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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종이’라 조롱받던 김… 미국 아이들이 즐기는 최고 간식 됐죠”

[아무튼, 주말]

미국 아마존 김 제품 1위

‘김미’ 창업한 애니 전 대표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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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반도체’. 최근 김에 붙은 별명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을 먹여 살려온 반도체에 빗대 붙여졌다. 그만큼 한국 김 수출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전 세계 생산량의 57%(2021년 기준)를 점유한 세계 1위 품목이기도 하다. 2010년 수출액 1억달러 달성 후 7년 만인 2017년 5억달러를 돌파했다. 2019년에는 50년간 수산물 수출 실적 부동의 1위를 굳건히 지켜왔던 참치마저 넘어섰다. 올해는 수산 식품 단일 품목으로는 최초로 연 7억달러(약 9300억원)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국도 일본·중국 등 전통적 김 섭취 국가뿐 아니라 미국·프랑스·태국·싱가포르·러시아 등 114국으로 확장됐다.


애니 전(한국명 전정란·66)은 최대 수출국인 미국에서 한국 김을 알려온 ‘김 전도사’다. 지난 1991년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식품 업체 ‘애니 천스(Annie Chun’s)’는 김을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계를 넘어 미국 주류 사회에 처음 알린 업체 중 하나다. 애니 천스를 2005년 CJ에 매각하고 2012년 설립한 김 전문 업체 ‘김미(Gimme Health Foods)’는 미국 최초로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기농·비(非)유전자변형(GMO) 인증을 받은 김을 사용한 제품으로 미국 아마존, 홀푸드마켓 등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김 제품 분야 1위에 올랐다.


김 원료를 공급받는 서해와 남해의 김 양식장을 둘러보기 위해 한국에 온 전 대표를 지난달 7일 만났다. 전 대표는 “미국 전체 가구의 고작 4%만이 김을 먹는다”며 “한국 김이 앞으로 미국에서 성장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 ‘바다의 잡초’에서 ‘바다의 채소’로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모델·방송인·사업가 카일리 제너, 가수 앨리샤 키스, 스타 셰프 지아다 드 로렌티스가 김미의 김 제품을 자신들 계정에 포스팅한 걸 봤다.


“우리가 돈 주고 광고한 게 아니다. 돈은 전혀,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들이 ‘건강에 좋고 맛도 좋다’며 자발적으로 올렸다. 그만큼 미국에서 요즘 김이 ‘핫’하다.”


-해조류를 ‘바다의 잡초(seaweed)’로 인식하는 미국에서 김이 인기라니 의외다.


“해조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구글에서 김(seaweed) 검색량을 확인해보니 올 들어 급격히 상승했다. 저칼로리·고단백 ‘수퍼푸드’로 알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등 스타 축구 선수들이 해조류를 정기적으로 섭취한다는 스페인 매체 기사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왜 김을 좋아할까.


“맛있으니까. 한국 사람들은 잘 알지만 김을 비롯한 해조류에는 감칠맛 성분인 ‘우마미’가 풍부하다. 김을 몰랐던 백인, 흑인, 라틴계 미국인도 일단 맛을 보면 좋아한다. 게다가 몸에도 이롭다고 하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미국인들이 김을 처음 접하는 통로가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란 점이다. 다른 아이가 집에서 간식으로 가져온 김을 먹어보고는 그 맛에 빠져서 부모에게 ‘우리도 김 사서 먹자’고 조른다는 거다.”


-그런다고 김을 몰랐던 미국 부모들이 김을 돈 주고 살까.


“키워보면 알겠지만, 애들한테 채소 먹이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김이 채소의 일종인 데다 영양까지 풍부한 수퍼푸드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미국 부모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누런 종이봉지에 담긴 샌드위치와 감자칩이 학생들이 싸 들고 가는 전형적인 학교 점심이다. 그런데 요즘은 감자칩이 김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김을 칩 스낵의 일종으로 인식한다. 김은 감자칩보다 칼로리가 훨씬 낮으면서 맛은 좋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만 해도 서양에서 김을 먹으면 ‘검은 종이(black paper)를 먹는다’며 조롱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는데.


“사실 해변에 널브러진 해조류를 보면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김은 해변에 버려진 해조류와는 달리, 양식장에서 정성껏 키운 ‘바다의 채소(sea vegetable)’로 꾸준히 알리고 있다.”


-미국에서 파는 김 제품은 한국에서 파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맛도 모양도 비슷하다. 기름 발라 소금으로 양념해 구워 직사각형으로 자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단 미국에서는 대부분 반찬이 아닌 스낵 즉 간식이나 술안주 등으로 소비한다. 김 자체만 먹기 때문에 덜 짜고 덜 기름져야 하고, 김 자체의 식감 즉 바삭함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김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 미국 소비자는 해조류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냄새를 최대한 잡아줘야 한다. 와사비, 체더치즈, 데리야키, 칠리라임 등 기존에 없는 다양한 맛의 김도 개발했다.”


-김미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김 먹는 법을 소개하더라.


