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품에 안긴 '세한도'… "기증 독려한 진짜 주역은 어머니"
조건 없이 내놓은 추사의 걸작… 기증자 손창근씨 아들 손성규 교수 인터뷰
'개성 사람 앉았던 자리엔 풀도 안 난다'는 말이 있다. 개성 사람은 셈이 너무 정확해서 꿔준 돈 꼬박꼬박 챙겨 받고, 꾼 돈 떼먹는 일도 절대 안 하는 성품이란 뜻이다. 아들 눈에 비친 손창근(91)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대를 이어 간직해온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최고 걸작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손씨가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소식 〈본지 20일 자 A2면〉이 전해진 날, 차남인 손성규(61)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를 만났다. 3남매 중 막내인 그는 "늘 검소하고 돈 한 푼 허투루 쓰는 일 없는 아버님이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작품까지 국민에게 내주셨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세한도’에 앞서 2018년 손창근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 /국립중앙박물관 |
"사실 2018년 컬렉션 304점을 중앙박물관에 먼저 기증하실 때는 어머님이 힘들어 하셨어요. 개성 사람들은 여자한테 집안 경제를 잘 안 맡겨요. 평생 생활비를 짜게 주면서도 고서화 사는 데는 돈을 안 아꼈는데 힘들게 모은 소장품을 하루아침에 다 기증한다니, 내 인생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런데 이번 '세한도' 기증은 어머님이 나섰어요. 주면 다 주는 거지 뭘 하나를 빼느냐, 당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나 달라, 내가 기증하겠다 하셨대요. 아버님이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됐죠." 솔직히 아깝지 않았을까. "아까운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아버님이 2012년 경기도 용인의 산림 200만평을 기증할 때는 저희에게 의견을 따로따로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2018년엔 '나 기증한다' 통보식으로 말씀하셔서 '네, 알겠습니다' 했어요."
―3남매 중 반대는 없었나요.
"글쎄요. 형님과 누님 의견은 모르지만 반대 안 했으니 진행하셨겠죠."
―며느리들 입장도 있었을 텐데.
"장모님이 어머님과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사이예요. '기증하기 전 너희 좀 받았냐' 물어보셔서 '우리 한 점도 안 주셨다' 했더니 장모님이 '야, 개성 분들 지독하시다' 했대요(웃음)."
20일 만난 손성규 교수는 “부모님이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시며 ‘네가 대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
손 교수 할아버지인 손세기(1903~1983) 선생은 일찍이 고향 개성에서부터 인삼 무역과 재배에 종사한 실업가였다. 그는 "돈 있는 집안인데 있는 체하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하셨다"고 했다. 호림박물관을 설립한 개성상인 윤장섭(1922~2016)이 손창근씨의 고종사촌. "두 분이 만나면 '우리가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자식놈들이 제 새끼들 호텔 데려가서 밥 사주더라'며 혀를 차셨다"고 했다. "한번은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는데, 어머님이 호텔방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냈더니 아버님이 옷을 입더래요. 뭐하러 비싼 콜라 마시냐, 내가 편의점 가서 사오겠다고."
―기증품 중에 좋아했던 작품은?
"어린 시절 할아버님 방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기증전에 나와 반가웠지만 작품 이름은 모르겠어요. 고서화 수집은 할아버님과 아버님만 공유하던 취미였죠. 세한도는 금고에 보관하셨는데, 저는 집에서 딱 한 번밖에 못 봤어요."
그는 "2018년 기증식 때 아버님 하신 말씀 중에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라는 표현이 가장 와닿았다. 재물이란 게 떠날 땐 다 두고 가는 것 아닌가. 떠나면서 어떻게 삶을 정리할까 하는 문제가 아버님의 오랜 숙제였을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님이 서강대에 고서화 200점을 기증한 게 칠순 즈음, 아버님이 컬렉션을 기증한 게 구순을 맞아서였죠. 자식들과 얘기하긴 힘드니 혼자 고민하신 겁니다. 굉장히 외로운 결정이었을 거예요."
손 교수는 "오늘(20일)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서 한 가지 섭섭한 게 있었다"고 했다. "'평생 자식보다 더 귀하게 아낀 작품'이란 말. 우리 애들에게 '나는 너희보다 귀중한 건 없어'라고 했더니 좋아하더라. 아버님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설마 자식보다야 소중하겠어요? 하하!"
[허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