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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 넣었다가 다 털렸다

올해 1월 대학생 박모(26)씨는 6개월간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 300만원을 가상 화폐인 '블록틱스'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당시 1코인당 3000원이던 블록틱스는 열흘 만에 467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정부의 가상 화폐 규제 관련 내용이 발표되자 추락하기 시작해 한 달 만에 1400원대로 폭락했다. 블록틱스는 23일 현재 13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투자금 300만원이 10만원대 초반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박씨는 "가상 화폐를 잘 고르면 열 배, 백 배까지도 뛴다는 말을 듣고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었다"며 "투자금 대부분을 날려서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고위험 투자처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2030


최근 목돈을 고위험 투자처에 넣어 한몫 챙기려는 20~30대 청년이 늘고 있다. 이른바 '한 방 재테크'다. 이들은 예·적금이나 저축성 보험 등 안정적인 금융상품은 거들떠보지 않고, 가상 화폐나 테마주(株)처럼 변동성이 큰 투자처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이들에게 많아야 연 2~3%대인 예·적금 이자는 성에 차지 않는다. 20~30대가 많이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8개월 차 사회 초년생인데 적금에 싫증 나서 코인과 주식에 몰빵(한군데에 전부 투자) 중" "비트코인으로 전 재산 탕진했다" 같은 내용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비즈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작년 12월 전국의 만 25~64세 일반인 253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가상 화폐 투자 경험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20대(전체의 22.7%)였다. 바로 다음이 30대(19.4%)였다. 20대와 30대의 가상 화폐 투자 경험 비율은 50대(8.2%)와 60대(10.5%)의 2배 수준이었다. 20~30대의 가상 화폐 평균 투자 금액은 각각 293만4000원, 373만9000원으로 50대와 60대(각각 628만8000원, 658만9000원)보다 적었지만, 20~30대 중 상당수가 아직 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작년을 기점으로 가상 화폐 열풍이 불면서 대학가에서는 가상 화폐와 주식 투자 등을 연구하는 동아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전국대학생투자동아리연합회 정명환(20) 기획팀장은 "투자 동아리 모집 후 3월에 특강을 하면 평소 50명 내외가 참석했는데, 올해는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관련 강연을 열었더니 90명가량이 참석했다"고 말했다.


사회 불안, 청년층 도박 성향 부추겨


돈을 불리려는 욕심이 크다 보니 청년들 중에는 사행성 게임과 같은 도박에 손대는 경우도 많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도박 관련 상담자 중 65.7%(4039명)가 20~30대였다. 도박 관련 상담을 받는 20~30대는 2014년 2142명에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무리하게 투자하다 큰 빚을 지는 등 곤란에 빠진 청년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의 재무 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단체(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가 생기기도 했다. 센터에서는 만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맞춤형 재무 계획을 짜주고 있다.


전문가들 중에는 고위험 투자나 도박에까지 손대는 청년이 늘어나는 원인을 사회 불안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렵사리 취업해서 아무리 돈을 모아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 값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해 '모 아니면 도' 식의 한탕주의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입사 4년 차 직장인 박모(32)씨는 최근 8개월간 월급의 80%가량인 180만원을 매달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박씨는 "그동안 부지런히 돈을 모았지만 통장 잔고는 빈약했다"며 "월급만 모아서는 결혼 자금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아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에 뛰어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실한 금융 교육이 청년층의 '한 방 재테크'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20대가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융 교육 경험이 없다"고 답한 20대는 86.4%에 달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임정민 예방치유팀장은 "최근 청년들의 가상 화폐 관련 상담이 늘고 있는데, 이들은 대개 부모의 재산과 자신의 현 상황을 비교하며 한 방 투자 외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가상 화폐, 주식, 사행성 게임 모두 휴대전화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2030세대의 일탈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이승규 인턴기자(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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