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로 작품을 만드는 생활 예술가들, 짤라이 마켓
채지형의 리틀인디아 제7화
오늘은 남인도 께랄라 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 짤라이 마켓으로 떠나보려고 합니다. 인도의 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눈과 코를 더 자극합니다. 온갖 색이 펼쳐져 있는 데다 수많은 향신료가 진하게 깔려 있거든요. 짤라이 마켓은 인도 시장의 특징을 품고 있지만, 조금 달랐습니다. 생활밀착형이라고나 할까요. 좁은 골목에 한두 평 되는 가게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요. 싱싱한 채소부터 반짝거리는 금까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이 가득 쌓여 있답니다. 인도 친구의 소개처럼 “접시 사러 갔다가 빗자루에 연필, 과일까지 사게 되는 시장”입니다. 막상 들어가면, 사면 좋을 것 같은 물건들이 끊임없이 지갑을 열게 합니다. 자, 저와 함께 생동감 넘치는 짤라이 마켓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생활밀착형 시장
눈이 즐거운 짤라이 마켓 구경 |
짤라이 마켓(chalai market)에 가기 위해서는 트리밴드럼이라는 도시에 가야 합니다. 트리밴드럼(trivandrum)은 께랄라 주의 중심 도시에요. 께랄라 주는 끝없는 해변과 여유로운 하우스보트 같은 낭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트리밴드럼은 이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상업 도시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맛있는 먹거리로 구석구석 재미가 숨어있는 곳이거든요.
트리밴드럼은 여행자들에게도 중요한 도시입니다. 교통의 중심이거든요. 인도의 최남단,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해남 같은 땅끝 마을이 있는 깐야꾸마리도 기차를 타고 2시간이면 갈 수 있고요. 버스로 1시간만 가면, 넘실거리는 파도와 야자수가 멋진 꼬발람이라는 해변 마을이 나타난답니다. 또 이곳에서 신혼여행지로 인기 있는 몰디브로 향하는 여행자도 적지 않아요. 저가항공을 이용해 예약해두면, 10만 원 정도로 트리밴드럼에서 몰디브까지 날아갈 수 있거든요.
(왼쪽) 시장은 덤이지, 하나 덤으로 주세요 (오른쪽) 이 생선 맛 좀 볼래요 |
이래저래 트리밴드럼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입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짤라이 마켓이에요. 이곳에서 께랄라 사람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볼 수 있습니다. 힌두 문화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들의 문화를 느낄 수도 있고요. 바다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생선들도 만날 수 있거든요.
앙증맞은 가게가 빼곡히 이어진 좁은 골목들
짤라이 마켓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곳에는 트래번코르(Travancore) 왕국이 번성하고 있었는데요. 이 왕국의 수장인 라자 케사바다스가 짤라이 마켓을 만들었다고 해요. 무역상들과 지역 주민들이 생활용품들을 사고팔 수 있는 장소로 말이죠. 18세기에 문을 연 이후, 흥망성쇠를 거듭해 오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란색 툭툭이 주름잡는 짤라이 마켓 메인도로 |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정신을 쏙 빼놓는 경적에 잠시 심호흡을 하게 됩니다. 입구에 로컬버스들이 정차하는 곳이 있거든요. 트럭과 툭툭,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각자 소리를 내며 흘러 다닙니다. 또 근처에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극장이 있어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요.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시장에 들어가면, 시장 메인 도로 양쪽으로 좁은 골목길들이 나 있는 것이 보입니다. 큰길에서 보면 그다지 길어 보이지 않지만, 골목이 2km 이상 이어져 있다고 해요. 그래서 골목에 한 번 들어가면 미로처럼 길을 찾기 어려운가 봐요.
연필부터 금은보석까지 없는 것이 없어 보이는 짤라이 마켓 |
짤라이 마켓에 들어서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보석 가게였어요. 금은보석을 파는 곳들이 어찌나 많은지, 인도 사람들이 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실감 나더군요. 인도 사람들은 세계에서 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죠. 인도는 국제 금 시세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랍니다. 인도 사람들은 금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고 해요. 여행하면서 보니, 허름하게 입은 인도 사람들도 몸에 금붙이 하나는 차고 있더라고요.
