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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공복 김선생] 명태·깡태·황태·북어·코다리… 모두 한 생선이랍니다

명태, 발에 채일 만큼 잡혔지만

바다 수온 상승·남획으로 씨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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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황태덕장에 매달린 명태./조선일보DB

명태(明太)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생선’이라 불립니다. 북어, 동태, 황태, 코다리, 노가리…. 모두 식탁에 자주 오르는 생선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한 생선, 명태를 가리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무려 60개나 된답니다. 크기, 잡는 방법, 크기, 가공 상태,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합니다.

가공·크기·지역 따라 이름 무려 60개

갓 잡아 올린 명태는 생태, 꽝꽝 얼리면 동태, 낚시로 잡으면 조태, 그물로 건져올리면 망태, 말리면 북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노랗게 말리면 황태, 날씨가 따뜻해 물러지면 찐태, 하얗게 마르면 백태, 검게 마르면 먹태, 딱딱하게 마르면 깡태, 머리를 떼고 말리면 무두태, 물기가 약간 있게 꾸들꾸들 말리면 코다리, 소금에 절이면 염태 또는 간명태라고 했답니다.


잡히는 시기에 따라서는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 잘 잡히지 않아 비싸지면 금태, 크기가 작은 새끼는 노가리, 산란 후 살 없이 뼈만 있는 명태는 꺽태라고 했답니다. 명태가 많이 잡히던 함경도에서는 망태·조태·왜태·애기태·막물태·은어바지·동지바지·섣달바지라 불렀고, 강원도에서는 선태·강태·간태라 했지요. 서울에서는 동태·강태·더덕북어라 했다죠. 일본 호카이도(北海道)에서 들어오는 마른 건명태는 북태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름이 존재하는 건 그만큼 한국인이 명태를 즐겨 먹었기 때문입니다. 명태는 전 세계에서 한민족이 가장 즐겨 먹어온 생선입니다.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한국만 전통적으로 명태를 먹어왔죠. 한자어 명태, 일본어 멘타이(明太) 모두 명태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중국에서는 명태가 잡히지 않았고, 일본에서는 명란을 먹기 전까지는 명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본, 짭조름한 명란 맛에 반하다

명태는 차가운 물에서 사는 한류성 어종으로, 1월 앞뒤로 알이 꽉 차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있죠. 겨울이면 명태가 함경도와 강원도 등 동해 북쪽 바다에 산란을 위해 몰려들었고, 엄청나게 잡혔습니다. 그리고 팔도로 팔려 나갔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전라도·경상도 등 남부 지방의 쌀과 함경도 명태를 교환하는 ‘명태무역’이 활발했을 정도였지요.


명태라는 이름은 17세기에야 처음 문헌에 등장합니다. 효종 3년(1652년) ‘승정원일기’에 ‘강원도에서 대구알젓 대신 명태알젓이 왔으니 관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임하필기’(1871년)에 ‘명천의 태씨가 잡아 명태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으나 확실하지는 않지요.

명란찜./조선일보DB

명란은 일본이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명란 맛을 알게 된 건 일제강점기 이후입니다. 그 전까지는 명태에 관심이 없었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인들이 개항장에 들어와 장사하며 생활하기 시작했고, 명란 맛에 반했죠. 곧 일본 어민들이 몰려와 큰 배와 첨단 어구로 명태를 싹쓸이했습니다. 오로지 명란젓을 얻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일본인들은 명태는 즐겨 먹지 않지요.


함경도 북청·원산, 강원도 양양, 부산 등지에서 생산된 명란젓은 ‘멘타이코’라는 이름으로 시모노세키항을 통해 일본 열도 전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명태 주산지인 함경도에는 1937년 명란 가공 공장이 599곳이나 있었습니다. ‘명란 마요네즈' 같은 요리가 당시 이미 개발되거나, MSG 같은 인공조미료 개발을 시도할 정도였다니 놀랍죠.


일본인의 명란 사랑은 광복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 최대 명란 기업 ‘후쿠야’는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태어난 가와하라 도시오씨가 광복 후 일본으로 돌아가 세웠죠.

국민생선 타이틀 되찾을 수 있을까

명태는 1940년 어획량이 27만t으로 최고 기록을 세운 이후로 차츰 줄어들다가 1980년대 말부터 어획량이 급속도로 감소했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는 동해에서 명태는 구경도 하기 힘들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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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강원도 거진항 명태 잡이. 이렇게나 많이 잡혔다니, 구경조차 귀해진 요즘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조선일보DB

지구 온난화로 인해 동해 바다 수온이 상승하며 더 이상 명태가 한반도 앞 동해까지 내려오지 않습니다. 1970년부터 어린 명태인 노가리 어획 금지가 풀리면서 남획이 이뤄졌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국내산 명태는 맛보기 힘들어졌죠. 명태 연간 소비량 25만t의 90% 이상을 러시아,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지요.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 양식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7년에는 인공 배양해 방류한 명태가 우리 바다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명태 살리기 노력이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고등어에게 빼앗긴 ‘국민생선’ 타이틀을 되찾길 바랍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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