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만드는 3D 프린터,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인류문명이 시작되던 원시시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을 가 보면 재미있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무런 기반시설도 없고 많은 사람이 몰려살지 않지 않았던 그때부터 인간은 스스로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었다. 농사에 쓰기 위한 석기는 물론이고 식량을 저장할 수 있는 빗살무늬 토기에 이르기까지 직접 만들어 썼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생활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재미로 만든 장식품 같은 것도 있다. 마치 현대의 피규어처럼 점토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인상이라든가 고양이 같은 동물을 작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단순히 필요한 도구만이 아니라 유희로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순전히 재미로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나무를 깎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사진출처 : makerbot.com |
발전된 현대기술은 이런 우리의 본능을 보다 편리하게 도와주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3D프린터도 바로 그런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프린터가 종이 위에 원하는 사진과 글자를 무엇이든 찍어서 인쇄물을 만들어 주듯, 3D프린터는 일정한 재료를 가지고 원하는 어떤 모양의 3차원 물체든 만들어 준다.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이 3D 프린터는 어떤 원리로 움직이며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알아보자.
원리 - 미세한 층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적층식이 일반적
최근에 주목받고 있기에 3D 프린터가 생긴 지 얼마 안되는 기술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3D프린터는 생각보다 오래전에 개발되었다. 30년전인 1980년대 초반에 미국 3D시스템즈가 플라스틱 액체를 뿜어내고 굳혀서 물건을 만드는 프린터를 개발했다. 현재 방식과 원리상 차이가 거의 없는 방식이다.
3D 프린터의 기본원리는 간단하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적층가공으로 액체나 미세한 분말로 된 원재료를 노즐로 뿜어내는 방식이다.
사진출처 : 오토모티브 |
만들려는 물건을 컴퓨터로 마치 미분하듯이 가로로 1만 개 이상 잘라내서 분석한다. 컴퓨터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얇은 막 형태로 한 층씩 데이터를 보내준다. 프린터를 한 층씩 받은 데이터를 그대로 노즐을 통해 분사한다. 한 층이 끝나면 노즐이 살짝 위로 상승하고 다시 다음 층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받아 분사한다. 이런 식으로 마치 탑을 쌓듯 물건의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쌓아올려 완성한다. 이 방식을 쾌속조형 방식이라고 한다.
2차원 프린터에 비해 인쇄속도는 다소 느린 편이다. 1시간당 높이 2.8cm 정도를 쌓아 올린다. 한 층에 해당하는 레이어의 두께는 약 0.01~0.08mm로 종이 한 장보다도 얇기 때문이다. 미세한 층을 쌓아올렸기에 우리 눈에 매끈한 곡선처럼 표현된 부분도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계단처럼 들쭉날쭉하게 만들어져 있다. 마치 모니터 위에 나온 곡선을 돋보기로 보면 미세한 격자화소가 보이는 것과도 같다.
노즐로 뿜어내는 재료는 미세한 가루, 액체, 녹인 실이다. 예를 들어 녹였다가 굳히기 쉬운 나일론이나 석회가루를 용기에 가득 채우고 노즐을 통해 뿌린 다음, 그 위로 프린터 헤드가 움직이면서 접착제를 뿌린다. 접착제로 인해 가루가 엉켜서 굳으면 레이어 한 층이 된다. 레이어가 가루 속에 묻히면서 표면이 가루로 얇게 덮인다. 다시 프린터 헤드는 그 위로 접착제를 뿌려 두 번째 레이어를 만든다. 미리 입력된 설계도에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레이어 수만 층이 쌓여서 물건이 만들어진다. 인쇄가 끝나면 프린터가 가루에 묻혀 있는 완성품을 꺼내 경화제에 담갔다가 5~10분 가량 말려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 준다.
이 재료를 정교하게 이용하면 컬러프린팅까지 구현해 낼 수있다. 무지개색으로 된 물체라면 순차적인 무늬처럼 아래에서 위로 쌓아올리는 동안 처음에는 보라색 재료를, 나중에는 빨간 색 재료를 뿜어주면 된다. 실제로는 각 부위마다 원하는 색상이 다르기에 보다 정교하게 색깔 재료를 분할해서 뿜어주게 된다. 재료에 따라서 액체나 녹인 실 등으로 다르기에 세부적인 구현방식은 다르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
원리가 다소 다른 방식도 있다. 커다란 덩어리로 된 재료를 준비해놓고 이것을 외부부터 둥근 날로 깎아서 물건을 인쇄하는 방식이다. 컴퓨터 수치제어 조각방식이라고 하는데 쾌속조형방식에 비해서 곡선 부분을 보다 매끄럽다는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 방식은 얇거나 가는 물건을 만들기에는 재료 낭비가 심하고 컵처럼 안쪽으로 크게 들어간 모양을 만들기 어렵다. 또한 덩어리 하나를 깎아내기에 단색 인쇄만 가능한 등 한계가 많아서 일부에서만 쓰인다.
매력 - 원하는 시제품을 부담없이 제작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미래 10대 기술을 발표하면서 3D 프린터를 두 번째로 꼽았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은 3D 프린터가 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렇듯 3D프린터가 각광받는 이유는 시제품에 대한 높은 생산성 때문이다. 값싼 재료를 이용해서 원하는 제품을 필요한 작은 수량만 즉석에서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복잡한 모양도 한번에 인쇄하기에 경제성도 매우 높다.
