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또 튕기면, 그땐 납치할 거야"… 나쁜 여자 서예지 돌풍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삐뚤어지고 제멋대로인데 매력적이다. 마음에 들면 훔쳐서라도 손에 넣는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나쁜 사람을 응징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머리채를 휘어잡는 데도 머뭇거림이 없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사이코' 동화작가. 도무지 사랑하기 어려운 면면에도 그는 안쓰럽고 사랑스럽다.
tvN 주말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고문영(서예지) 캐릭터가 화제다. 영상 클립마다 "언니, 그 남자랑 안 사귈 거면 나랑 만나요" "지금껏 이런 여자 캐릭터는 없었다" 등 젊은 여성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는다.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에도 열광한다. 20~49세 타깃 시청률은 1회부터 가장 최근 방송된 6회까지 케이블·종편을 통틀어 전 채널 동 시간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고문영(서예지)은 과하게 화려한 옷차림과 공격적으로 쏟아내는 말 뒤에 외로움을 감추고 있다. “동화는 현실 세계의 잔혹성을 그린 잔인한 판타지. 그러니 많이 읽고 꿈 깨라”고 말하는 동화 작가다. /tvN |
'능력 있는 남성과 캔디형 여성' 구도를 거꾸로 뒤집은 게 비결. 자폐를 가진 형을 돌보느라 태어나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정신병원 보호사 문강태(김수현)는 외로워도 슬퍼도 무너질 수 없는 '남자 캔디'다. 경제력·권력·명예를 모두 가진 동화작가 고문영이 그를 구원한다. '예쁘다'는 말의 방향도 바뀌었다. 고문영은 문강태에게 "예뻐서 탐난다"고 말한다. "예뻐서. 구두·옷·가방·자동차. 내 눈에 예쁘면 탐나는 거고 탐나면 가져야지."
과거 소유욕 강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반대로 뒤집어 통쾌함을 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늘은 그냥 갈게. 대신 담에 또 튕기면 그땐 납치할 거야!" "가지마, 나랑 같이 살자. 넌 내 거라고" 같은 대사가 '어록'에 올랐다. 무례하고 공격적인 말투,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카리스마'로 포장됐던 옛날 남자들 캐릭터와 닮았다. "밥 먹을래, 나랑 잘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라고 고함지르던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소지섭), "지금부터 나 좋아해, 가능하면 진심으로" "이제부터 너는 내 거야. 나만 괴롭힐 거야"라던 SBS '상속자들'의 남자주인공들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욕망에도 솔직하다. 모텔 앞에 멈춘 문강태에게 "제법인데?"라며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먹고 떨어질게. 너, 나 주라" "난 확실히 욕구불만 맞아. 나랑 한번 잘래?"라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역할을 그려내 삶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젊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환호할 만한 요소를 갖췄다"고 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포장도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는 단어들이 당황스럽다는 시선도 있다. 김수현의 벗은 상체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 매달리는 장면은 성희롱 논란을 불렀다. 바바리맨을 보고 코웃음 치며 "이래서 '아담' '아담' 하는 거였어? 아담해서?"란 대사엔 '수치스럽다'는 남성들 반응도 나왔다. 온라인에선 "남자가 저런 말을 했다면 방송국 문을 닫아야 할 것" "여자 벗은 몸은 안 되고, 남자 벗은 몸은 OK냐"며 분개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공 평론가는 "평범한 삶이 허락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대도 있지만, 사회 공동체 안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과도한 서사를 부여할까 우려되기도 한다"면서 "고문영의 행동은 일면 통쾌하기도 하지만 과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껏 미디어는 '강한 여자'를 '마녀'로 해석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보여오기도 했다. 남은 회차에서 바르게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손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