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하노이를 제대로 여행하는 법, 36거리 어슬렁거리기
채지형의 ‘요리조리 시장구경’ No.15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씨클로 |
하노이는 기품 있는 도시다. 2010년에 천도 1000년을 맞이한 베트남의 오랜 수도로, 구엔 왕조 시대(1802~1945년) 후에가 수도였던 기간을 제외하면, 1000여 년 동안 베트남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물론 영화로웠던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의 속국일 때는 전방기지로 사용되었고, 프랑스 식민 통치 시대에는 행정본부의 모습을 하며 모진 세월을 견뎌냈다. 그렇게 천 년 세월 동안 하노이는 조용히 베트남의 역사를 품어왔다.
하노이를 걷다 보면, 오랜 시간을 이겨 낸 도시만이 가지는 힘이 느껴진다.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잎이 무성한 거목들과 수많은 호수들, 그리고 베트남 문명의 요람인 홍강까지 도시 자체에서 뿜어내는 우아함이 있다.
고풍스러운 하노이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것이 구시가에 있는 36거리다. 36거리의 역사는 리왕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왕조는 1009년부터 122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로, 36거리는 리왕조 때 같은 상품을 취급하는 36개의 상인조직이 구역을 정해 물건을 팔면서 시작됐다. 강산이 열 번도 더 변했지만, 36거리는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36거리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베트남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36거리에 없으면 베트남에 없다’
항꽛(Hang Qu_t) 거리에서 파는 불교용품들 |
36거리는 하노이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호암끼엠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시장이 발달한 곳으로, 지금도 하노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36거리에 없으면 베트남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36거리는 각양각색 상품들이 판매되는 하노이의 대표 시장이다. 거리이름은 ‘항(Hàng)’이라는 단어와 다른 단어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상품을 뜻하는 ‘항’ 뒤에 구체적인 물건 이름이 붙는다. 예를 들어, 닭을 뜻하는 가(Gà)가 붙은 ‘포항 가(Phố Hàng Gà)’는 닭을 비롯한 오리나 거위 등을 파는 거리를 말하고, 목화를 뜻하는 봉(Bông)이 붙은 항봉(Hàng Bông)은 면직물을 파는 시장이다. 이렇게 거리 이름을 알면, 어떤 물건을 파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탈과 도자기류를 취급하는 곳 |
항다오(Hàng Đào)는 옷감을 취급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옷감보다는 옷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항마(Hàng Mã)는 제사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거리다. 항박(Hàng Bạc)은 금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취급하는 곳으로, 여행자들의 숙소가 이 부근에 밀집해 있다.
36거리지만 실제로 거리는 50개가 넘는다. 베트남을 알아야 이 수수께끼가 풀린다. 베트남에서는 많다는 것을 뜻할 때 아홉을 말하는데, 36은 아홉을 네 번이나 곱해야 하니 매우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베트남에서는 보통 홀수보다는 짝수를 선호하지만, 유독 ‘9’는 ‘럭키 9’라고 할 정도로 베트남사람들이 좋아한다. 우리에게 불길한 숫자인 ‘4’는 오히려 베트남에서는 좋은 숫자에 해당한다.
시장 자체가 소중한 문화유산
좁은 골목을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소음과 시클로의 땀이 뒤범벅 된 거리. 한 칸 크기로 다닥다닥 붙어 도로까지 점령한 상점들. 36거리가 있는 구시가 전체가 시장 통이다. 그래서 구시가지에 숙소를 잡으면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기 위해 특별히 박물관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다. 36거리를 하나씩 훑고 나면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 오감으로 알 수 있다. 호텔 앞 상점을 기웃거리다 비좁은 골목을 서성거리면, 하노이가 어떤 곳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왼쪽)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베트남 여인 입체카드 (오른쪽) 한땀 한땀 손으로 만든 정성스러운 팔찌 |
(왼쪽) 도자기로 만든 제품들 (오른쪽) 수상인형극에 사용되는 베트남 인형 |
베트남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36거리는 배낭여행자들에게 기념품을 사기에도 좋은 곳이다. 베트남 사람 특유의 부지런함과 섬세함으로 만든 입체카드는 아오자이 입은 여인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비롯해서, 파리의 에펠탑,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 등 세계 곳곳의 유명 건축물들을 멋지게 재현하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생각나, 종류별로 가방에 넣었다.
다음은 멋쟁이 선배 언니를 위한 선물. 하나의 팔찌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버튼이 수십 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버튼들이 모이니 멋지게 조화를 이뤘다. 분명히 언니는 이 팔찌를 받고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왼쪽) 심혈을 기울여 도장을 만들고 있다 (오른쪽 위) 재치넘치는 디자인의 도장들 (오른쪽 아래) 도장이 잘 파졌는지 테스트중 |
사진쟁이 친구를 위해서는 도장을 팠다. 카메라가 담긴 도장. 불교용품을 파는 거리 항꽛(Hàng Quạt)에는 즉석에서 나무도장을 파는 노점이 많다. 이름만 파는 도장이 아니다. 베트남의 상징을 담은 도안부터 스누피나 키티 등 캐릭터 그림까지 온갖 종류의 도안이 준비되어 있었다.
좁디좁은 자리에 어떻게 저 많은 글자를 파나 신기해서 한참 쳐다봤다. 선수는 선수였다. 30분도 안 되서 뚝딱 완성. 도장 안에는 멋진 카메라와 친구의 닉네임이 들어가 있었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5000원 내외. 분명히 친구도 기뻐할 것이다. 주는 사람이 즐겁고 받는 사람이 행복해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36거리는 하노이의 아름다움과 함께 소소한 행복감을 안겨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장이었다.
(왼쪽) 소수민족들의 옷과 가방 (오른쪽) 베트남 소수민족을 소재로 한 그림도 많다 |
베트남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오토바이. 어디에 가든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다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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