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해도 소용없다, 저녁 한강공원은 '밀실텐트촌'
[주말 단속현장 가보니]
"텐트 문 2개는 열어두세요" 단속반 지시에도 아랑곳 안해
저녁 7시 철수 규정도 안지켜… 어둠 속에 불켠 텐트 수십 곳
지난 2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은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특히 여름캠핑장과 계절광장 두 곳(4만5000㎡)에는 텐트 1000여 개가 들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텐트는 4개 면 중 2개 면 이상을 반드시 개방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 텐트가 약 30%에 달했다. 단속에 나선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3~4명이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설득하지만 수백 개 텐트에 개방을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시 단속원들이 오후 7시가 넘어서도 철수하지 않은 텐트를 단속하고 있다. 한강공원 텐트 설치는 오후 7시까지만 허용된다. /연합뉴스 |
서울시가 한강공원 텐트 단속을 강화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규정을 지키지 않는 시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지난 22일부터 "일부 시민이 밀실 텐트에서 민망한 애정 행각을 벌인다는 민원이 많다"며 단속을 강화했다. 텐트 크기는 가로·세로 2m 이내, 반드시 2면 이상을 개방해야 한다. 설치 허용 시간도 기존 오후 9시에서 오후 7시로 두 시간 당겼다. 허용된 공간 외에 텐트를 설치했다가 적발되면 과태료가 1회 100만원이다. 최대 30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 일각에선 수백만원에 달하는 과태료가 역효과를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단속원 입장에서도 과태료를 부과하기 부담스러운 데다 시민들도 '설마 수백만원을 부과하랴' 싶어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다. 한 단속원은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고, 대부분 계도 차원에서 끝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태료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실제로 시의 단속을 아랑곳하지 않는 극성 텐트족이 공적 공간인 한강공원을 사적 공간처럼 점령하고 있다. 인터넷엔 "오후 7시 30분 이후 단속이 사실상 없어 텐트를 다시 펴도 된다"며 일명 '꿀팁'을 적어놓은 블로그도 등장했다. 텐트 설치 허용 시간이 30분 지난 이날 오후 7시 30분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는 150여 개의 텐트가 여전히 쳐져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4개 면을 모두 닫은 밀실 텐트가 오히려 늘어났다. 이곳에서 약 900m 떨어져 있는 세빛섬 인근 텐트 허용 구간에는 20여 개의 텐트가 어둠 속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날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 오승일(39)씨는 "한강의 경관을 즐기고 싶은 시민의 권리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에밀루 니콜라이(29)씨는 "텐트가 너무 많아 한강에 난민촌이 생긴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도심 공원에 텐트 설치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파리시(市)는 도심 공원과 센강변에서 텐트를 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공공 자원인 잔디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파리 도심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려면 16구(區)에 있는 지정된 캠핑 전용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영국 런던 로열 파크나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등 해외 대표 공원도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면 텐트 설치를 불허하고 있다.
한강공원 내 텐트 설치도 원래 불법이었다. 그러나 2013년 4월 "한강에 뜨거운 태양을 피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시에서 '그늘막 텐트' 설치를 허가했다. 시가 시민을 위해 규정까지 바꿨으나 이에 상응하는 시민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공적 공간을 사적 공간으로 인식한 데서 벌어지는 갈등이라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엄연히 공적 공간인 한강공원에 텐트를 친다는 건 공간을 사유화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시에서 단속에 나서는 등 행정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에티켓을 잘 지키는 90%의 시민이 안 지키는 10% 시민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단속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김선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