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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욕심 내지 말고 딱 내 숨만큼만..." 행복을 그리는 화가

"욕심은 자기 숨만큼만… 아이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행복"

피카소보다 인기있는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

‘행복을 그리는 화가' 전시로 35만명 관객 동원

‘내 마음이 말할 때' 등 그림책 3권 동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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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여태껏 인터뷰로 만난 수많은 사람에게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물음표를 받아든 사람들은 대체로 당황했다. 불쾌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지뢰를 밟았거나 풀기 고약한 방정식을 앞에 둔 사람 같기도 했다. 행복이란 무엇이길래, 트로피를 손에 쥔 최고의 순간에 반성문을 요구받은 것처럼, 복잡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그 가운데서 지혜의 좌표를 알려준 몇몇 사람이 특별히 기억난다. 정신의학자 이근후 박사는 질환으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맑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행복은 신기루예요.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큰 슬픔을 덮고 살 뿐이죠. 다행인 건 그나마 자기 성질대로 잘 살다 보면 만족하고, 만족이 지속되면 자주 행복을 느낀다는 거예요."


재독 화가 노은님도 휘파람 불듯 말했다. "행복이 뭔가요?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해요.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죠. 행복은 지나가는 감정이에요. 눈떠서 보낼 하루가 있으면 오직 감사한 거죠.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그냥 받아들이세요(웃음). 날씨처럼.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


행복의 상태에 대해서는 종교학자 배철현의 의견도 잊히지 않는다. "성경의 시편에는 쓰여있지요. ‘행복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사람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죄를 짓는 사람의 곁에 서지 않고, 남을 욕하는 자의 자리에 있지 아니한다'라고. 묵상해보면 행복한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뭘 안 하는 사람입니다. 에피쿠로스학파도 정의했죠. 행복은 절제의 예술이라고. 행복은 수준을 알고 적게 가지는 데서 와요."


행복에 대한 정의는 묻지 않았지만, 행복감이 몸에 밴 듯한 사람도 만났다. 여배우 염정아는 말하는 내내 꽃봉오리가 터지듯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기한 게 저는 자주 행복해요. 남편과 와인 마실 때도, 친구와 수다 떨 때도,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행복해요. 자는 아이들 발을 만져보면 훌쩍 자란 키에 가슴이 막 벅차올라요."


화가 황규백은 온몸으로 감사하고 감탄하니 ‘행복하다’는 말이 습관처럼 붙었다고 했다. 축구 선수였다 사회적 기업가가 된 이영표 선수는 행복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후의 경험을 나눠주었다. "죽음까지 생각하다 알게 됐죠. 인간은 뭔가를 이뤄서 행복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행복한 거라는 걸요… 얼마 전에 집 앞에서 아내와 함께 커피를 마셨는데 햇빛이 어른거리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꿈이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의 행복을 놓지 않고 사는 거예요. 공기, 꽃, 햇빛, 바닐라 라테, 사랑하는 이와 잡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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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난겨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시작으로 천안, 대구, 부산(2020년 4월 5일까지 부산문화회관 전시실) 등 전국에 그녀의 ‘행복 신드롬'이 조용히 전파되고 있다. 이미 현대 화가의 전시로는 역대급인 35만 명이 전시장을 다녀갔다.


나는 에바의 그림 앞에서 이제껏 만난 일상의 현자들이 말했던 그 행복의 정체를 발견했다. 그녀가 채집한 일상의 모습은 간결하고 깊고 화사했다. 머리카락 사이엔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연인은 팔과 어깨만 닿아도 좋아서 눈을 감는다. 가족은 여름날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어른들은 춤을 추고, 노인들은 개를 가슴에 안고, 꼬마들은 불꽃을 움켜쥔다.


거리를 산책하는 개가 충동적으로 콧김을 내뿜듯, 에바 알머슨의 그림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킁킁거리며 행복의 냄새를 맡게 된다. "맞아, 맞아. 그랬지. 우리가 이때 참 기쁘고 참 좋았지"라고.


대기가 촉촉한 겨울 습기를 머금은 날, 부산의 전시장과 서울의 출판사를 오가며 바쁘게 내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의 주인공 같은 산뜻한 비주얼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남편이 쓰고 그녀가 그린 동화 3권을 최근에 동시에 출간한 채였다(‘내 마음이 말할 때' ‘주인공은 너야' ‘모두 식탁으로 모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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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영문인지 당신은 정말 행복해 보이는군요!


