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경쟁 치열했던 올해 과학계, 코로나 연구에 가려진 성과들
네이처, 올해 코로나 외 다른 과학 사건들 선정
UAE·中·美, 화성 탐사선 연이어 발사… 2월 궤도 진입
구글 딥마인드, 세계 최고 성능 ‘단백질 구조 예측’ AI 개발
日 소행성 토양 채취 후 지구 귀환·美 상온 초전도체 구현
차별 저항 ‘과기 셧다운’·탄소중립·바이든 당선 등 사건도
지난 7월 화성으로 발사된 세 탐사선. 왼쪽부터 UAE의 아말, 중국의 톈원 1호, 미국의 퍼서비어런스를 실은 로켓들./유튜브 캡처(왼쪽)·로이터 연합뉴스(가운데·오른쪽) |
올해 전세계 과학계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성질을 연구하고 박멸하기 위한 연구에 과학계가 몰두했다.
코로나19 대응에 시선이 집중되는 사이에도, 과학계에서는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담대한 도전과 성과가 있었다. 화성 탐사선 발사, 구글 딥마인드의 분자생물학 인공지능(AI) 개발, 상온 초전도체 구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매년 ‘올해의 과학 사건들’을 선정해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성과들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걸 감안해 ‘올해 코로나 외 다른 과학 사건들(2020 beyond COVID: the other science events that shaped the year)’을 지난 15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네이처가 꼽은 사건들 중 새로운 과학적 진척·발견이나 기술 개발 등의 성과는 5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 성과는 지난 7월 연이어 이뤄진 주요국들의 화성 탐사선 발사다. 그간 화성 탐사선은 미국·유럽연합(EU)·러시아·인도만이 발사에 성공했었다. 그중 지상 착륙 능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연이어 독자적인 탐사선과 발사체(로켓)를 개발하고 발사에 성공해 본격적인 화성 탐사 경쟁 시대를 열었다.
지난 7월 20일 아랍에미리트(UAE)는 아랍권 최초의 화성 궤도선 아말(Amal·아랍어로 ‘희망’)을 발사했다. 일본 로켓 ‘H-2A’에 실려 발사된 만큼 일본의 기술력 역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중국도 같은 달 23일 ‘톈원 1호’ 발사에 성공했다. 2011년 자국 첫 화성 탐사선 ‘잉훠 1호’ 발사에 실패한 바 있는 중국은 이번에 독자 개발한 ‘창정 5호’를 로켓으로 사용했다. 톈원 1호는 궤도선과 이로부터 분리되는 지상 착륙선으로 구성되며, 착륙선은 탐사차량(로버)을 탑재했다. 먼저 출발한 UAE보다도 중국이 미국의 적수로 평가받는 이유다.
같은 달 30일 미국도 자국 5번째 화성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를 쏘아올렸다. 미국은 화성 탐사 분야 선두답게 궤도선이나 커다란 착륙선 없이 로버를 담은 캡슐만 화성에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세 국가 탐사선 모두 내년 2월 화성 궤도에 진입한다.
미국 탐사선 ‘오시리스 렉스’가 소행성 베누의 표면 토양을 채취하는 모습./NASA 홈페이지 캡처 |
두번째 성과는 일본·중국·미국의 외계 토양 채취 성공이다. 소행성과 달의 토양을 지구로 가져오는 임무는 태양계 형성의 비밀을 밝히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일본은 지난 2014년 탐사선 ‘하야부사 2호’를 소행성 ‘류구’에 보냈다. 2018년부터 16개월간 류구 주변을 맴돌다가 착륙해 토양을 채취, 지난 6일 지구로 무사귀환했다. 세계 최초로 소행성 표면이 아닌 심층 토양을 채취했다. 미국도 지난 10월 탐사선 ‘오시리스 렉스’로 소행성 ‘베누’ 지표면과 접촉, 토양 채취에 성공했다. 2023년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중국은 지난 17일 달 토양을 실은 탐사선 ‘창어 5호’를 무사귀환시켰다. 달 토양 채취 후 귀환에 성공한 나라는 구소련에 이어 중국이 두번째다. 중국은 후속 탐사선인 창어 6호, 7호, 8호 발사 계획을 밝히며 강대국간의 달 진출 경쟁에 힘을 쏟고 있다.
