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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몸이 기괴? 평양 南北축구만큼 괴상하겠는가"

[이중섭미술상 수상전 여는 정복수]

몸은 생각이 담기는 공간이자 집… 그러나 요즘 '집'들은 오염돼 있다

내 그림보다 세상이 훨씬 기이해


1984년 그는 '사회학'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하드보드지(紙)에 목탄으로 인간의 몸뚱이 5개를 그렸다. 벌거벗은 몸은 표범처럼 얼룩졌고 손가락은 발톱으로 묘사돼 있다. 그들은 서로 고함치고 침을 뱉는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짐승의 시대 아니었나."


2019년 그는 '사회학'이라는 그림을 다시 그렸다. 화사한 파스텔톤 채색에 인간은 단 둘뿐인데, 비열하게 웃으며 뭔가를 논의하는 듯 보인다. 손가락은 잘려 나갔는데 중지(中指)만 남아 욕설처럼 보인다. "지금도 짐승의 시대다. 고상하게 연출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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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을 위해 서울 남현동 작업실에 보관 중인 신작 '사회학' 앞에서 정복수 화가가 가면을 머리에 썼다. "피부도 우리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면을 벗고자 한다. /김지호 기자

오는 7일 개막하는 '제3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을 앞둔 서양화가 정복수(62)씨에게 인간의 '몸'은 '사회'와 같다. 몸이라는 단 하나의 주제로 40년 넘게 화폭을 채워왔다. 이번에 출품되는 회화 40여 점을 관통하는 주제도 같다. '마음의 집'. 여기서 집은 몸이다. "몸은 생각이 담기는 공간이다. 몸은 생각의 좋은 집이 돼야 한다. 그러나 집들이 온통 비밀스럽고 오염돼 있다." 내장까지 전부 까발리는 그의 몸 그림에 괴상하다는 평이 곧잘 따라붙는다. "내 그림보다 이 세상이 훨씬 기이하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 대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지난 3월 수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작업 중이던 그림 '인생공부'가 최근 마무리됐다. 커다란 캔버스에 나체의 인간이 홀로 서 있다. 경락도처럼 투명하게 드러난 몸 곳곳에 눈[眼]이 백혈구처럼 떠다닌다. 손바닥에는 상흔처럼 동그란 원, 그 안에 작은 글씨로 '인생공부'라 적혀 있다. "예수의 상처 혹은 욕망의 문신일 수 있다. 제도와 본연의 생리가 부딪치며 인간이 태어난다. 매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생공부다."


2000년대부터 시작한 종이 가면을 이용한 연작도 준비했다. 캔버스에 얼굴을 그린 뒤, 그 위에 얼굴을 그린 가면을 덧붙여 겉과 속 두 개의 얼굴을 연출한 것이다. 욕망의 창구로서 눈을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하는 작가답게, 가면마다 눈이 뚫려 있거나 혹은 막혀 있다. "눈이 뚫린 건 '마음의 집', 눈이 안 뚫린 건 '생각의 집'이라 제목 붙였다. 생각이 뚫려야 비로소 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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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마음의 집'(2019). 눈 뚫린 가면을 캔버스에 붙여 입체감을 살렸다. /정상혁 기자

"매일 그린다"는 마음 하나로 가열하다. 올해만 전시 6개를 했다. "이중섭미술상 수상자가 되고 나니 어느 친구가 그러더라. '하나만 해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살아남는구나.' 그간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했다. 이번 수상기념전 이후로 전시는 당분간 안 할 생각이다. 그리는 데에만 열중하겠다." 매일 한 갑 반 피우던 담배까지 끊고 매진한 이번 전시는 그래서 의미가 깊다.


43년 전 혼자서 화구(畫具)만 챙겨 부산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그때처럼 리어카 하나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게 꿈이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길이 있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길도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한 대 사고 싶다. 붓과 종이와 물감을 싣고, 이리저리 다니며 풍경을 느끼고 싶다. 아내 허락을 받아야 해서 아직 결정은 못 내렸다."


시상식은 11월 7일 오후 5시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수상기념전은 17일까지 열린다. "인간에 집중해 인간을 제대로 그리려 한 화가가 여기 있다는 것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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