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 속에 뛰어드는 이유" 노숙자에서 英최고위 소방대장 된 이 사람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15살 노숙자 소녀, 18살에 첫 여성 소방대원 되다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타인 구하기로"
"소방관의 희생과 용기는 슈퍼 파워 아닌 공감의 힘"
英 최고위 소방대장이자 심리학 박사, 사브리나 코언
생사의 압박감 속에 내리는 최선의 의사결정법 고안
"남편도 소방관, 어린 딸은 부모 자랑스러워 해"
런던 소방청 경무관을 거쳐 현재 웨스트서식스 소방대장으로 재직중인 사브리나 코언-헤턴 박사(Sapina Cohen-Hatton, 38세). 158cm 작은 거인이 영국 최고위 여성 소방관이다./사진=북하우스 |
‘"맷, 퇴거 명령이 내려진 사실을 알고 있나?" 아이가 우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다… "이 아기가 죽으면 저도 같이 죽습니다. 누군가의 딸이에요. 제게도 같은 나이의 딸이…"’-사브리나 코엔 ‘소방관의 선택' 중에서.
재난은 예고 없이 온다. 소방서 비상종이 비명을 지르면, 소방대원들은 간이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봉을 타고 내려가 순식간에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한다. 단 몇 초에도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방화복, 헬멧을 쓰고 2인 1조가 된 소방대원들은 불길이 치솟는 건물로 주저없이 뛰어든다.
한 명은 관창을 잡고 한 명은 호스를 당기며. 연기와 화기로 보이지 않는 앞을 더듬어 가며.
‘구해달라'는 절규, 뛰어내리는 사람들, 흥분한 구경꾼들로 현장은 아수라다.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서는 소방관을 흥분시킨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초인적인 공감력에 그들의 가슴뼈는 후진을 모른다. 부족한 공기통을 메고, 출구도 알 수 없는 현장을 향해 다가선다.
사브리나 코언-헤턴(이하 사브리나)은 영국의 첫 여성 소방관이다. 20년간의 현장 기록을 담은 그의 책 ‘소방관의 선택'에는 재난 현장의 긴박감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사이렌 소리에 격하게 반응하는 신체 아드레날린, 불길보다 더 뜨거운 동료애,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기를 위해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일상적 헌신,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꺼져가는 정신력까지. 때로는 테러 사건 등 긴급 재난에서는 ‘누굴 살리고 포기할 것인가’ 힘겨운 결정도 내려야 한다.
사브리나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높은 소방공무원(웨스트서식스 소방대장)이자 동시에 심리학 박사다. 155㎝, 48kg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투지로 현재 영국은 물론 여러 나라의 긴급 구조 시스템에서 의사결정에 관한 혁신적인 기법인 ‘결정 제어 프로세스'를 전파하고 있다.
그는 15세에 노숙자가 됐으며, 거리를 떠돌다 18세부터 소방대원으로 활동했다. 카디프 대학에서 ‘압박감 속에서의 의사결정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너무 많은 소방관이 매년 목숨을 잃는 것이 안타까워, 행동심리학 공부를 병행했다는 이 의지의 여인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소방관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며 ‘누군가를 구하는 용기는 슈퍼파워가 아니라 공감의 힘’이라고 했다.
-왜 소방관이 됐나?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구해주고 싶었다. 근처에는 언젠가 꼭 일하고 싶은 소방서도 있었고(웃음)."
너무 많은 소방관들이 매년 목숨을 잃는다. 사브리나는 그들의 안전을 높이기 위한 의사 결정을 연구했다./픽사베이 |
-청소년기 노숙자 생활이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나?
"물론. 내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건물 밖으로 모든 사람이 뛰쳐나갈 때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집을 나와야 했다. 2년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다. 비 오는 거리, 다리 밑에서 덜덜 떨면서 자다가 오줌 세례를 받기도 했다. 거친 노숙자의 공격에 밤마다 죽기살기로 도망 다녔다. 그 어느 곳도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17세가 되기 전에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 일곱 번이나 참석했다. 비참한 나날이었다. 날마다 가장 큰 야심은 ‘빅이슈(노숙자 자활잡지)’를 팔아서 그날 먹을 음식을 사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나는 안다. 추워서 떠는 것이 어떤 건지,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취약함을 뼛속까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거기서 온 힘을 다해 빠져나왔다."
