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MIT도 사갔다… 이 회사가 만든 ‘인간형 로봇’을
내달 3일 코스닥 상장하는
로봇 기업 ‘레인보우’
세계 재난로봇대회 1등 칵테일 제조 로봇팔 판매
방범순찰용 4족 로봇개 올 연말쯤 출시
신종 코로나 대유행으로 비대면·무인화(無人化) 수요가 치솟으며 사람을 대신할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때맞춰 글로벌 로봇 기업들의 제품 상용화도 줄을 이었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하는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작년 6월 로봇개 ‘스폿’을 상용화했고, 미국 ‘사코스’는 산업용 전신 외골격 로봇을 올해 세계 최초로 출시한다고 밝혔다. 대형 공장의 ‘기계 팔’에 머무르던 로봇 기술이 우리 생활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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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계적 트렌드에 비해 국내 로봇 산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아직 미미한 편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로봇 기업의 총 매출은 5조8019억원(2018년)으로, 산업용 로봇 세계 1위 기업 ‘화낙’의 같은 해 매출(약 7조2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면 기술력도 밀릴까. 다행히 세계적 로봇 기업들과 기술로 대등한 경쟁을 펼치는 한국 기업이 있다. 한국 최초의 인간형 이족(二足)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레인보우로보틱스’다.
이 회사는 오준호(67)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기계공학과)와 제자들이 2011년 창업했다. 회사 자체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만든 로봇 ‘휴보’는 지난 2015년 열린 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DARPA 로봇공학 챌린지)에서 전 세계 24팀의 로봇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 휴보에 밀린 2위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이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였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다음 달 3일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다. 이 회사 이정호(44) 대표는 “한때 계륵처럼 여겨지던 로봇 산업에 (코로나 이후) 불이 붙었다”며 “국내 대기업들이 로봇 기업 인수에 나선 것 역시 로봇 기술이 그만큼 시장성을 갖췄다는 의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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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자체 생산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주력 사업은 인간형 로봇을 주문형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주문자가 요구하는 기능에 맞춰 인간형 로봇을 제작, 납품했다. 이 대표는 “제대로 된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 기업이 드물다 보니, 전 세계에서 주문이 들어왔다”고 했다. 이 중에는 미국 구글 같은 유명 기업과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미국 해군연구소, 싱가포르 정부연구소 등 세계적 연구 기관이 포함되어 있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 그는 14일 본지 인터뷰에서 “올해 국내 협동 로봇 시장에서 1위를 하고 내년에는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박상훈 기자 |
하지만 인간형 로봇의 판매 대수는 지금까지 총 25대, 누적 매출은 102억원 수준이다. 회사의 기술력을 뽐낼 수 있는 큰 시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개발한 로봇이 작년 1월 출시한 산업용 ‘협동로봇’이다.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조립과 이동, 용접은 물론 칵테일 제조 같은 섬세한 작업도 가능하다. 이 제품 하나로 지난해 5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019년(약 17억원)의 3배가 넘는 실적을 냈다. 이 대표는 “출시하자마자 국내 협동로봇 시장에서 3위권에 드는 성과를 냈다”면서 “올해는 업계 1위에도 도전해 볼 만하다”고 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핵심 기술의 내재화를 통한 높은 원가 절감이 강점이다. 기술 내재화란 인간형 로봇 제작 과정에서 얻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구동기, 제어기, 센서, 브레이크 등 거의 모든 핵심 부품을 자체 수급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부품을 생산하는 기계도 직접 개발한다. 핵심 부품을 공급받는 국내외 경쟁사보다 제품의 원가는 물론 판매가도 크게 낮출 수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우리가 판매 중인 협동로봇의 가격은 2000만원대 초반으로, 3000만원대 중반인 경쟁사 제품보다 싸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노골적 인력 빼가기에 상장 결심”
로봇 산업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서 올해 세계 로봇 시장의 규모는 444억달러(약 4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시장 확대는 레인보우로보틱스뿐만 아니라 한국 로봇 업계에도 큰 기회다. 하지만 당장은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과 인력 유출이라는 현실적 어려움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외 유명 기업의 인수 제안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상당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업 현장에선 중소기업이란 이유만으로 제품의 품질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기술을 탐내는 대기업들의 인력 빼가기 시도도 잦았다. 이 대표는 “어떤 대기업은 헤드헌팅 업체에 우리 회사 특정 분야 직원을 이직시켜 달라는 의뢰를 하기도 했다”며 “주식시장에 상장하려는 목적 중 하나가 회사 인지도를 높여 인력 유출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상장 이후 제조업 분야를 넘어 식음료·미용 등 서비스 분야 로봇 산업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관련 로봇 제품은 개발이 끝났거나 마무리 단계다. 칵테일 및 음료 제조 로봇인 ‘MIXX(믹스)’는 현재 미국 네바다주립대 라스베이거스 캠퍼스 학생 기숙사에 도입돼 운영 중이다. 연말에는 방범·순찰용 4족 보행 ‘로봇개’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사람과 로봇이 만나는 접점을 늘릴수록 로봇 산업 역시 활성화되기 때문에 서비스 분야 로봇 공급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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