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엔 연고, 반창고? '전자약 밴드' 붙이면 끝
미국 위스콘신대의 슈동 왕 교수진은 지난해 말 사람의 상처가 아무는 데 걸리는 시간을 4분의 1로 줄인 기술을 발표했다. 수술 방식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신약을 투여하지도 않았다. 단지 수술 부위에 약한 전류를 흘리는 전자약 밴드만 새로 붙였다. 전류는 세포 성장을 촉진하고 조직에 해로운 활성 산소를 억제했다.
전자약 밴드는 '전자약(electroceutical)'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전자약은 전자(electronic)와 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 이미 신경을 자극해 비만이나 관절염을 치료하는 전자약은 나와 있지만, 전자약 밴드는 복잡한 시술이나 장비가 필요 없이 붙이기만 하면 상처를 진단하고 전기 자극이나 약물로 치료까지 한다는 점에서 전자약 시대를 앞당기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처 봉합 12일에서 3일로 단축
왕 교수는 지난해 말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ACS 나노'에 상처 치료용 전자약을 이용한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프라이팬 코팅제로 쓰이는 테플론과 구리로 덮인 플라스틱이 이중 층을 이룬 밴드를 개발했다. 환자가 움직이면 밴드의 두 층이 서로 마찰하면서 전기가 발생한다. 쥐 실험에서 밴드에서 발생한 마찰전기는 수술 절개 부위가 아무는 시간을 12일에서 3일로 줄였다. 연구진은 앞으로 인체와 유사한 돼지 피부를 대상으로 전자약 밴드의 효능을 확인할 계획이다. 이르면 2~3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찬단 센 교수가 상처 부위에 붙여 세균 감염을 막는 전자약 밴드를 들고 있다. /미 오하이오 주립대 |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찬단 센 교수팀은 상처 부위의 세균 감염을 막는 전자약 밴드를 개발했다. 상처가 나면 세균들이 대거 증식하면서 바이오필름이라는 세균막을 형성한다. 세균막은 항생제나 인체 면역세포가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 연구진은 밴드 표면에 은과 아연을 인쇄해 땀이나 피가 있으면 미세한 전류가 흐르도록 했다.
이러면 세균들이 주고받는 전기신호에 혼란이 와 바이오필름이 생성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화상을 입은 돼지 피부에 세균을 감염시켰다. 2시간 후 밴드를 붙이자 바이오필름이 생기지 않았다. 감염 7일 후에 밴드를 붙여도 돼지의 백혈구가 세균을 공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화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미국 터프츠대의 사미어 손쿠세일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스몰'에 병원에 자주 가지 못하는 만성 감염 환자를 위한 진단·치료 겸용 전자약 밴드를 발표했다. 두께가 3㎜에 불과한 밴드는 센서와 칩, 그리고 약통으로 구성된다. 세균에 감염되면 상처가 알칼리 상태로 변한다. 온도도 올라간다. 센서는 상처 부위의 산성도와 체온을 측정해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으로 보낸다. 칩은 세균 감염이라고 판단되면 약을 담고 있는 젤리를 가열해 약물을 방출시킨다. 밴드가 상처 부위를 보호하는 수동적 기능에서 벗어나 진단과 치료까지 하는 적극적인 전자약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
미국 연방정부 건강보험 수혜자의 15%는 한 가지 이상의 만성 상처나 감염으로 고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의료비만 연간 280억달러(약 31조4580억원)로 추정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제때 병원을 찾지 않아 작은 상처가 인체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자약 밴드는 이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비만·코골이·관절염 치료 전자약도 나와
밴드형이 아닌 전자약도 이미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다.
우선 말초신경에 전기자극을 줘 질병을 치료하는 전자약이 있다. 미국에서는 위 신경에 전기자극을 줘 비만을 치료하는 전자약은 FDA(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았으며, 기도(氣道) 신경을 자극해 수면 무호흡증(코골이)을 치료하는 전자약도 나왔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크론병(만성 염증성 장질환)같이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치료도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세계 최초로 빛으로 상처를 치료하는 전자약이 개발됐다. 최경철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와 박경찬 서울대 분당병원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테크놀러지’에 두께가 1㎜도 안 되는 밴드에 발광다이오드(OLED)와 배터리를 집어넣은 광(光)치료 전자약을 발표했다. 실험 결과 빛을 내는 밴드는 세포 증식과 이동을 각각 58%, 46% 높여 상처가 빠르게 아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최 교수는 “광치료 밴드는 무게가 1g 이하로 가볍고 유연해 피부에 부착한 채 일상생활을 하면서 고효율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 공로로 지난해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IMID)에서 제15회 머크어워드를 수상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