“김 소비가 꾸준히 일어나려면 김을 어떻게 먹는지 알려야 한다. 김밥 만드는 법은 물론이고 라면, 볶음밥, 스크램블드 에그 등에 자르거나 부숴서 넣는 등 김을 식사에 활용하는 팁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이제는 미국 소비자들이 알아서 김 먹는 법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드 로렌티스는 김과 밥, 매콤한 태국식 소스인 스리라차, 마요네즈를 버무려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하는 법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김 스무디’도 인기다. 새콤한 과일 스무디에 조미하지 않은 김을 넣어 감칠맛이 풍부해진다.”


◇미국 입맛 맞춘 와사비·치즈 맛 김 스낵


전씨는 무일푼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서울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한 전씨는 1976년 샌프란시스코 음악원(Conservatory of Music) 합격 통지서를 들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왔다.


-한국에서 음악을 공부하려면 집안 형편이 넉넉했을 텐데.


“유학 오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 사정이 여의치 않아졌다. 학비 비싼 사립학교에 계속 다니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자퇴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식당 웨이트리스, 은행원, 백화점 판매원, 부동산 중개인 등 별의별 일을 다 했다. 무슨 일이건 최선을 다해 일했고 살아왔다.”


-첫 직장은 어디였나.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작은 문방구였다. 온종일 지하 창고에서 종이를 만지면서 손도 많이 베였다. 그래도 거기서 일하면서 영어를 많이 배웠다. 버스 타고 출퇴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빨간 머스탱(스포츠카)도 샀다(웃음).”


-’애니 천스’는 어떻게 세웠나.


“옆집 남자가 ‘파머스마켓에서 팔 것’이라며 ‘아시안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었더라. ‘밥도 못 짓는 백인 남성도 아시아 음식을 하는데, 내가 못 할까’ 싶었다. 태국식 땅콩 소스와 레몬그라스 커리를 만들어 1991년 추수감사절 전날 열린 파머스마켓에서 팔았다. 그다음에는 표고버섯 소스를 만들어 나갔는데 꽤 잘 팔렸다. 몇 년 동안 파머스마켓에서만 팔다가, 1994년 ‘샌프란시스코 팬시 푸드 쇼’에 출품한 제품이 건강식품 분야 1등을 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커졌다.”


-초창기 히트 상품인 ‘김치 누들 볼(Kimchi Noodle Bowl)’과 ‘미소 누들 볼(Miso Noodle Bowl)’이 뭔가.


“김치 맛 수프와 일본 된장국에 면을 넣어 먹는 제품들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선 절대 그렇게 먹지 않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쌀밥보다 익숙한 국수로 대체했다. 정통 아시아 음식은 아니지만 미국인 입맛에 맞게 현지화한 아시아풍(風) 제품으로 인기를 얻었다.”


-CJ에 회사를 매각한 뒤에도 3년간 남아 일했다.


“CJ 제품의 현지화를 도왔다. 햇반을 미국 주류(mainstream) 시장에 연계하는 방법으로 ‘브라운라이스(현미) 햇반’을 제안했다. 현미가 건강식품이란 인식이 있으니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거란 계산이었다. 고추장은 케첩처럼 짜먹을 수 있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숟가락으로 떠야 하는 ‘페이스트’ 형태의 기존 고추장보다 짜먹는 ‘소스’가 더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김을 팔기 시작한 것도 햇반 판매 촉진을 위해서라고.


“햇반을 김, 간장과 함께 묶은 ‘스시 키트’를 내놓았다. 미국에선 김밥도 초밥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주류 소비자들에게 쌀밥 즐기는 법을 알려줌으로써 햇반 구매를 유도하고자 했다.”


-김 전문 식품 업체를 다시 차린 이유는.


“다시 일하기로 마음먹고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한국 대표 먹거리인 김, 인삼, 소주 중 하나를 하고 싶었다. 인삼은 정관장 등 대형 업체들이 이미 잘하고 있었고, 소주는 자신이 없었다. 이때까지 미국 시장에 나온 김보다 한 등급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1년만 하더라도 국내에 친환경 김을 생산하는 곳은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통하는 유기농 김을 생산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차를 빌려서 남편과 함께 서해안과 남해안에 있는 김 생산 업체를 15곳 정도 방문했다. 뜻이 맞는 업체를 만나 미국 FDA 유기농 인증 받는 과정을 도왔다. 미국에서 유기농·비(非)GMO 인증을 받은 김은 최초였다. 이 김을 2012년 출시했고, 미국 최대 유기농 매장 홀푸드마켓에서 기능성 스낵 1위에 올랐다.”


-한국 정부가 김 산업 경쟁력 강화를 고민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 김 홍보·마케팅을 해줬으면 한다. 아보카도가 지금처럼 세계적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게 된 건 멕시코 정부가 정책적으로 아보카도 이미지 개선·강화에 힘썼기 때문이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니 해산물 전반을 홍보해도 효과가 클 듯하다. 바다·해안 환경보호도 필요하다. 품질 좋은 김을 생산하려면 청정 자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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