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더블로 가" 외치던 실리콘밸리, 버블이 꺼지고있다
'470억달러(약 56조5000억원)'.
지난 한 달간 증발해버린 미국의 양대(兩大)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위워크와 쥴랩스의 기업 가치다. 세계 최대 사무실 공유 업체(위워크), 지구촌 가향 전자담배 열풍의 주역(쥴랩스)답게 전 세계에서 막대한 자금을 빨아들이던 두 업체의 몸값이 곤두박질쳤다. 혁신이라는 간판에 가려졌던 수익성과 기업 윤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몸값이 치솟던 두 업체는 글로벌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업계에 D(Devaluation·평가 절하)의 공포를 확산하는 진원지로 전락하고 있다. 세계 기술·산업 혁신을 주도해왔던 글로벌 유니콘·스타트업 업계가 '버블(거품) 붕괴'라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한 것이다.
미·중 대표 스타트업들 D의 공포 직면
D의 공포에 휩싸인 기업들의 공통점은 수익성 악화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위워크의 사례가 전형적이다. 위워크는 올해 미국 증시에 상장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대어(大魚)로 꼽혔다. 기업 가치는 470억달러로 치솟았다. 하지만 지난 8월 상장 서류를 공개한 직후 거품이 걷히기 시작했다. 위워크의 올 상반기 성적표는 매출 15억3000만달러에 영업손실 13억7000만달러였다. 매출 원가와 판매·관리 비용이 사실상 매출의 2배로,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였다. 창업자 애덤 노이만의 방만하고 비윤리적인 경영에 대한 비판도 불거졌다. 노이만은 지난 7월 회사 지분을 나 홀로 매각해 7억달러의 차익을 남긴 사실이 드러났다. 최고급 개인 제트전용기, 벤츠의 최고급 승용차 마이바흐를 개인용으로 몰고 다니고 마리화나 중독자라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는 결국 투자자, 이사회로부터 쫓겨났고 위워크는 30일(이하 현지 시각) 상장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위워크의 기업 가치는 100억달러 남짓으로 폭락했다.
/그래픽=이철원 |
담배 업계에 '혁신 열풍'을 불러온 쥴랩스는 청소년 흡연·유해성 논란에 무너졌다. 애연가들은 냄새가 없고 휴대성이 편리한 전자담배 '쥴'에 열광했지만 미국 뉴욕주·미시간주(州) 등 주정부들은 쥴의 판매를 잇따라 금지했다. 월마트·코스트코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도 줄줄이 퇴출당하고 있다. 쥴랩스의 케빈 번스 CEO는 지난달 25일 청소년 흡연 문제 등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회사의 기업 가치는 500억달러 수준에서 400억달러로 내려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리콘밸리의 미국 기업들과 함께 지구촌 스타트업 업계를 이끌어왔던 중국 기업들도 잇따라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당초 올해 상장할 계획이었지만,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해외 시장 진출에 실패한 데다 작년 발생한 승객 피살 사건으로 인한 안전 문제, 대규모 적자가 겹치면서 성장세가 완전히 꺾였기 때문이다. 기업 가치 760억달러로 몸값 세계 1위 유니콘인 동영상·소셜 미디어 업체 바이트댄스는 미국 정부의 견제에 직면했다.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앱 '틱톡'은 미국 청소년들의 개인 정보를 탈취한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로부터 57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문어발식 확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바이트댄스는 최근 해외 뉴스 앱인 '탑버즈'를 매물로 내놓고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가상 화폐 전용 칩셋을 만드는 비트메인테크놀로지도 가상 화폐 시장의 약세로 인해 기업 가치가 30억달러 급락했다.
기업 가치 판가름 짓는 것은 수익성
상장에 성공해 유니콘 꼬리표를 뗀 우버·리프트 등 차량 공유 업체, 슬랙·샤오미 등 IT 스타트업들의 주가도 예외 없이 하향 곡선이다. 한국에선 최초의 '테슬라 상장'(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 기업 카페24, 인공지능(AI) 기반 번역 서비스 업체인 플리토 등도 최근 주가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도 조(兆) 단위가 넘는 적자를 내며 고전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에서 작년 20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액면상 기업 가치는 90억달러까지 치솟았지만, 대기업 계열 유통 업체들이 앞다퉈 전자상거래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한 벤처 투자 업체 대표는 "최근 수년간 공유경제·전자상거래 기업들이 막대한 외부 자금을 투자받아 이를 쏟아붓는 돈 싸움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이런 방식은 자칫 자금 유입이 막힐 경우 금방 무너질 우려가 크다"며 "현 시장 상황은 거품이 낄 대로 낀 상태"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와 투자 업계는 "결국엔 수익성을 갖춘 견실한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분석이 새삼 힘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의 기업용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업체 줌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십 명이 동시에 회의할 수 있고, 스마트폰·태블릿PC·노트북 등에서 끊김 없이 쓸 수 있는 화상회의 기술을 내세운 줌은 작년에만 매출 3억3000만달러, 순이익 760만달러를 기록했다. 줌은 상장 당시 공모가가 36달러였지만, 현재 주가는 그 2배가 넘는 76.2달러로 뛰어올랐다.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2017년 9300만달러의 이익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비앤비는 자체 임대료·투자 비용 없이 집주인들을 모집해 빈방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로 수익성을 확보했다.
강동철 기자(charle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