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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나태주·이병률 뚫고 질주… 짝사랑이 '詩作' 됐죠

'제주에서 혼자 살고…' 쓴 이원하

미용실 보조·단역배우 출신 시인

출간 3주만에 시집 베스트 2위로


끔찍했던 제주도 생활이 시(詩)를 안겨줬다. 이원하(31) 시인이 제주에 살며 쓴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가 최근까지 6쇄를 찍으며 1만부 가까이 팔렸다. 장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나태주·이병률 시집 틈에서 출간 3주만에 교보문고 시집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시인은 미용고를 나와 미용 보조로 일했다. 시를 배운 적도 없고, 스물 두살 전까지는 책에 관심도 없었다. 하루 열네 시간 가까운 중노동을 참을 수 없어 미용을 그만뒀을 때, 돈 안 들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시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유명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나온 학생들 틈에서 위축되기도 했다. 그때 제주로 가기로 결심했다. 20일 만난 이원하 시인은 "이들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제주도를 떠올렸고 오롯이 혼자 지내며 시를 쓰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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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시인은 한때 연기 수업을 들으며 영화 '아가씨' 등에서 단역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신세경씨처럼 생겼으면 연기를 계속했을지도 모르죠"라며 웃었다. /이진한 기자

막상 시작한 제주도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성산일출봉 앞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매일 시를 썼다. "책상도 없는 작은 방에 살았는데 온갖 벌레가 들끓었어요. 빨래 돌리다가도 울고, 누워 있다가도 울었죠. 그런데 시는 오히려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나오더라고요."


그러기를 한 달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수국을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때 쓴 시가 표제작인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였다.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는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라고 썼는데, 사실은 우는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수록된 모든 시는 육지에 있는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썼다. 이원하 시인은 "짝사랑을 하면 대부분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는데 저는 최대한 솔직하게 드러내려 했다"면서 "제 시를 좋아해 주시는 이유도 처량한 나 자신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원하 시인은 "시를 쓸 땐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고 했다. 며칠 만에 눈이 내리는 날엔 '이미 하얀 집에 눈까지 내리는 건/ 어떤 소용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요'라고 묻고, 해변의 발자국을 보고는 '발자국은 왜 사람을 따라가지 않을까요/ 발자국은 언제까지 제주에서 살 수 있을까요'라고 또 묻는다.


'코스모스는 매년 귀밑에서 펴요' '눈물이 구부러져서 나도 허리를 구부립니다'처럼 투명하고 천진한 문장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체에서 피어난 표현이 많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그 남자 팔꿈치에 수국이 핀 것 같기도 하고, 속눈썹이 민들레 꽃씨처럼 보이기도 해요. 회를 먹으러 갔는데 목젖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노을 같아서 노을로 시를 쓰기도 했고요."


요즘은 제주에서 시를 썼던 이야기를 담아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다. 시인은 "산문집은 더 어마어마하게 솔직한 짝사랑 이야기가 담길 것"이라면서 "때로는 솔직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사랑스럽더라"고 하며 웃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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