 작가들 작품은 물론이고 중세 기독교 미술, 르네상스·바로크 회화, 장미셸 오토니엘 등 현대 작가 작품들까지 구비해 서양미술사의 핵심을 짚었다. 단테를 모델로 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16세기 베네치아 화가 베로네제의 ‘가시관을 쓴 예수’ 앞에서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미술관을 100%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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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캐나다에선 주말이면 북적이는 도심을 벗어나 ‘샬레 라이프’를 즐기는 게 유행하고 있어. 만약 교외로 나가고 싶다면, 내가 샬레를 운영하는 친구를 소개해 줄게!” 몬트리올 자크 카르티에 광장의 한 건물 처마 아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긋다 만난 부동산업자 아를은 이렇게 말했다. ‘샬레(chalet)’란 원래 스위스 시골집을 뜻하는 말로, 전원풍의 소박한 주택을 이른다.


몬트리올에서 북서쪽으로 130㎞ 떨어진 한적한 휴양 도시 몽 트랑블랑은 ‘샬레 라이프’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다. 겨울엔 스키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을에는 로렌시아 산맥의 단풍을 구경하러 온 행락객들로 붐빈다. 깊어가는 가을, 저 높은 곳에서 퀘벡의 단풍을 만끽하고 싶다면 해발고도 875m의 트랑블랑산 정상까지 15분가량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거나, 인근 트레킹 코스인 ‘로렌시아 고원의 오솔길’에 설치된 40m 높이 타워 전망대를 걸어 올라갈 수 있다.


◇경건해지고 싶다면, 성당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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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도 종교적 분위기에 젖어드는 일은 가능하다. 가톨릭 문화권인 퀘벡의 고풍스러운 성당들은 잠시 속세를 떠나 지친 심신을 의탁하기에 제격인 장소. 여행의 묘미란 일상을 잠시 정지하고 문지방 너머, 성소(聖所)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일에 있는 게 아닐까. 성당 내부에 레이저를 쏘아 천지창조를 테마로 빛의 향연을 펼치는 ‘아우라 쇼’를 선보이는 몬트리올의 노트르담 대성당, 영국과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한 걸 기념해 17세기에 건축된 퀘벡시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 등이 언제나 붐비는 대표적인 ‘관광객용 성당’이다.


그러나 정말로 성스러운 장소는 소란스러움과는 먼 곳에 있다. 퀘벡시티와 몬트리올 중간의 이스턴타운십(Easterntownship)은 퀘벡 남동쪽 9개의 자그마한 관광 지역을 묶어 부르는 명칭. 대학 도시 셜브룩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 성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다. 1912년 설립된 이 수도원은 신(神)의 뜻에 따라 청빈하고 금욕적인 삶을 지켜가는 수도사들의 공간. “캐나다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피정(避靜·가톨릭의 수련생활) 가고 싶어하는 곳”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검박하고 단정한 수도원 내부를 가득 채운 것은 침묵. 젊은 수사가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만 정적을 뚫고 울려퍼지는 가운데, 바닥에 색색 모자이크가 장식된 아치형 회랑에 신성한 빛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하 기념품 가게에선 수도사들이 만든 수공예품, 자급자족한 물품 등을 판매하는데, 특히 이 수도원에서 만든 치즈가 유명하다.


1894년 건립된 몬트리올의 ‘세상의 여왕이신 성모님 성당’도 ‘도심의 숨은 보석’으로 불리는 공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그대로 본떠 미니어처 버전으로 만들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스타일 실내 장식과 대비되는 심플한 성모상 앞에 여독으로 지친 몸을 던져놓은 채 하루의 마지막 기도를 올린다면, 결국 이 여행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순례’였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퀘벡=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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