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생 김지영과 2000년대생 중학생
데이터로 보는 82년생 김지영
지난해 남녀 임금격차 '월 104만8000원'…OECD 1위
연봉 높은 철강·조선 업종 여성 노동자 비율 4% 미만
대통령과 대화 참석한 중학생 "임금격차 암울하다" 토로
입사부터 지금까지 남자 동기들의 연봉이 쭉 더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이미 그날 용량의 충격과 실망이 모두 소진됐는지 큰 감흥은 없었다.
둘이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김지영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용돈 이외에 따로 생활비가 들지 않았는데도 모아 놓은 돈은 정대현씨가 더 많았다. 정대현씨의 연봉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회사 규모도 차이가 나고, 김지영씨의 업계가 워낙 열악한 곳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은 몰랐다. 김지영씨는 조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조남주 작가가 2016년 발표한 책 '82년생 김지영'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여성과 남성 간 임금격차의 현실을 표현한 대목인데요. 소설 속 주인공 김지영은 결혼 전 다니던 홍보회사에서 같은 해 입사한 남자 동기들과 연봉이 크게 차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이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또 남편 정대현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로 모은 돈을 공개하면서 임금격차가 크게 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죠.
영화 '82년생 김지영'속 주인공 김지영(배우 정유미 분)의 모습 [자료=네이버영화] |
소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자꾸만 다른 사람으로 분하는 아내 김지영의 회복을 위해 남편 정대현이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돈을 더 벌어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번다. 육아휴직으로 아들(정대현) 앞길 망칠일 있느냐"고 김지영을 나무랍니다. 이에 지영은 복직을 포기하게 되죠.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번다는 말은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73.8%로 남성보다 7.9%포인트 더 높습니다. 고용률도 2000년 47%에서 지난해 50.9%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남자동기들이나 남편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아야했던 82년생 김지영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녀 임금격차…'월 104만8000원'
통계청이 관리하는 e-나라지표의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은 지난해 기준 66.6%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남성 근로자는 2018년 기준으로 월 평균 313만5000원의 임금을 받은 반면 여성은 월 평균 208만7000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남성이 104만8000원 더 많은 월급을 받은 겁니다.
이건 그나마 나아진 수치입니다. 10년 전인 2009년에는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이 62.3%였습니다. 이후 격차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다 2018년 처음으로 65%를 넘어선 것이죠.
10년 전보다 성별 임금격차가 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여전히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갈 길이 멉니다. 한국노총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3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금씩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OECD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죠.
지난 9월 '성별임금격차해소를 위한 정책방안과 노조의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장진희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남성과 여성 모두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월평균임금도 증가했으나 여전히 동일교육수준임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임금수준을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임금수준 높은 업종에 여성비중 낮아
'남녀로 뭉뚱그려 비교하지 말고 직업별, 직군별로 비교해라. 건설, 플랜트, 화공, 기계 등 지금 대한민국 먹여 살리는 직종은 대부분 남자들이 있으니 평균치는 당연히 높은 거 아닌가?'
남녀 임금격차에 관한 한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산업의 주요업종이자 임금수준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제철·조선·자동차 등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수 비중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노총중앙연구원에 따르면 ▲고려아연 ▲쌍용양회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미포조선 등 제철·조선·자동차·시멘트 업종 회사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비율은 각 사의 남성 노동자 수의 4%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판매직 등 저임금근로자 비중이 높은 업종에는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았는데요. ▲신세계 ▲오뚜기 ▲코웨이 ▲이마트 ▲현대백화점 등은 남성보다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이엇습니다. 백화점사업을 하는 신세계는 여성 노동자 비율이 무려 220%에 달했는데요.
장진희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 노동자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전자(2만7000명)이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분류되는 판매직군을 다수 보유한 신세계, 오뚜기, 코웨이 등의 기업에 여성노동자수가 남성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3월 발간한 '성평등을 향한 도약(A quantum leap for gender equality)'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저임금 근로자 비율(전일제 근로자 기준)은 35.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 남성의 저임금 근로자 비율(14.3%)와 비교하면 두배 이상 높은 수치죠. 또 OECD 32개국 여성 저임금 근로자 비율의 평균(23.8%)과도 거리가 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982년생 김지영부터 2000년대생 중학생까지
지난 19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한 한 여자 중학생은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이고, 한국 상위 100대 기업의 평균 임금은 남성 7700만원, 여성 4800만원으로 크게 차이난다"며 "여성 청소년이 생각하기에 너무 암울하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대통령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에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남 동일고용 동일임금'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지난 23일 마감된 이 청원은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선인 청원참여인원 20만 명을 넘어섰는데요. 청원을 올린 청원자는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성별 임금격차 부동의 1위의 불명예를 자랑하고 있는 초대형 젠더갭(Gender Gap, 성별격차) 국가"라며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법제화 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현재 중학생이면 2000년대 중반(2004년~2006년)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82년생 김지영과는 나이 차이가 최대 24년까지 납니다.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과 2000년대생 여자 중학생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자도 남녀 임금격차가 현존하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 했던 고민은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김보라 기자 bora5775@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