-주변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나이가 너무 어려 복지 수당을 받을 수가 없었다. 2주일에 15파운드씩 받는 비상 수당이 다였다. 이미 노숙자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저소득층 임대 주택 대상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내가 잡지를 팔던 뉴포트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아서 매상을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1시간 떨어진 민머스라는 타운으로 가서 잡지를 팔기 시작했다."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꿨군!
"다행히 민머스에서는 ‘빅이슈’를 파는 사람이 나 혼자였다. 새벽 6시에 버스를 타고 가서 저녁 7시까지 잡지를 다 팔 때까지 거기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상황 인식도."
그는 마침내 사우스 웨일스 밸리에 작은 원룸을 얻을 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머리 위에 지붕이 생겼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이 투지가 강한 소녀에겐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상상하는 긍정 정서.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는 의지력은 사브리나 코언이 가진 놀라운 정신 자원이었다.
"소방관은 인생 최악의 날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매일을 인생 최악의 날이라고 느끼며 살았다. 내 끔찍한 경험과 공감력이 소방관 일에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때 노숙 생활을 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브리나. 그녀는 노숙자 자활잡지 ‘빅이슈'의 명예 홍보대사다. |
소방관이 되고 나서는 엄청난 성차별을 겪었다. ‘너는 고추가 없어 승진을 못 할 것’이라고 조소하는 상사에게 더 큰 목소리로 쏘아붙이곤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한계를 설정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고 했다. 일을 사랑했고, 점차 동료들에게 인정받았고, 함께 일하던 소방대원 마이크와 결혼했다.
-현장에 출동할 때 두렵지 않나?
"늘 두려웠다. 두려움을 모르면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친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위험이 무엇인지 이해했다는 뜻이다. 소방대원들은 두렵지만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다."
-가장 위험한 현장은 어디였나? 클럽, 터널, 좁은 주택가, 공장, 맨홀?
"사실 출동하는 현장은 거의 모두 극한 상황이다. 그래서 위험에 무뎌지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 평범해 보이던 곳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현장은 소방차 한 대만 출동한 작은 사고 현장이었다. 먼저 나간 대원이 맨홀 폭발로 큰 부상을 당했고, 그가 내 약혼자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상태에서, 추가 출동을 해야 했다.
그 4분 37초는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방화 부츠를 신고 멜빵을 걸치면서도 사람들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영화에서 카메라가 한 사람의 주위를 빙빙 도는 그런 느낌. 갑자기 내가 있던 일상의 우주가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원으로 출동하면서 동시에 피해자 가족의 마음이 됐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마이크가 아니었지만,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압박감이 큰 사건의 경우 팀원들 간의 신뢰가 재난 대응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사브리나 코언은 말한다. |
통계적으로 부상을 당하는 소방관은 1년에 수천 명에 달한다. 2년간의 노숙 생활을 ‘소방관'이라는 꿈을 이룬 자원으로 삼았듯, 4분 37초의 혼돈의 시간을 겪은 후 사브리나는 카디프 대학 심리학과에 들어가 ‘압박감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법'을 연구했다. 그는 소방관들이 자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확률을 높이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
-의외로 재난 현장에서 지휘관들이 ‘의사 결정 마비 현상’을 자주 겪는다고. 무슨 뜻인가?
"뭔가 잘못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압박 때문에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상태다. 인지 마비 현상과 비슷하다. 회피하기 위해 지휘권을 내던지기도 한다. 대통령, 군인, 의사, CEO… 어떤 직업, 어떤 상황,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긴급 구조 상황에서는 인명 손실이 커진다."
-소방 헬멧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검토한 결과, 소방관들이 사고현장에서 이성보다 본능에 따라 행동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화재는 대단히 큰 스트레스를 유발해서 뇌의 정보 처리 용량을 줄이고 결정을 방해한다. 연구 결과, 현장의 지휘관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지금, 여기’에만 집중했다. 30분 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예측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고안한 사고 테크닉이 ‘결정 제어 프로세스’다. 행동에 옮기기 전 자기가 내린 결정을 신속하게 재확인하는 방법이다."
