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종원 "준비 없이 식당하면 십중팔구 망해유"
백종원 '슈가보이'에서 '호랑이선생님'으로
"IMF 때 빚 17억…망해서 성공했쥬"
준비 없이 사업하면 십중팔구 실패
"요식업, 성공스토리 믿는 대신 기본부터 쌓아라"
"더 망신당해야 돼."
서울 홍은동 포방터시장을 찾은 백종원은 홍탁집 아들을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노력은커녕 기본도 안돼 있다"고도 했다. 어머니에게 다 떠넘기고 밖으로만 쏘다니는 아들에게 매일 요리 숙제를 내줬다. 매번 변명만 하다 호되게 혼난 홍탁집 아들은 아침 일찍 혼자 나와 음식을 준비하고, 백종원이 새롭게 준 닭곰탕 레시피를 연습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골목식당’ 방송의 한 장면이다. 이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백종원에 열광했다. 폐업 직전인 골목가게를 어떻게 든 살리려는 그의 ‘진정성’이 영상에 그대로 담겼기 때문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살인적인 임대료, 치열한 경쟁, 한국만큼 장사하기 힘든 곳이 있을까.
백종원의 모습은 짝사랑을 하는 연인의 모습과도 닮았다. 어떤 때는 타이르다가 호통도 치고, 그래도 안 통하면 읍소도 한다. 망해가는 음식점을 성공시키는 과정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보다 어쩌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장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백종원을 만났다. 꼭 1년 만이다. 다시 만난 그는 2~3kg가량 살이 빠져있었다. 많이 말라보인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요즘 지방 출장이 많아서요. 내일도 거제도 골목으로 가야 해요"라고 말했다.
마이리틀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슈가보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최근 ‘호랑이 선생님’이 됐다. 그의 조언으로 활기를 찾은 골목만 해도 벌써 12곳이다. 희망이 없던 가게가 마법처럼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의 사업이 되살아난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입시 위주 교육 바뀌었으면... 준비없이 식당하면 망해"
처진 눈에 짙은 눈썹, 곱슬한 머리와 구수한 사투리, 늘어진 목폴라. ‘백주부’라는 별명만큼 친근하다. 지난 5일 오전 11시 찾은 그의 집무실은 식당 집기와 소품들로 가득했다. 작은 메모지에 ‘국수 전골용’이라고 적혀있는 볼이 깊숙한 그릇엔 직원들과 밤새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태양빛마냥 무한한 에너지의 소유자, 식당에 대한 열정만큼 그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준비가 안 됐으면 식당을 하면 안 되죠. 겁 없이, 준비 없이 식당에 뛰어드니까 80~90%는 망하는 겁니다. 빽다방, 그거 준비 기간만 7년 걸렸어요. 커피 1500원에 팔아서 남냐고 하죠? 남으니까 하는 거죠. 수백번 테스트해 보고 준비해서 나온 결과물이에요."
최저임금 급등, 폭등한 임대료 탓에 최근 자영업은 붕괴 직전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최근 발표된 경제 지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월 고용 동향'에선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가 두 달 연속 감소했다.
정부는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 시장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한 근거로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줄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직원을 둘 정도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쁘지 않았던 업소들도 한 해는 견뎠지만, 두 번째 해가 되자 한계에 다다랐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감소는 국내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는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자영업 위기 원인의 하나로 대학만능주의를 꼽았다. 교육자 집안 출신인 그가 한국 교육시스템을 비판하기 쉽지 않았을테지만 거침없었다. 맹목적으로 모두 좋은 대학에 간다는 생각에 시야가 좁아지고,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만 쳐다보다 진학이나 취업에 실패하거나, 은퇴하면 가장 먼저 식당 창업을 생각하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 성공스토리도 들리니까 뛰어드는데 평생 요리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식당을 하는 게 쉽겠느냐"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위기극복 전략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다. 메뉴를 줄이고 가격을 낮추라는 것이다. 당장 매출이 줄더라도 메뉴를 줄여 신선하고 품질 좋은 음식을 선보이고 단골고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비싼 음식값도 과감히 낮춰야 한다.
그는 "아침·점심 메뉴가 8000원이면 너무 비싸다"며 "천편일률적으로 가격을 책정하지 말고 3000원, 5000원짜리를 내놔야 소비자들도 부담없이 사먹고 외식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골목상인 대부분이 원가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장사가 안된다고만 해요. 원가를 계산할 줄 알아야 인건비, 임대료, 상권, 메뉴 중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죠. 그냥 옆 가게가 가격 올리면 따라 올리는 식의 운영은 아주 잘못된 거에요."
◇식당 운영하다 학사경고 두번, 27세엔 빚 17억…실패가 지금의 백종원 만들어
백종원의 장사 노하우는 여러번의 실패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려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호기심이 발동해 초등학교 때는 벽돌쌓기, 대학 입학 전에는 중고차 딜러를 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에는 장사에 빠져 학사경고 2번과 ‘슈퍼부르주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르바이트하던 호프집을 이어받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냥 스스로 돈 버는 것이 좋았다.
"중고차 딜러를 할 때 차 파는 게 너무 쉬웠어요. 그때 ‘포장’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손님 성격에 맞게 설명했더니 너무 쉽게 차를 팔았어요. 세상이 너무 쉬워 보였어요."
얼마 후 차를 사 간 고객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큼지막한 손바닥은 19살 백종원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회사가 알려준 잘못된 정보를 줄줄 읊으며 중고차를 팔다가 본의 아니게 사기를 친 꼴이 됐다. 그때 ‘판매하는 물건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 한다’는 장사의 기본을 배웠다고 한다.
"어떤 질문,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단 걸 깨달았어요. 지식이 충분하게 쌓이지 않으면 팔면 안 된다는 것도요. 책임도 마찬가지죠."
1998년 외환위기(IMF), 인생의 가장 큰 실패를 경험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테리어와 건축사업을 무리하게 벌이다 17억원이라는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외로움이 가장 힘들었어요. 사람에 대한 실망도 많이 하게 됐죠. 실패했으니 직원들이 등을 돌리는 건 당연한데, 성공하면 부를 나눌 것도 아니잖아요. 섭섭하고 외로웠죠. 그때 잘 모르는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장사의 교훈을 깨달았어요."
결국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잘 알고 좋아하는’ 식당이었다. 쌈밥집을 바탕으로 유원지, 포장마차 등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해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등을 줄줄이 성공시키며 빚을 갚았다. 값진 실패의 경험은 그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국내외 30개 브랜드, 1400여개의 직영점·가맹점을 운영하는 ‘더본코리아’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골목식당 맛집’ 유튜브를 만들고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백 대표는 "나만 해도 유튜브로 맛집을 찾아다니는데, 국내 맛집을 소개하는 유튜브가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인도네시아, 터키, 대만 등 외국인들에게 맛집을 알려주고 그 나라 언어로 소개하는 유튜브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12시 반, 직원들은 왜 식사하러 안 나가느냐고 묻자 백 대표는 "저희는 1시부터 먹어요. 식당 사장님들이 한창 바쁠 때 자리 빼앗으면 안되잖아요"라고 답했다.
모든 것은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골목상인을 대하는 손님도 변해야 한다며 웃는 백종원에 대한 열광이, 비로소 납득이 갔다.
유윤정 생활경제부장(you@chosunbiz.com);안소영 기자(seenr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