뿌뚜와 도시락 통, 룽기 “다 사고 싶어”
(왼쪽) 남인도 음식이 뿌뚜를 만드는 기구 (오른쪽) 남인도에서 남자들이 입는 치마, 룽기 |
보석가게 앞에는 각종 노점이 겹겹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여기저기에서 “한번 보고 가세요. 구경은 공짜”라는 구애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못 들은 척 걸어나갔습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들어가서 한참 동안 설명을 들어야 할 테니까요. 그러다 각종 기구를 파는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습니다. 처음 보는 조리 기구가 있었거든요. 스테인리스로 만든 긴 통이었어요. 알고 보니, 남인도 전통 음식인 뿌뚜를 만드는 기구였습니다. 뿌뚜는 흰 가루로 만드는 빵 같은 음식인데, 모양이 귀여운 원통형이에요. 뿌뚜를 먹으면서 어떻게 만드나 싶었는데, 바로 이 기구를 이용해 만드는 것이더군요. 바닥은 우리 스팀 찜기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있더군요.
뿌뚜 만드는 기구 옆에는 영화에서 보던 도시락 통이 있었습니다. 매력 가득한 인도 영화 ‘런치박스’ 덕분에, 도시락 통을 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지만, 눈길만 주고 사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여행이 한참 남아있으니까요. 대신 지갑을 열게 된 아이템은 룽기였습니다. 룽기는 쉽게 말하면 넓은 천인데요. 남인도 남자들이 일상적으로 입는 치마랍니다. 허리에 둘러서 발목까지 늘어뜨려서 입는답니다. 더울 때는 반으로 접어서 미니스커트처럼 입기도 하죠. 여행하면서 몸에 두르기도 하고 테이블보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아 장만했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어물전 |
룽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 깊숙이 들어가니, 생선 파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싱싱한 생선이 가득 쌓여 있더군요. 이곳에는 유독 할머니들이 많았습니다. 한 손에 생선을 들고 목청 높여 호객 행위를 하시는데, 강한 생활력이 느껴지더군요. 한쪽에서는 생선을 차갑게 보관하기 위해서, 열심히 얼음을 나르고 있고요. 저쪽 바닥에서는 생선을 말리고 있더군요.
구석에 서서 분주한 시장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푸줏간 아저씨가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큼지막한 양고기를 가게 앞에 걸어놓고 옆에서 늠름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저씨. 최대한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사진을 한 컷 담아드렸습니다. 이어지는 엄지 척. 환한 웃음을 나누고 손을 흔들며 자리를 옮겼습니다.
생활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멋진 패턴
치열한 어시장에서 나오니, 눈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과일과 채소 시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찌나 색과 모양이 예쁘던지 마음을 훅 빼앗겨버렸습니다. 생강은 우리네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서너 배는 더 컸고, 가지는 동글동글한 모양이 마치 야구공 같더군요. 같은 채소도 자라는 지역에 따라 참 다른 모양을 갖는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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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을 이루고 있는 예쁜 채소들 |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 과일도 많았습니다. 초록색의 구스베리와 주황색의 파파야, 달콤한 커스터드 애플, 시큼한 라임까지 시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싶더군요. 저를 더 행복하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예쁜 과일과 채소들로 만들어낸 패턴이었습니다. 짤라이 마켓 상인들이 과일과 채소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더군요. 마치 광고를 찍으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룽기 위에 진한 체리핑크 티셔츠를 입은 과일가게 아저씨의 패션센스도 미소를 짓게 해주었습니다. 문득 짤라이 마켓 상인들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생활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즈를 담는 일회용 식기, 바나나잎 |
과일 가게를 나오니 아저씨 한 분이 의자에 앉아 바나나 잎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왜 바나나 잎을 정리하나 했더니, 남인도 백반인 밀즈를 담을 수 있도록 거친 부분을 다듬고 있는 것이었어요. 역시 남인도구나 싶더군요.
힌두교 여신의 스티커와 예수상이 나란히 걸려 있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넘실거리는 짤라이 마켓, 남인도에 가신다면 잊지 말고 들려보세요. 인도의 다채로운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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