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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조선일보

“날마다 휴가, 먹고 마시자” 여기는 열정의 라스베이거스니까

[아무튼, 주말]

카지노 도시는 잊어라

미식의 천국 美 라스베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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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금발의 가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노련한 몸짓,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재즈 몇 곡을 연달아 불렀다.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고는 멀리서 지켜보던 한 남자를 무대로 끌어올렸다. 그는 익숙한 듯 오페라 아리아 중 이탈리아 가곡을 탄탄하게 부른 뒤 도메니코 모두뇨의 칸초네 ‘볼라레’까지 온 힘을 다해 뱉어냈다. 관객은 “볼라레(날아요)~ 오오, 칸타레(노래해요)~ 오오오오”를 따라 부르며 분위기에 한껏 취했다. 테이블을 끝도 없이 채우는 음식과 와인의 파도에도 취해갔다.


시계는 오후 4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식사라면 너무 늦고, 저녁식사라면 너무 빠른 시간. 여기는 로마가 아닌 라스베이거스다. 미국 남서부 네바다주 사막 한복판에 있는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도시, 잭팟의 욕망을 파는 그 라스베이거스 말이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뜨거운 곳, 먹고 마시고 또 먹고 마셔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그래, 괜찮아, 여기는 베이거스잖아.


그 남자는 가수가 아니다. 이 식당 ‘몽주(Monzu·이탈리아어로 셰프라는 뜻)’의 주인장이자 셰프 지오바니 마우로다. 서른 즈음까지 성악을 하다가 요리에 빠져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했고 이탈리아 식당을 열었다. 마우로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셰프는 라스베이거스에 수도 없이 많다. 라스베이거스가 밤의 도시에서 미식의 도시로 얼굴을 확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이거스에선 미국 정통 음식은 물론 아시아, 중동, 남미 음식까지 전세계 별미를 다 맛볼 수 있다. 마우로에게 ‘왜 베이거스였냐’고 물었다. “여기는 뭘 해도 열정이 넘치는 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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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와인 한잔 ‘캬하’


열한 시간쯤 날아서 베이거스 상공에 도착할 즈음 밑을 내려다봤다. 한없이 드넓고 까만 우주에 혼자서만 빛을 내뿜고 있는 행성의 느낌. 당연한 소리다. 살아 숨쉬는 거라고는 선인장 정도일 것 같은 황량한 사막에 인공적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도시 아닌가.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는 확실히 남달랐다. 코로나 이후 가장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도시 중 한 곳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여기선 매일이 휴가다.


라스베이거스의 낮을 만끽해보자. 화려한 밤만을 기대했다면 그건 잘못된 선입견 탓. 한여름, 5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공기와 마주하지만 희한하게 우리나라의 여름만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는 아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건조해서 땀이 뻘뻘 나지 않기에. 이열치열, 사막으로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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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거스 스트립(중심가)에서 차를 타고 30분만 달려도 빨간색 거대한 바위산과 만나는데, 바로 레드록 캐니언이다. 그 규모는 베이거스 서쪽에 위치한 모하비 사막 내 19만 에이커.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옆으로는 해발 1130m의 스프링 마운틴 랜치 주립 공원이 자리해 있다. 사막을 뚫고 달려왔는데 시원한 호수라니. 게다가 산 중턱에서 만나는 서늘한 바람은 또 얼마나 반갑던지.


이곳에서 또다시 30분가량 가면 눈을 비빌 정도의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다. 50도에 육박하는 사막에서 만나는 설산(雪山), 바로 찰스턴 마운틴이다. 하얀색 털모자를 쓴 산을 바라보면서 경이로운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해졌다.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미리 준비한 시원한 캘리포니아산 화이트 와인 한 모금을 삼켰다. 꿀맛이로구나. 기회가 된다면 골프 투어도 적극 추천한다. 베이거스에서 1시간 이내에 골프장은 수십 곳. 한화로 그린피만 100만원이 넘는 곳부터 10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골프 코스까지. 국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초록색 페어웨이를 거닐며 굿샷 한번 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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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도시는 잊어라


이제 미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즐길 차례다. 스트립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근 뜨고 있는 동네, 아트디스트릭트에 들렀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못쓰는 창고에 그림을 입히고 공연장, 갤러리, 비스트로로 개조했다. 건물을 뒤덮은 페인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나지만, ‘나만의 맛집’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이곳이 2015년에 생겼고 아직 한국 관광객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다. 해피아워를 잘 활용하면 와인 한 병을 1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사서 핑거푸드와 함께 마실 수 있다. 여기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스트립으로 들어가는 길엔 아시안 타운도 눈에 띈다. 중식, 일식, 베트남식은 물론 한국 간판도 자주 보이는데, 이곳에서 양식의 느끼함을 밀어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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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거스에서 호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섭섭하다. 호텔마다 객실이 5000개 안팎. 그 규모에 우선 놀란다. 호텔 내부를 걸어다니다 길을 잃기 십상.


