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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정의선 첫 회동, 삼성-현대차 배터리 사업 협력 첫 발 뗐다

천안 삼성SDI 방문…차세대 기술 ‘전고체 배터리’ 논의

2010년부터 LG와 협력하던 현대차, 배터리 다각화 행보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005380)수석부회장이 13일 충남 천안 삼성SDI 공장에서 만나 전기차 산업의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논의했다. 현대차는 지난 2010년부터 LG(003550)와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기아차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다. 두 사람의 회동은 현대차가 미래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삼성SDI(006400)를 유력한 파트너로 삼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배터리 공급과 관련해 다각화를 추진하겠다는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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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부터). /조선DB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과 현대차 임원들은 13일 충남 천안 성성동 삼성SDI 공장을 방문해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삼성 쪽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했다.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공개 회동을 하게 됐다. 현대차와 삼성SDI는 "삼성SDI와 삼성종합기술원 담당 임원으로부터 글로벌 전고체 배터리 기술 동향과 삼성의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관련 내용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임원으로는 현대차에서는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이, 삼성에서는 전영현 삼성SDI 사장과 황성우 삼성 종합기술원장(사장)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번 회동에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관련 양해각서(MOU) 체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사업장 공개 방문을 택한 데에는 MOU 체결 등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 등 선대에서는 현대차그룹 최고경영진이 삼성 계열사 사업장을 직접 방문한 전례가 없다. 또 정 수석부회장과 이 부회장이 단 둘이 공개적으로 회동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현재 전기차와 IT기기에 쓰이는 리튬이온배터리를 대체하는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에 금속을 쓰고, 그 사이에 유기질 액체 내지는 반액체인 겔(gel)이 전해질로 채워진다. 양극에서 음극으로 전자가 이동하는 데 전해질이 필요하다. 자연 상태에서는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분리막이 쓰인다. 전고체는 전해액 자리에 고체 소재를 사용하고, 분리막이 사라진다. 구조가 간단해지기 때문에 같은 부피나 무게라 하더라도 저장할 수 있는 전력량이 크게 늘어난다. 또 전해액이 새서 발생하는 폭발 위험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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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이 지난 3월 공개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기술.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전고체 배터리를 전기차에 사용하면 1회 충전에 800km 정도의 주행거리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수준의 주행거리와 안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확보가 필수적인 셈이다.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경우 전고체배터리 상용화 기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의 경우 삼성SDI, LG화학(051910), SK이노베이션(096770)등 배터리 3사와 삼성종합기술원이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1회 충전 주행거리가 800㎞에 이르는 전고체전지 혁신기술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회동이 눈길을 끄는 것은 정 수석부회장이 삼성 계열사를 방문하면서, 사실상 전고체 배터리 확보를 위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선언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은 오랫동안 경쟁관계였다. 현대차그룹은 과거에 현대전자를 설립해 반도체 시장을 노렸었고, 삼성그룹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다. 재계 1, 2위 기업집단이라 사업영역이 겹친데다, 양쪽 모두 상대방의 본진(本陣)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현대차 입장에서 삼성과의 협력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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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선보인 전기차 콘셉트카 ‘에센시아’/현대자동차

현대차의 경우 배터리 분야에서 LG와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현대모비스(012330)와 LG화학(051910)이 지난 2000년 설립한 배터리팩 제조 합작법인 HL그린파워가 대표적이다. HL그린파워의 매출은 2018년 7600억원에서 2019년 1조2200억원으로 60.5% 증가했다. 현대차에서 전기차 생산을 늘리면서 매출이 뛴 것이다. 현대차와 LG화학은 이와 별도로 올해 초부터 배터리 생산 공장을 합작 형태로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아자동차(000270)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받는다.


현대차그룹은 내년에 전용 전동화차량(전기차와 수소차) 플랫폼 'E-GMP'를 사용한 첫 순수 전기차를 내놓는다. 내연기관 차량을 개조해 배터리나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기존 전동화차량과 달리 전용 플랫폼을 사용한 차량은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고,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 현대차는 준중형 크로스오버차량(CUV) 모델을 E-GMP를 사용한 첫 번째 차량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 1차 공급사로 SK이노베이션을 선정했다. 5년간 약 50만대 분량으로 10조원 규모다.


정 수석부회장과 이 부회장의 회동은 여기에 삼성SDI도 ‘초대’ 받을 수 있음을 선언한 셈이다. 전고체 배터리 기술 공동 개발이나 양산화를 전제로 두 회사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생산 사업에서 손을 잡을 수 있다. 이 경우 삼성SDI가 LG화학, SK이노베이션을 제치고 현대차 전기차 사업의 최대 협력사가 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현대차와 삼성은 단순한 기술 시연을 위한 행사라고 선을 그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신기술 현황 등을 공유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의 전고체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안정화돼 있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중 하나"라며 "모빌리티 분야에서의 혁신을 위해 양사 간 협력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연선옥 기자(acto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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