"하하. 당신이 나를 환대해주기 때문이에요. 저를 보며 계속 따뜻하게 미소 짓고 있잖아요."


-작가로서 처음부터 행복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었나요?


"아니요. 제가 그리는 건 감정이요. 변화하는 수만 가지 감정을 채집해서 그려요. 부모에 대한 그리움, 자녀에 대한 사랑,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다만 어떤 감정이든 다정한 눈으로 보려고 해요."


-그림 속의 인물은 모두 당신인가요?


"맞아요. 그리고 개는 모두 제 반려견 페트라예요. 주변 인물들은 모두 내 가족과 이웃이죠.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쉼 없이 나와 가족과 이웃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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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미소가 그려지는 에바 알머슨의 작품. 2020년 4월 5일까지 부산문화회관에서 전시회가 이어진다.

-당신은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의 주인공 오드리 토투 같기도 하고 화가 모드 루이스의 생애를 그린 영화 ‘내 사랑'의 샐리 호킨스 같기도 해요. 둘 다 이웃과 가족에게 행복의 가치를 전했던 천진난만한 인물들이죠.


"아멜리에, 좋아해요(웃음). 캐나다의 민속 화가 모드 루이스도 좋아합니다. 작은 마을에 살면서 자기가 경험한 일상의 자연과 상상의 세계를 함께 표현했어요. 병이 있어서 힘든 인생이었지만 자기의 귀함을 지키고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했지요. 저도 한때 관절염으로 고생했기에 동병상련을 느껴요."


-피카소보다 인기 있는 스페인 화가라는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어떤가요? 벨라스케스, 고야, 살바도르 달리, 후안 미로... 스페인 사람에겐 화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피카소는 천재지요(웃음). 전 아닙니다. 저는 고야를 좋아해요."


-주인공이 누구든 모두 아이의 표정과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행복이라는 감정 상태와 연관이 있나요?


"그럼요. 천진난만은 행복의 굉장한 힘이에요.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살아남기 위해 그 힘을 다 소진해버려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아이다움은 약해 보이지만 감정적으로 가장 강한 무기입니다."


-당신이 제주 해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린 동화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무척 좋아해요. 그 동화를 쓴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고희영의 영화 ‘물숨’을 감동적으로 봤던 터라 더욱 가슴이 뛰더군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렇게 황홀한 경험은 저도 처음이었어요. 상하이의 호텔에서 우연히 해녀 사진집을 보고 빠져들었어요. 어떤 고기를 잡는지, 물질은 어떻게 하는지… 내 눈으로 보고 싶어 제주도로 날아갔어요. 온종일 뭍에 앉아 해녀가 자맥질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또 봤습니다. 그 스케치가 제주 신문에 나왔고, 그걸 본 고희영 감독이 메일로 영화 ‘물숨' 편집본을 보내왔어요. 해녀에 관한 동화를 만들고 싶다고요. 나는 다시 스페인에서 서울로, 제주의 해녀의 집으로 날아가서 해녀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바다의 여인들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매우 강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고 생에 자긍심과 독립심이 넘치는 여성들이었어요. 해녀공동체는 가족처럼 연결돼 있었고 서로를 돕는 게 일상이었어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지요. 욕심 많고 자연을 파괴하는 현실과는 많이 비교됐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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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부리지 말고 딱 자기의 숨만큼만 있다가 오너라"는 해녀의 말은 육지에서 일하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지혜였어요. 숨 가쁘게 헐떡거리며 사는 삶에 대한 경고였죠.


"맞아요. 자기 숨만큼만 있다 오라는 건 생존의 지혜예요. 욕심부리는 순간, 물숨을 먹고 영영 빠져나오지 못한답니다. 고희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메시지를 오래 생각했어요."


-타고난 숨의 길이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의 계급으로 나눠진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타고난 재능의 많고 적음에 시시때때로 불평하고 불행해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더군요.


"상군은 먼 바다로 나가고 하군은 가까운 바다에서 물질을 해요. 자기 숨의 길이에 맞는 깊이의 바다에 머물러요. 한번 상군으로 태어난 사람은 끝까지 상군이고, 중군은 끝까지 중군이에요. 시작과 끝이 같아요. 나는 해녀들이 자신의 숨의 길이를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는데 큰 감명을 받았어요. 유지하는 것만도 중요하지요. 딸과 어머니가 함께 물질을 하다 어머니가 못 나오고 죽는 경우도 있어요. 바다는 그들에게 생명이고 무덤이에요. 너무 큰 슬픔이고 기쁨인데, 그걸 감사하며 받아들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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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존경하는 해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전시장 벽면에 붙어 있다.