최근엔 이 호텔들이 카지노가 아닌 음식에 꽂혔다. 윈, 앙코르, 베니시안·팔라조, 코스모폴리탄, 벨라지오, 아리아 등 비교적 신상 호텔 광고판엔 저마다 호텔에 유치한 유명 셰프, 레스토랑 홍보가 주를 이뤘다. 수준급 음식의 매력에 빠진 관광객들은 매일 점심, 저녁식사 때 축제의 시간을 즐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레스토랑을 꼽는 ‘세계 50대 레스토랑(World’s 50 Best Restaurants, W50B)’ 행사가 최근 베이거스에서 열렸다.


W50B는 ‘미쉐린 가이드’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지는데, 2002년 개최 이래 처음으로 한식당 ‘밍글스’가 44위에 올라 순위권에 들었다. 행사 주최사 관계자는 ‘왜 베이거스냐’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어느 도시를 찾는지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어요. 24시간 먹고 마시고 즐길 거리가 가득한 곳 말이에요.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도시가 바로 라스베이거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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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무작정 걸어보자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베이거스는 다른 얼굴로 변한다. 이 밤이 끝날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볼거리가 넘쳐난다. 그러니까 별 계획없이 스트립을 따라 걷자. 마치 거대한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를 그대로 본떠 만든 베니션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모는 사공의 세레나데를 잠시 감상했다. 운이 좋으면 진짜 프러포즈를 하는 커플을 만나 함께 사랑의 함성을 지를 수도.


건너편 트래저아일랜드 호텔 앞에서 바이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1~2분 걸어가다 보면 미라지 호텔 앞 화산 폭발 쇼도 볼 수 있다. 약간 유치할 수 있지만 공짜라고 생각하면 한번쯤 볼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호텔이 곧 문을 닫으면서 이 쇼도 역사 속으로 함께 사라질 예정. 아쉽지만 이 쇼는 못 볼 가능성이 크다.


밤에도 지지치 않는 아메리칸 스피릿(미국인 정신)을 즐기며 하염없이 걷다 보면 벨라지오 호텔 앞 수많은 인파와 만날 것이다. 바로 분수쇼다. 수천 개가 넘는 물줄기가 음악과 빛에 맞추어 춤을 췄다. 커다란 인공 호수에서 140m 높이까지 치솟는 물줄기를 보면 넋을 잃고 한동안 음악에 몸을 맡기게 된다. 스트립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지만 올드타운인 프리몬트 스트리트의 전구쇼도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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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거스는 유명 뮤지션들의 쇼장이기도 하다. 콘서트, 마술쇼, 서커스 등 매일 밤 수많은 공연이 줄을 잇는다. 대표적 쇼로는 태양의서커스 ‘오’쇼, ‘카’쇼가 유명하지만, 색다른 쇼를 원한다면 21세기 서커스 형식의 성인 전용 공연인 ‘앱상트 쇼(ABSINTHE)’도 괜찮다. 마술은 물론, 저글링, 스케이트 묘기, 공중 곡예 등으로 눈이 즐겁다. 그렇게 오늘도 라스베이거스의 하루는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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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도시를 밝히다]


세계 최대 구형 공연장 ‘스피어’


미쳤다.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진에도 담기지 않는다. 엄청 크다, 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일단 신기한 모양과 규모에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귀엽기까지.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찍어대도 질리지가 않는다. 계속 얼굴을 바꾸니까. 이게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명물 ‘스피어(Sphere)’다. 최근에는 이 스피어를 보러 베이거스에 오는 여행자가 많다.


스피어는 작년 9월 얼굴을 드러냈다. 높이 112m, 폭 157m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반구(半球) 형태 공연장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로 따지면 35~40층 높이. 한화로 3조원을 들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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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어는 외관이 전부 LED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24시간 내내 쉴새 없이 얼굴을 바꾼다. 광고도 내보내고 눈이 땡그란 특유의 인형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저 많은 전기료를 어떻게 감당하지’란 생각이 들 만큼 어마어마한 인공적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래서 베이거스 전체가 환해졌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베이거스의 뒷골목은 어두웠다. 큰 도로를 주축으로 해서 양갈래로 ‘삐까뻔쩍’, 으리으리한 호텔이 서 있지만, 그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거 좀 무서운데’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밖에서 구경하며 공짜 사진을 찍는 것도 꽤 신나는 경험이지만 꼭 내부 관람을 권하고 싶다.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 입장료는 날짜와 시간별로 다를 수 있는데 100달러(약 14만원) 안팎. 안으로 들어가면 미래 도시에 온 것 같다. 표정과 눈빛이 살아 있는 로봇과 사람과 대화하듯 얘기하고 함께 춤도 추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주어진 1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리고 드디어 1만8000개의 좌석과 16만7000개의 스피커, 1만5000㎡에 달하는 초대형 스크린을 만날 시간. 지금은 50분짜리 ‘지구에서 온 엽서’ 제목의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상영 중이다. 다큐가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니.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 난생처음 만나는 18k 해상도에 압도당하면서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그저 황홀할 뿐.


[라스베이거스=김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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