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더이상… 직원들의 천국이 아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직원 4명을 해고했다. 구글이 밝힌 표면상 이유는 "회사 내부 데이터 보안 정책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동안 회사와 대립해왔기 때문에 해고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고가 발표된 직후 구글 직원 200여 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사측은 불법 노조 탄압과 보복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는 모토로 유명했던 구글이 내부 직원들에게서 사악한 행위를 중단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1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곳'이라는 타이틀을 지켜왔던 실리콘밸리의 IT(정보기술) 기업들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구글·페이스북·애플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은 막대한 보상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확보, 직원들과 협업을 통한 자기 계발 등을 장점으로 내세워 인재들을 흡수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노사 갈등, 미국·유럽연합(EU)의 반(反)독점 조사 같은 내외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 다 뺏겨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10일 세계 기업 평가 업체 글라스도어가 발표한 '2020년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다. 구글·페이스북·애플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은 지난 10년 이래 처음으로 상위 10위 안에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구글은 2015년 1위를 비롯해 8년 연속 상위 10위 안에 들었지만, 이번에는 11위로 떨어졌다. 2011년·2013년·2018년 등 3차례나 1위를 차지한 세계 최대 소셜 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은 23위로 추락했다. 세계 최대 직장인 소셜미디어 업체 링크트인은 6위에서 12위로 하락했다. 2012년 10위였던 애플은 84위를 기록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이 사라진 자리는 미국 동부에 있는 기업들이 채웠다. 1위를 차지한 허브스팟은 하버드대가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기업이고, 2위인 베인앤드컴퍼니는 보스턴에 본사를 둔 국제 컨설팅 업체다. IT 업계에 비해 기업 문화와 처우가 좋지 않다고 평가받는 유통·항공 업계 기업들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제쳤다. LA 인근 어바인에 본사를 둔 햄버거 체인 업체 인앤아웃(4위),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저비용 항공 업체 사우스웨스트항공(10위)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공룡이 된 실리콘밸리 기업들
실리콘밸리 기업이 줄줄이 밀린 배경엔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다 있다.
내부적으로는 사내 성차별 문제, 미·중 정부와 협력 문제 등을 둘러싸고 구글·페이스북·MS 등에서 노사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반(反)이민 정책에 구글·MS·아마존 등의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원들은 사측에 "미국 정부와 협력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구글이 성추문에 휩싸인 고위 임원에게 거액 퇴직금을 지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집단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관료화된 문화, 낮아진 임금 상승률 등으로 직원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애플은 직원 수가 13만명, 구글은 11만명, 페이스북은 4만명이 넘는다. 더 이상 10년 전 스타트업이 아니다. 과거에 입사한 직원들은 거액의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나 조기 승진 등의 혜택을 봤지만, 최근 입사한 직원들은 이런 혜택은 구경도 어렵다. 임금 상승률도 다른 지역보다 낮다. 미국의 구인 정보 업체 하이어드에 따르면 작년 실리콘밸리 지역의 테크 분야 임금 상승률은 2%였다. 미국 보스턴은 9%, 오스틴 지역은 6% 수준 상승률을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외부적으로는 미국·EU 등 세계 주요 국가 정부들이 반독점 조사의 칼날을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에 들이대는 것도 리스크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들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데이터 반독점 여부를 조사 중이다. EU 역시 구글에 수차례에 걸쳐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데이터 수집 관행에 대해 또 조사를 진행 중이고, 페이스북에 대해서도 개인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계속 묻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실리콘밸리 밖으로 나가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페이스북은 뉴욕에 약 28만㎡ 부지를 확보해 직원 1만4000여 명을 근무하게 할 계획이다. 구글도 작년 뉴욕 맨해튼의 첼시마켓 인근에 24억달러를 들여 건물을 샀고, 맨해튼 남부에서 10억달러를 주고 건물용 땅을 임차하기로 했다. 자율주행차·헬스케어 등 미래 먹을거리 분야는 일찌감치 거점을 실리콘밸리가 아닌 피츠버그·피닉스·보스턴 등으로 옮긴 상태다.
강동철 기자(charley@chosun.com);최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