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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가 즐겁다, 모로코의 재래시장 수크

채지형의 ‘요리조리 시장구경’ No.5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모로코의 재래시장, 수크(souk)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단순함 속에 세련미가 풍기고 투박함 속에 정겨움이 묻어난다. 세계 여인들이 열광하는 ‘모로칸 스타일’의 중심, 민트 티 한 잔에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모로코의 수크다.

미로가 즐겁다, 모로코의 재래시장 수

수크 풍경

마라케시 수크는 모로코 최고의 시장이다. 손재주 좋은 베르베르인들의 고향인 이곳은 스페인과 아랍 세계가 만나는 교차로다. 시장 안의 천막 사이로 스미는 빛에 따라 갈리는 명암. 그 빛과 그림자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얽히고, 현지인과 여행자가 섞인다.


처음 발 딛는 이방인이라면 이곳이 아라비안나이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시곗바늘을 18세기로 되돌린 듯 생경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코끝을 건드리는 향신료 냄새, 땅땅 귓전을 때리는 망치 소리, 가죽신 만드는 할아버지는 옛날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옆에서 기하학적인 무늬의 도자기를 빚는 청년은 예술가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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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모로코에서는 화덕에서 직접 빵을 굽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 화덕에서 직접 구운 빵

수크의 길은 얽힌 실타래 같다. 한 번 들어서면 길을 묻지 않고 밖으로 나갈 도리가 없다. 좁은 골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골목길을 따라 수백 개의 상점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골목을 좁게 만든 이유는 잦은 외부의 침략 때문이다. 침입자가 오더라도 헤매게 만들기 위한 것. 골목이 좁아 길에 그늘이 져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도 있고, 좁은 골목 덕분에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점도 모로코의 골목을 좁게 만든 이유란다. 

모로코 올리브만의 특별한 색과 맛

마라케시 수크에서 눈길을 끈 것은 다양한 종류의 올리브. 색색의 올리브가 다른 향과 맛을 풍기며 침샘을 자극했다. 지중해의 건강식으로 알려진 올리브가 커다란 통에 가득 쌓여 있었다. 모로코는 최대 올리브 생산국 중 하나로, 수크에 가면 여러 방법으로 절인 올리브를 볼 수 있다. 모로코에서는 올리브가 막 익을 때부터 올리브를 딴다. 그래서 검은색과 자주색, 분홍색, 갈색 등 각양각색의 올리브를 볼 수 있다. 맛도 다양하다. 마늘이나 고추, 레몬 등 여러 재료와 섞어, 다른 곳에서 맛보지 못한 올리브의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모로코에 있는 동안 올리브 하나는 원 없이 맛보겠구나 하는 마음에,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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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는 올리브의 최대 산지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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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아름다운 모로코 야채가게

올리브에 반한 마음 때문인지, 과일가게도 알록달록 그림처럼 예뻤다. 민트차의 재료가 되는 민트를 비롯해 과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일가게를 지나니, 화려한 장신구 가게가 나타났다. 대리석 바닥에서 신어야 어울릴 것 같은 전통신발 바부슈와 크리스마스 파티에 두르고 싶은 반짝이 머플러, 여행에 굶주린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앙증맞은 귀걸이가 줄지어 나타났다. 반가운 손님에게 내놓고 싶은 은으로 만든 주전자와 찻잔 앞에서는 지갑을 넣다 뺐다 반복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신기하고 예쁜 물건들에 빠져 눈은 바쁘고 발길은 더뎌졌다.

수크에서 민트티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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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티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쯤 여기저기서 “민트티 한 잔 하고 가요”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 물건보다 주인 인상이 좋은 집을 골라 차를 대접받았다. 향긋한 민트잎이 가득 들어 있었다. 모로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민트티는 모로코 전통차다. 생글생글 미소를 띤 주인은 차를 마시며 묻지도 않은 집안 얘기를 꺼내 줄줄 늘어놓았다. 혼자 돌아다니는 동양인 여행자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가족사 얘기는 다음 손님이 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여기 상인들은 모두 자신만의 천일야화를 품고 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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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맛보는 모로코 전통음식, 따진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페즈의 수크

모로코에는 마라케시 수크말고 보석이 또 하나 있다.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 페즈의 수크다. 같은 시장인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마라케시의 수크가 현대식 시장이라면 페즈의 시장은 중세식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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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크 풍경

페즈는 13~20세기 초 모로코 왕국의 수도였던 페즈는 모로코 정신의 고향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도시다. 페즈는 사하라와 아프리카,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로, 세계 각지의 상품들이 페즈의 수크로 흘러들어왔다. 페즈의 수크는 마라케시의 수크보다 더 좁고 더 어지럽다. 시장 안 골목만 무려 9000개. 그 오밀조밀한 사이를 라방(모로코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 고깔모자 달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 짐 실은 당나귀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영락없는 중세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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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옮기는 덩키

페즈에서는 모스크 근처에 여러 분야의 전문화된 시장이 모여 있다. 그릇이나 금속공예품, 목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있다. 여러 시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가죽시장이다. 페즈의 가죽은 역사와 품질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패션 일번지라는 파리·밀라노의 유명 브랜드 담당자들도 가죽 제품만큼은 페즈에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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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가죽제품

수 천년의 전통을 이어 온 천연가죽염색공장

가죽시장보다도 더 인기인 곳은 천연가죽염색공장 태너리다. 이곳의 가죽 염색법은 7000년 동안 거의 그대로. 여전히 비둘기 똥과 소 오줌, 물고기 기름, 동물의 지방 같은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수크를 돌아다니다 가죽 염색공장을 구경하고 싶다면 냄새를 따라가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지독한 냄새나는 곳이 공장이다. 염색하는 모습을 보려 2층으로 올라가면, 팔레트처럼 생긴 태너리와 바닥에 뚫린 여러 개의 동그란 구멍 사이를 오가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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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죽염색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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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트

형형색색의 염료와 가죽, 가죽을 물들이며 땀을 쏟는 장인들. 구멍을 보이는 ‘빛의 세계’는 마음을 쏙 빼앗길 만큼 화려하다. 신나는 축제를 준비하는 전시장 같다. 힘들여 일하는 장인들을 훔쳐보기가 미안하고 코를 찌르는 냄새는 참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곳이 여행자 필수 코스로 꼽히는 것은 묵묵히 전통을 지키는 아름다움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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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