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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감추고 싶었던 백발, 이젠 내 자신감의 원천"

데뷔 2년차 76세 모델 최순화씨, 서울패션위크 오른 최고령 모델


멋들어진 백발이 눈에 들어왔다. 또각또각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우아한 턴(turn)…. 아바 노래 '치키티타'에 맞춰 '워킹'을 선보이던 시니어 모델 최순화(76)씨는 "요즘은 흰 머리 대신 검은 머리가 나서 고민"이라고 했다. "처음엔 젊어 보이려고 시커먼 색으로 염색할까 했어요. 웬걸, 흰 머리가 오히려 세련되고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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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압구정동 한 모델 학원에서 76세 시니어 모델 최순화씨가 포즈를 짓고 있다. /이진한 기자

1943년생 최씨는 데뷔 2년 차 신인 '시니어 모델'(통상 나이 50세 이상)이다. 지난해 모델 김칠두(64)씨와 함께 국내 시니어 모델 최초로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섰다. 서울디자인재단 관계자는 "20~30대 위주인 무대에 70대 모델이 오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가을겨울 시즌 디자이너 '키미제이' 무대로 데뷔, 같은해 봄여름 시즌 '더갱' 무대에 섰다. '데이즈드 코리아'와 지난달 '바자 코리아' 화보도 찍었다. "옷태를 우아하게 만든다" "젊은 모델보다 오히려 세련미가 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난 그는 "늙어보일까 감췄던 백발이 지금은 최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했다.


경남 창원에서 1남 6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홉 식구 입에 풀칠하려 어릴 때부터 재봉 일을 했다. 언니들에게서 줄줄이 물려 입던 투박한 옷 대신 독특한 옷을 입고 싶었다고 했다. "쓰다 남은 붉은 벨벳 천을 잘라 원피스 흉내도 내고, 노란 옷깃을 다른 옷에 바느질해 입기도 했죠."


스무 살 때 언니 따라 서울로 와서는 잠시 모델의 꿈도 꿨다. 하지만 아버지 간병으로 힘들어하던 가족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스물다섯에 간호 보조 일을 배워 4년간 병원에서 일하다 결혼 후 그만뒀다"고 했다. 자식 뒷바라지하며 가정주부로 40년을 지냈다. 적적함을 달래려 68세 나이에 간병 일도 시작했다.


다시 모델을 꿈꾼 건 71세 때. "늘씬하고 키도 큰데 모델 하면 잘하겠다"는 한 환자의 말을 듣고서다. "몇십년 화장도 안 하고 하이힐도 안 신고, 그랬어요. 늙어서 주책이다 했는데 마음이 몇 날 며칠 밤 싱숭생숭하고 잠도 못 자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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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왼쪽에서 둘째)씨와 시니어 모델들.

수소문 끝에 모델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엔 자식들에게도 말을 안 했다. 170㎝ 늘씬한 키지만 젊은 모델 옆에 서자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주눅도 들었다. "일주일 내내 쪽잠 자며 간병하고 딱 하루 학원 가는 그날이 너무 기다려지고 설렜다"고 했다. "새벽 시간 병원 복도에서 남몰래 워킹 연습도 했어요."


그는 "모델을 하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처음 엉덩이 흔들며 걷는 '골반 걸음' 배울 땐 남세스럽고 민망해 고개도 못 들었는데, 이젠 얼굴에 철판 깔았죠." 평소 단화를 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워킹 연습을 할 땐 7㎝ 하이힐을 꼭 챙겨온다. 자세도 바르고 건강해졌다. 허리가 하도 꼿꼿해 또래들 간 별명이 '깁스'다.


반곱슬의 백발 관리 비결은 '헤어트리트먼트'(영양제)다. 사용 후 15분가량 헹궈야 기름지지 않고 윤기가 난다고 한다. 자신의 강점으로는 "나이가 든 만큼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양한 분위기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해보니 이만한 보약이 또 없을 만큼 행복해요. 이왕 시작했으니 되든 안 되든 세계 무대에도 서는 게 목표예요."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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