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T맵이 무료였다면?
심재석의 입장
T맵은 스마트폰 기반 내비게이션 시장의 독보적인 1위 서비스이다. 2002년 네이트 드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돼 1700만 명이 T맵에 가입했다. 특히 10여년 동안 쌓은 실시간 교통정보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는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오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인 이유로 T맵은 반쪽짜리 서비스에 머물러 있다. SK텔레콤 이용자들은 요금제에 따라 T맵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고 데이터 요금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KT나 LG U+ 이용자들은 별도의 비용(7일(1000원), 30일(3000원), 360일(40,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즉 T맵은 SK텔레콤 가입자 확보를 위한 미끼 상품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KT나 LG U+ 이용자들은 T맵을 이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들은 대신 김기사 등 무료 모바일 내비게이션을 이용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T맵은 KT, LG U+ 이용자들을 차별대우 함으로써 김기사가 시장에서 성장할 기회를 준 셈이다. 그 결과 김기사 개발사 락앤올은 성장을 거듭해 지난 5월 카카오에 인수됐다. 인수가는 626억 원으로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국내 최대의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마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네이버는 자사 지도 앱에 내비게이션 기능을 추가했다. 네이버 지도 앱은 월 이용자수 1천만 명이 넘는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지도 서비스다.
T맵은 이제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카카오와 네이버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하나 가정을 해보자. 만약에 T맵이 KT와 LG U+ 이용자들을 차별대우 하지 않고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T맵이 이미 국내 모바일 내비게이션 시장을 석권해서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경쟁자들이 끼어들 틈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내비게이션은 단순히 교통안내 서비스가 아니다. 차량의 필수 앱으로, 스마트 카의 서비스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네이버는 내비게이션을 출시하며 “차내에서 끊긴 네이버의 경험을 잇겠다”고 밝힌 것은 이같은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SK텔레콤과 SK플래닛의 T맵 활용법은 아쉽다.
SK플래닛은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도 짐짓 태평한 표정을 짓고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네이버의 내비게이션 시장 진출로 이 시장의 중요성이 재확인 됐다”면서 “저희는 이를 위협이나 경쟁의 신호로 판단하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인터넷 업계 한 관계자는 “T맵은 플랫폼으로 활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면서 “SK텔레콤이나 SK플래닛이 T맵 이용료 받아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왜 더 확산시킬 방안을 찾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보였던 과거 SK텔레콤의 행보다. SK텔레콤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 태동기 네이트온의 모바일 시장 진출을 막은 바 있다. 모바일 메신저가 자사의 문자 메시지 매출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막아보려 했던 모바일 메신저 시장은 카카오톡에 의해 활짝 열렸다. 카카오톡에 힘입어 카카오는 국내 최대 모바일 기업으로 성장했다. 카카오톡을 단순한 메신저 앱이 아니라 모바일 플랫폼으로 안착시켰기 때문에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반면 네이트온은 PC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모바일 시장 진출이 늦어서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PC 시장마저 카카오톡에 의해 역공을 당해 이제는 기존의 존재감도 사라져버렸다.
T맵을 SK텔레콤 가입자 확산 지렛대로 이용하려다가 경쟁사들에게 기회를 내주는 모습에서 눈앞의 문자메시지 매출 때문에 모바일 플랫폼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게 된 과거 SK텔레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심재석 기자 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