사진출처 : 메이커봇 |
3D프린터가 가장 환영받는 곳은 빠른 시제품 제작이 필요한 분야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구상한 상품을 내놓기 전에 값싼 재료로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보면 문제점을 금방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다. 기게부품이라면 그 부품이 예상한 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고, 작은 모형 항공기라면 제대로 날아다니는지 파악할 수 있다. 3D 프린팅을 위해서는 3D 프로그램으로 만든 설계도가 필요하지만 건설업계나 기계설계 분야에서는 처음부터 3차원 설계를 하는 경우가 많기에 바로 시제품을 인쇄해서 시험해보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완제품 자체가 매우 소량인 경우도 효과적이다. 전통적인 제품 생산 라인에서는 제품을 찍어내기 위한 재료준비와 기계설비 가동을 위해 최소수량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톱니바퀴 1개를 찍어내나 1,000개를 찍어내나 생산비가 거의 비슷하게 드는 것이다. 따라서 겨우 2~3개가 필요한데 1,000개를 주문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에 3D 프린터는 원하는 숫자만 바로 인쇄하면 되며 재료비도 수량에 비례하는 정도로만 든다.
기술발전에 힘입어 쓸 수 있는 재료도 많이 늘어났다. 초기에는 가공이 쉬운 플라스틱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고무, 금속, 세라믹을 포함한 150여 개 소재를 사용할 수 있다. 인쇄속도도 빨라져서 한 시간에서 하루 안에 실물을 만들 수 있으며 프린팅 정밀도 향상으로 인해 신발, 시계, 케이스, 자동차 부품 등 크고 정교한 물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 - 건축물, 의료, 완제품까지
초기 3D 프린터는 재료는 물론이고 작은 부품만 생산할 수 있는 등 크기 제한도 심했다. 따라서 일부 업계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기술발전에 의해 많은 부분이 해소되고 더욱 저렴해진 비용으로 인해 적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기계부품이나 건축 등에 많이 이용되며 각종 프라모델에도 적용되고 있다.
보다 진보된 방향으로 미래산업을 주도하는 방향의 이용도 시도되고 있다. 두바이에는 건물 전체와 이를 채울 가구까지 모두 3D프린터로 제작한 사무실이 들어선다. 면적 185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단층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섬유로 보강한 석고, 플라스틱 등의 재료가 쓰인다. 이런 재료를 이용한 초대형 3D프린터를 이용해 적층가공방식으로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다. 전체 3D프린터의 높이는 약 6미터에 이른다. 또한 공중에서 출력하는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실제 다리를 만들겠다는 스타트업도 생겨났다.
사진출처 : 사우스햄튼대 |
영국 사우스햄튼대에서는 비행기 하나를 통째로 인쇄했다. 이 비행기(SULSA)는 알루미늄 조각을 이어붙인 기존 비행기와는 완전히 다른 생산공정을 거쳤다. 연구팀은 3차원 프린터로 나일론 가루를 쌓아서 비행기를 인쇄한 뒤 레이저로 살짝 수정해서 완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행기는 배터리와 엔진을 달자 최고 시속 160km로 실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의료분야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의료보조기 회사 ACMI에서 3차원 프린터로 골반 뼈를 인쇄했다. 이런 식으로 환자의 몸을 3차원으로 찍은 뒤 환자에게 꼭 맞는 보형물을 만들어 이식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인공 치아(임플란트)나 인공관절 같은 보형물을 만드는데 타이타늄 파우더를 이용해 레이저로 녹였다가 상온에서 굳히는 방식을 이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아예 재료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3D프린터로 쌓아올려 생체장기를 만들겠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미주리대 생물 물리학자 가보 포르가츠 박사는 2006년 국제실험생물학회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세포를 겹겹이 쌓아 압축하면 심장이나 간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포스텍 기계공학과 조동우 교수팀이 3차원 구조물에 줄기세포와 세포영양분을 쌓아 장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예 총기를 만들려는 시도까지 있다. 총기 제작 기술 개발사 디펜스디스트리뷰티드 그룹은 3D 프린터로 생산한 ‘리버레이터’의 설계도면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탄환을 뺀 모든 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권총인데 다운로드 횟수가 10만 건을 돌파했으며 실제 제작해서 시연한 결과 문제없이 위력적인 탄환을 발사했다. 이에 놀란 미국 정부를 비롯한 각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진출처 : 오토트리뷴 |
최근에는 기아차가 2016 북미국제오토쇼에 모하비 후속으로 출품할 프리미엄 대형 SUV 콘셉트카 KCD-12의 실내 이미지를 추가적으로 공개했다. 여기서 기아차는 사진과 함께 대시보드, 도어 패널, 스티어링 등에 최초로 3D-프린터로 제작한 부품을 사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내 대기업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례이다.
이처럼 3D프린터는 개인이 상상하는 어떤 것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로 변신하고 있다. 장식용 피규어, 핸드폰 케이스처럼 자잘한 것부터 우리가 사는 집까지 만들어내는 3D프린터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지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