-산소통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숨만큼만 머물다 오는 건, 욕심부리지 말고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생각에서라고요?


"맞아요. 한번은 오래 물질을 하다 나온 노인에게 먹을 것을 드렸더니, 그중 절반을 떼서 바다에 던졌어요. ‘배고플 텐데 왜 버리느냐?’고 했더니 ‘이 몫은 바다의 것'이라고 했어요. 바다를 가족으로 본 거지요."


-해녀들의 직업론과 행복론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쳤나요?


"물론입니다. 그들이 존경스럽고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복잡한 장식보다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요."


-머릿속에서 파도가 치는 이 그림은 ‘해녀' 작업 이후에 그린 건가요?


"네. 맞아요. 그 그림의 제목은 ‘심해'예요. 깊은 바다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우리가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요. 원하면 언제든 수면 위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요. 몸과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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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카락 판타지를 좋아해요. 머리카락의 숲에서 꽃이 우거지고 새가 나는 그림을 보면 어둡고 습하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뒤엉킨 머릿속이 개운해지죠.


"다행이에요. 스페인 속담에도 ‘머리에 새가 있다'는 말이 있어요. 머릿속엔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잖아요. 제게 머리카락은 생각이고 감정이에요. 머리카락에 담긴 일상의 발자국, 걱정과 꿈, 결국은 찾아지는 해결방안까지… 머리카락은 쑥쑥 자라서 그 모든 것들을 평화롭고 지혜롭게 해결해냅니다."


-부끄러움부터 그리움까지 마음의 다양한 상태를 그린 동화 ‘내 마음이 말할 때'와 직업 세계를 그린 ‘주인공은 너야', 음식의 요모조모를 그린 ‘모두 식탁으로 모여봐'는 뮤지션인 당신의 남편 마크 패롯이 글을 쓰고 당신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친절하고 귀여운 생활동화더군요. 그림책 작업을 할 때는 갤러리의 예술 작품을 그릴 때와는 또 다른 진정성이 필요하겠지요?


"맞습니다. 저는 그 그림책을 우리 집 두 아이와 소통하기 위해서 그렸어요. 아이들이 겁을 먹을 때의 마음 상태는 어떤지, 엄마가 떠났을 때는 어떤 느낌인지… ‘내 마음이 말할 때'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상상하며 그렸지요. ‘모두 식탁으로 모여봐'는 먹는 걸 좋아하든 싫어하든, 다양한 식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주인공은 너야'에서는 이 세계에 펼쳐진 직업의 디테일을 알려주고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며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길 바라며 그렸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과 음식과 일에 대한 통찰은 행복의 길잡이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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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유년을 보냈습니까?


"행복하고 또 행복했어요. 평범한 가정이었어요. 아버지는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체육 교사였죠. 어린 시절엔 시간이 많았고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내내 뭘 하며 놀까를 궁리하며 뛰어놀았죠. 요즘 시대는 너무 정보가 많아서 아이들이 단순하게 놀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당신의 평화에는 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나요?


"부모님이죠. 내가 나의 일에 확신을 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너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자석처럼 붙어있어서 웬만한 실패에는 끄떡도 안 합니다(웃음)."


-내면의 평화, 모순 없는 삶에 대해서 늘 이야기합니다. 삶은 어부의 낡은 그물처럼 엉키기 쉬운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모순 없이 잘 정돈하나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돼요. 여러분들도 이미 다 알고 있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고 나머지 일의 순서를 정리하세요. 욕심내지 말고… 몰두하면 누구나 평온한 얼굴이 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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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행복의 비결은 문제를 오래 고민하지 않는데 있다고, 했다. 흰 벽에 단번에 그리는 그림처럼, 겁에 질려 주저하기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하는 편이라고. 해녀를 그리기 위해 제주 바다까지 단숨에 날아간 여자다웠다.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보면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정이 주는 끈끈함, 산책, 살갗에 닿는 따뜻한 물, 살짝 짓는 미소, 붙잡은 손, 함께 보는 불꽃놀이… 단순한 기쁨은 위대하다. 즐거움은 복잡하지 않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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