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다목적헬기 만들고, 보잉737 분해 수리… 땀흘리는 사천 KAI 공장
"바로 여기서 한국형 첫 기동헬기 수리온(KUH)이 탄생합니다."
지난 20일 방문한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의 회전익동에서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 생산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작업장에서 생산 중인 수리온은 총 7대. 모두 육군에 납품할 헬기들이다. KAI 직원 수십여명은 아직 도색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노란색 동체에 붙어 엔진을 탑재하거나 내부 케이블을 설치하고 있었다.
수리온은 2013년 개발 완료된 첫 국산 헬기다. 맹금류를 의미하는 ‘수리’와 100을 의미하는 ‘온’의 합성어다. 시속 260km 속도로 최대 450km까지 비행할 수 있고, 주·야간 악천후에도 안정적인 기동이 가능하다. 백두산 높이(약 2750m)에서도 제자리 비행을 할 수 있다. 다목적 헬기인 만큼 육군·해병대와 같은 군용뿐 아니라 경찰·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 20일 한국항공우주산업 본사 회전익동에서 작업자들이 수리온 헬기 조립하고 있다. /KAI 제공 |
바로 이 수리온이 KAI 회전익동에서 탄생한다. 이곳에선 컨베이어 벨트 대신 총 7개 조립 ‘스테이션’을 통해 조립이 이뤄진다. 각 공정이 마무리되면 다음 단계로 밀어내는 식이다. 처음에는 헬기의 몸통 부분인 중앙 동체부터 조립을 시작해 각 스테이션을 거치면서 앞뒤로 조종석과 꼬리를 연결한다. 이후 배관, 연료탱크, 기어박스, 엔진 등을 차례로 탑재하면서 점차 완성된 헬기의 모습을 갖춰나간다.
이날 방문한 회전익동은 올해 2월 새로 문을 열었다. 약 1만7851㎡(5400평) 규모로 기존 1개 라인에 불과하던 조립 라인을 2개로 늘려 수리온을 최대 10기까지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기둥이 없는 격납고 형태라, 언제든지 유동적으로 생산라인을 재배치 할 수 있다.
한국형 첫 기동헬기 수리온(KUH). /KAI제공 |
이날도 각 스테이션에서 작업자 2~3명이 수리온 동체에 붙어 맡은 공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고도로 정교한 조립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한다.
각 동체를 연결할 때도 용접 대신 리벳(나사 종류 부품)을 사용한다. 훨씬 더 견고하게 조립하기 위해서다. 헬기 1대에 들어가는 리벳만 2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각 스테이션 공정마다 짧게는 8일 길게는 13일가량 소요됩니다. 헬기 1대를 제작하는 데 상당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죠." KAI 관계자의 설명이다.
회전익동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한국항공서비스주식회사(KAEMS)에서는 제주항공 보잉 737기의 오후 정비가 진행 중이었다. KAEMS는 KAI를 비롯해 한국공항공사, 경남은행, 부산은행, BNK투자증권 등이 주주로 참여해 2018년 6월에 설립된 국내 최초 정부지정 MRO기업이다. MRO는 Maintenance(정비), Repair(수리), Overhaul(분해점검)을 뜻한다.
KAEMS 관계자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정비사 120여명이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데 상당수가 군 또는 대형 항공사 정비팀 출신"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20일 한국항공서비스주식회사(KAEMS)에서 제주항공 B737이 정비를 받고 있다. /김우영 기자 |
KAEMS 사업장 크기는 상당했다. 약 4000평 크기의 격납고 형태의 사업장에서는 보잉 737을 동시에 6대까지 정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날 작업장에는 보잉 737뿐 아니라 해군의 P-3 해상초계기와 주일미군의 F-16 전투기 등 군항기의 정비도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2017년 KAI는 오는 2022년 9월까지 미 공군과 F-16 90여대에 대한 창정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창정비란 항공기의 완전 복구까지 가능한 최상위의 정비 단계를 뜻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고경식 정비사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다. 그와 다른 정비사 20여명은 이날 보잉 737의 날개와 에어컨, 랜딩기어 등의 정비를 맡았다. "여기서 이뤄지는 중(重)정비는 운항정비와는 다르게 항공기의 머리부터 끝까지 다 정비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환골탈태’ 새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죠." 그의 말대로 통상 열흘 동안 이뤄지는 보잉 737 중정비는 동체, 날개, 배선, 객실 등을 모두 정비한다.
한국항공서비스주식회사(KAEMS) 정비사들이 항공기를 정비하고 있다. /김우영 기자 |
이날 현장에선 MRO 사업의 거점으로서 사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 사천에는 KAI를 비롯해, 보잉과 에어버스 등에 주요 항공 부품을 제조·납품하는 업체 50여 곳이 국가항공산업단지에 모여있다. 정비 과정에서 필요한 부품을 사천 내부에서 조기에 조달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수도권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하고, 항공 전문 인력들도 산업단지에 모여있다는 강점도 있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총 3469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31만1880㎡(9만4000평)에 달하는 항공 MRO 산업단지를 사천에 조성할 계획이다.
KAI 관계자는 "국내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항공기 정비물량을 수주하는 등 해외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천=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