달에 착륙한 중국의 창어 5호./연합뉴스 |
세번째 성과는 단백질 구조 분석 기술 개발이다. 2016년 이세돌 9단을 이겼던 바둑 AI ‘알파고(Alphago)’ 개발사 구글 딥마인드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유전자 염기서열을 보고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 ‘알파폴드(Alphafold)’의 새로운 성과를 소개했다.
몸속에서 다양한 기능을 갖는 단백질은 유전자 염기서열을 설계도 삼아 만들어진다. 설계도를 보면 만들어질 단백질의 구조를 알 수 있고, 구조를 알면 기능도 알 수 있다. 알파폴드는 인간 과학자를 대신해 설계도를 보고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예측해주는 AI다.
단백질 구조./구글 딥마인드 홈페이지 캡처 |
이같은 AI는 분석 속도는 인간보다 빠르지만 정확도가 낮아 실제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전세계 AI 대상 단백질 구조 예측 능력 평가 대회 ‘CASP’에서 알파폴드는 인간 대비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여 대회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AI가 단백질 구조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며 "신약 발굴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AI뿐만 아니라 단백질 구조 관찰용 현미경의 해상도도 원자 1개를 구별해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네이처는 지난 7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팀이 ‘저온전자현미경’의 해상도를 사상 최고 성능인 원자 1개 수준 해상도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네번째 성과는 상온 초전도체 구현이다.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0이 돼 전력 손실 없이 전기가 흐를 수 있는 물질이다. 발전소에서 도시로 송전하는 과정에서 도선의 전기저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력 손실이 생기는데, 초전도체가 상용화된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1911년 첫 초전도체 발견 이래 섭씨 영하 수십도의 극저온에서만 구현 가능해 상용화에 여전히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극저온 환경에서 구현되는 기존의 초전도 현상. 물질이 초전도체가 되면 전기저항이 0이 돼 내부에서 전기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다. 외부 자기장을 밀어내는 ‘마이스너 효과’도 발생해 물질이 공중에 뜨게 된다./네이처 캡처 |
지난 10월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팀은 영상 15도의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처음으로 구현했다. 다만 260만기압의 초고압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물질 내부 구조가 심하게 압축돼 개발자조차도 구조 분석을 못 하고 있다. 상온 초전도체 상용화까지 좀더 시일이 걸리겠지만, 연구팀은 학계의 연구 참여 확대의 계기가 마련돼,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섯번째 성과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물질 상태의 구현이다. 1924년 인도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나스 보스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섭씨 영하 273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보손’이라고 불리는 특정 종류의 물질들은 마찰, 점성, 움직임 없이 고밀도로 뭉치고 독특한 양자역학적 성질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후 3명의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이 상태 구현에 성공해 200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만, 지구에서는 중력과 온도의 영향으로 정밀한 구현에 한계가 있었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연구팀은 중력이 거의 없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극저온 환경을 만들어 기존보다 정교하게 이 상태 구현에 성공했다. 실험결과는 양자역학 분야 연구에 진척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도 지난 17일(현지시각) ‘올해 과학계 10대 성과(2020 Breakthrough of the year)’를 발표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제외하면 네이처와 마찬가지로 상온 초전도체 구현, 알파폴드 개발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과학기술 셧다운 운동을 설명하는 그림./사이언스 캡처 |
네이처는 성과 외에도 재난이나 정치적 사건도 올해의 과학계 사건들에 포함했다. 기후변화 가속화의 징후로 전세계 대형산불과 대규모 북극 해빙 현상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과학계 내부의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수천명의 과학자들이 지난 6월 10일(현지시각) 하루동안 연구를 전면 중단하는 ‘과학기술 셧다운(Shut-down STEM)’ 운동을 펼쳤다. EU·일본·중국 등은 올해 2050~206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 조 바이든의 미국 대선 승리와 오는 31일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과도기간 종료로 향후 글로벌 과학 정책의 변화가 예상된다.
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