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 AI 등장하고, 27세 메인앵커는 사표…아나운서, 어디로 가나
불투명한 아나운서 미래
최근 지상파에서 활동하는 한 여성 아나운서의 퇴사 소식이 화제가 됐다.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지상파인 SBS 메인 뉴스 진행을 하는 김민형(27) 아나운서. 팬들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그가 출연한 모든 모습을 캡처해 올리기도 했다. 김씨가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달이었다. 때마침 그는 한 재벌급 인사와 교제 중이며,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곧 포털 사이트의 주요 뉴스로도 노출됐다. “축하한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댓글도 적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부정적 반응도 많았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 “진짜 아나운서 하겠다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꼴” 등의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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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아나운서 뉴스가 화제를 모았다. 종합편성채널 MBN 메인 뉴스 앵커인 김주하 아나운서가 뉴스를 읽어내려가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는데, 알고 보니 AI 아나운서였던 것이다. 김주하 앵커의 모습과 음성을 데이터에 입력하고, 자료와 정보를 축적하면 김주하 앵커의 모습과 음성을 가진 AI가 탄생된다. 별도 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마치 김 아나운서가 직접 말하는 듯한 뉴스가 만들어진다. 김주하 아나운서는 이제 ‘분신술’을 쓸 수 있게 된 것이고, 구태여 그 시간에는 다른 아나운서가 필요 없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현재 MBN은 ‘김주하 AI 앵커’를 매일 인터넷을 통해 이 방송되는 정오 주요 뉴스 등에 투입하고 있다. MBN 관계자는 “현재는 걸음마 단계에서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AI 기술이 발전하면 향후 정식 방송에 투입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잖아도 예전보다 존재 의미가 옅어진 직업, 아나운서. 오랜 기간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 직업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줄어드는 아나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초 발간한 ’2019년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으로 지상파·종합편성채널 등에 소속된 아나운서는 모두 694명(프리랜서 제외)이다. 지상파에서 일하는 아나운서가 505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각종 지역 유선방송에 몸담은 아나운서가 43명, 종편 등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가 146명이다.
그 수는 해마다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2014년 755명이었던 아나운서는 2016년에는 717명, 2017년에는 708명으로 줄었고, 2018년 말에는 694명으로 처음으로 600명대로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과 올해를 거치면서 더 감소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상파 3사의 경우 MBC와 SBS는 작년과 올해 2년 동안 신입 아나운서 채용을 하지 않았다. KBS 역시 올해는 아나운서 채용 계획이 없으며, 작년에도 딱 3명(전국권 기준)만 뽑았을 뿐이다. KBS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부서에서 ‘아나운서를 많이 뽑아달라’는 요청도 그다지 없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아나운서를 뽑을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경제 형편이 안 좋고 시험 장소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상파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많게는 1000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해도 간판급으로 성장하면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현상은 200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아나운서가 아닌 개그맨·탤런트 등이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방송 MC 자리를 하나둘씩 잠식하면서부터다.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김현욱·전현무 전 KBS 아나운서, 김일중 전 SBS 아나운서 등이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방송인(무소속)으로 변신했다. 김현욱 전 KBS 아나운서는 “방송국에 계속 있으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간부가 돼야 한다. 마이크 놓고 회사원처럼 일하느니 서둘러 나가자는 분위기가 있다”며 “처음에는 회사를 나오는 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서 이제는 대세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올해는 SBS가 주목을 받았다.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회사를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07년에 입사한 박선영(38) 아나운서는 메인 뉴스 앵커 등 주요 프로그램을 담당해 인지도가 높았고 장예원(30)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올해 들어 사표를 냈다. 특히 재벌급 인사와 결혼하면서 퇴사하는 일부 아나운서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2000년대 들어 KBS 간판급으로 활약하던 노현정 전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JTBC 조수애 아나운서 등이 각각 재벌가 인사와 결혼하면서 방송국을 떠났다.
10여 년간 케이블 채널과 종편 등에서 뉴스 앵커 등으로 일했던 B모씨는 2년여 전부터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금 생활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100여 곳이나 시험을 치르고 천신만고 끝에 합격했지만, 막상 방송국에 들어와 보니 생각과 다른 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아나운서는 방송에 출연해야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프로그램은 한정돼 있다 보니 내부 경쟁이 치열했다”며 “회사에 매이지 않은 채 내 생활을 하면서 종종 제안 들어오는 방송을 하는 지금이 더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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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 떨어지고, 연예인·배우 선호하는 세태도
이처럼 아나운서들이 직장을 떠나는 것은 과거와 달라진 위상 저하가 이유로 꼽힌다. 한 전직 아나운서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지상파 9시 뉴스 아나운서는 국민 대부분이 알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채널이 많아지고 유튜브 등으로 시청자의 관심이 분산되면서 방송국 아나운서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나운서의 애매한 위치를 이유로 꼽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음악이나 예능 프로그램 진행을 아나운서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근년 들어 그 자리를 개그맨이나 배우, 가수 등이 대체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지상파 현직 PD는 “아나운서들은 회사 소속이라 출연 비용도 적게 든다. 시청률이 어느 정도만 나와도 당연히 출연시키고 싶다”면서도 “요즘은 (아나운서가) 예능인이라 하기도 그렇고, 배우라 할 수도 없다 보니 출연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 아나운서에 대해 여전히 여자다움을 선호하는 조직 문화가 일정 부분 이탈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는 그들 스스로 방송의 꽃으로 남기를 거부하는 셈이다. 한 현직 종편 아나운서는 “바늘구멍을 뚫어 아나운서가 되더라도 어리고, 젊고, 예쁜 여성 아나운서만 찾는 현실을 겪고 나면 기자로 전직하거나 아예 다른 직업으로 옮겨간다”고 했다.
◇열기 식지 않는 아나운서 지망생... 선배들 사표에 기대와 우려
하지만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지망생들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업계는 아나운서 지망생 규모를 1000여 명으로 추산한다. 투비앤아나운서아카데미 이미현 대표는 “유명 아나운서가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여전히 짱짱하다는 생각을 지망생들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나운서 지망생 이현재씨는 “아나운서 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각오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채용 규모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이와 함께 꼭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등에서 방송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지망생의 기대를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김현욱 전 KBS 아나운서는 “물론 메이저 방송사에 취업하는 것이 좋겠지만, 꼭 방송사가 아니어도 방송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업계 패러다임이 크게 변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현직 아나운서들의 이탈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망생 A씨는 “현직 선배들이 퇴사하면 그 빈자리는 우리가 메울 수 있을 테니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그만큼 실망스러운 뭔가가 있으니 방송사를 떠난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고 했다. 지망생 김모(27)씨는 “일부 아나운서가 재벌과 결혼을 해 그만둔다는 기사가 나올 때면 아나운서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나빠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 지상파 남자 아나운서는 “재벌과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아나운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아나운서라는 직업 때문에 주목을 받는 것”이라며 “삼성 같은 대기업이나 은행을 다니다 결혼하며 그만두면 괜찮고, 아나운서는 손가락질 받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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