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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산, 바다, 이야기가 넘치는 동해

채지형의 여행살롱 54화

고향이 아닌데도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 여행지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강원도 동해시가 그런 곳입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마냥 머물고 싶거든요.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높고 산, 넓은 바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날씨도 따뜻하고요. 해양성기후 영향을 받아서 같은 위도에 있는 지역보다 연평균 기온이 높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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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자리한 행복우체통

행복 우체통도 마음을 데워주는데 한 몫합니다. 동해의 추억을 담아 엽서를 띄우면 공짜로 배달해주거든요. 묵호등대를 비롯해서 곳곳에 행복 우체통이 있어, 자꾸 펜을 들라고 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엽서. 그래서 동해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해는 아담합니다. 인구가 채 10만 명이 안 되고, 면적도 180.17㎢로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작거든요. 작은 고추가 매운 법. 내로라하는 산과 바다를 옹골차게 다 품고 있습니다. 산에서 바다까지 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단 10분. 산과 바다를 다 품기에 딱 좋은 곳이 동해입니다. 

동해의 이야기 바다, 논골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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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담길

한가롭게 걷기 좋은 논골담길에서 동해 여행을 시작합니다. 논골담길은 묵호항의 역사와 마을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아기자기한 벽화를 따라 10여 분 오르면, 동해의 시원한 파노라믹 전망이 펼쳐집니다. 작은 수고로움으로 황홀한 풍광을 맞아도 되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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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잡히던 30~40년 전. 길이 물에 젖어 물 댄 논 같다고 해서 논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오징어도 명태도 귀해지고,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아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논골담길의 ‘담’은 벽이라는 뜻과 함께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논골 마을의 옛이야기를 하나하나 담고 있거든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발걸음이 더뎌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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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구석구석을 따라 이어진 논골담길은 1길과 2길, 3길 등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길은 꼭대기에서 해발고도 64m인 묵호등대와 만납니다. 논골 1길은 고기잡이를 하며 살던 동해사람들의 이야기를, 논골 2길에는 옛 풍경을 담고 있어 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논골담길에 가실 때는 여유를 두고 가시면 좋습니다.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거든요. 카페에 앉아 엽서 한 통 쓰다 보면 동해 여행이 더 특별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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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묵호등대 (오른쪽) 묵호등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동해의 가을 산, 무릉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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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무릉계곡으로 들어갑니다. 가을 단풍도 좋지만, 시원하게 속을 뚫어주는 맑은 공기가 더 반갑더군요. 여름의 계곡이 싱그러움을 안겨준다면 가을의 계곡은 인생의 깊은 맛을 음미하게 해줍니다.

 

1977년 국민 관광지 1호로 지정된 무릉계곡. 동해의 명산인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바위와 폭포, 그리고 나무들이 어우러져 황홀한 풍광을 안겨줍니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것도 무릉계곡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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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 들어서면 2000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를 만납니다. 무릉반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요. 바위 위로 맑은 물이 흘러, 보는 이의 마음까지 후련하게 해줍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가 봉래 양사언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새겨놓은 글도 볼 수 있습니다. 

 

무릉반석을 지나면 단아한 사찰인 삼화사가 나타납니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매년 10월 마지막 주에는 국행수륙대제를 거행합니다. 국행수륙대제는 물과 땅에서 떠도는 넋을 위로하기 위한 불교 의식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삼화사를 둘러본 후 30분쯤 오르면 장엄한 장군바위가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이어서 이끼가 절벽을 감싸고 있는 선녀탕, 단아하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쌍폭포가 나타납니다. 사이좋게 마주 보고 흐르는 물줄기가 장관입니다. 쌍폭포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거대한 바위에서 수직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용추폭포가 등장합니다. 한번 폭포를 보고 나면, 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폭포의 시원한 기개를 닮고 싶은 마음에 눈을 비비며 보고 또 보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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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은 하늘 문을 향합니다. 가파른 계단 덕분에 손에 땀을 쥐며 한 걸음씩 계단을 오릅니다. 고생은 잠시. 하늘 문만 다 오르면 확 트인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릉계곡의 절경은 덤입니다. 오래된 소나무와 장엄한 산,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단풍까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신선이 앉았던 바위’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신선바위를 비롯해 거북이 모양을 한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찾아보는 것도 특별한 즐거움입니다.  

 

편안하게 트레킹을 즐기고 싶은 분들은 무릉계곡에서 오던 길로 내려가셔도 됩니다. 왕복 6.2km 코스이고요. 무릉계곡에서 내려올 때 하늘 문을 선택하면, 왕복 7.4km 코스랍니다. 

동해의 대표 해변, 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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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해변

동해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곳이 추암 해변입니다. 동해에는 망상, 대진, 한섬, 노봉 등 이름난 해변이 즐비합니다. 그중에서 한 곳만 꼽아야 한다면 역시 추암이죠.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촛대 바위가 있는 곳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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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바위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능파대

  

바다 가운데 높이 5~6m로 불쑥 솟아있는 촛대 바위의 생김은 보고 또 봐도 신비롭습니다. 해안절벽과 기기묘묘한 바위섬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바위들도 감동을 안겨줍니다. 억겁의 세월 한자리에 앉아 파도를 맞고 있는 바위들. 동해의 격렬한 파도를 다 받아치는 의연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돌이 숲을 이루는 곳이 나타납니다.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절경에 심취해 이곳을 ‘파도를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로 ‘능파대(凌波臺)’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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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추암해변 주변의 조각공원 (오른쪽) 추암해변에 있는 해운정

바다에 빠지고 바위에 홀리고 돌아오는 길. 추암 관광안내소 앞 빨간 우체통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역시 동해에서는 엽서를 띄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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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
소개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