뜨거운 화염의 기록과 냉정한 의사결정법이 조화를 이룬 책 ‘소방관의 선택'. |
10년간 뇌를 연구하며 사브리나 코언이 고안한 ‘결정 제어 프로세스(Decision Control Process)’는 직관과 이성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사고 기법이다. 방법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빠르게 던져보는 것. 첫 번째 질문은 목표 확인. 이 결정으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 질문은 예측. 이 결정으로 펼쳐지는 구체적 상황은? 세 번째 질문은 비교. 이 결정이 감수할 위험과 얻는 혜택은?
이런 과정은 목표를 재확인하고, 상황인식력을 구체화하고, 위험과 이득을 저울질해서 더 나은 결정을 유도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효과는 놀랍다. 긴급구조 부문에서 ‘결정 제어 프로세스’를 적용한 지휘관은 직관에 의존해 급하게 결정한 지휘관에 비해 5배나 높은 상황인식력을 보였다. 더군다나 3가지 절차를 거쳐도 의사결정 시간은 지연되지 않았다.
이 사고법은 현재 영국은 물론 전 세계 긴급 구조 현장에서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긴급 상황에서 ‘누구를 살리고 포기할 것인가’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덜 나쁜’ 선택지를 찾는 것이다. 모두를 살리지는 못해도 최대 다수의 생명을 구한다는 게 기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린 결정은 죽을 때까지 못 잊는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재난 지휘관은 권위보다 신뢰를 먼저 확보하라고 했는데.
"간혹 효율적인 지휘를 한답시고 권위로 윽박지르는 지휘관이 있다. 그렇게 얻는 것은 침묵이다. 고함과 모욕을 참아가며 일을 잘할 사람은 없다. 팀원에게 의문을 제기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위급할수록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기민한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 대원들의 신뢰와 공감을 얻어야 한다. 항상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어떤 정보도 아닌 지휘관의 평판이다."
서로의 장비, 공기통, 심리 상태까지 나눠지며 한 몸처럼 움직이는 소방관들. 서로가 서로의 생명줄이다. |
-동료는 어떤 존재인가? 엄청난 장비를 메고 불 속으로 함께 뛰어들 때는 어떤 기분인가?
"살기 위해 우리는 동료를 완전히 믿고 의지한다. 화상을 입을까 장갑으로 피부를 덮어주고 길을 내주고 끌고 나온다. 위험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함께 일할 때면 동료의 손에 자기 목숨을 맡긴다.
게다가 우리는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정신 질환을 앓을 확률은 높지만 도움을 청하긴 어렵다. 타인을 구해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강해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달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 가장 먼저 눈치채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도 동료다."
-많은 소방대원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이 가장 괴로운 감정인가?
"죄책감보다 더한 건 상실에 대한 감각이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 ‘사랑하는 이가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마음이 어떨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 상실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공감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글쎄. 재난 현장이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어 조바심치는 일종의 흥분감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내 동료들은 연민과 인정이 넘쳐서 타인의 고통을 못 참는다. 불길을 마다하지 않고, 짙은 연기를 참아내고, 발길을 돌리라는 본능에 저항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된다. 극한 상황일수록 공감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우리는 임무 완수 후 출구를 찾아 살아나갈 거라는 믿음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다."
현재 그녀의 임무는 소방차 11대이상이 출동해야 하는 사건을 지휘하는 일이다. |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공감이야말로 우리가 임무를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그러기 위해선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 무엇보다 자신을 다양함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수다. 소방관은 팀으로 일하고, 가장 좋은 팀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영국에서 소방관의 직업적 위상은 높은 편인가? 한국은 얼마 전에야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됐다.
"영국의 소방관은 좋은 조건과 평판을 누린다. 아쉬운 건 소방관은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잠재력 있는 보통 청년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는 최고 중의 최고를 원한다. 그리고 재난 현장에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의지하는 쪽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침착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남편도 소방대원인데… 가족이 다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 심리적으로 버겁지 않은가?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가족이다. 내 가까운 사람이 어딘가에서 곤경에 빠진다면, 그들을 구조해줄 누군가가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삶이 정말 깨어지기 쉽다는 거다.
소방관 일을 하면서 내 삶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깊게 고마워할 줄 알게 됐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직업이다. 남편 마이크도 소방관이라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된다. 고된 현장에서 돌아온 날이면 우리는 함께 안도하고 차를 타주고 따스한 말을 건네준다."
-아이는 이런 환경을 어떻게 느끼나?
"내 딸 가브리엘라는 부모가 다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있다.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을 딸아이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브리나는 약 20년 동안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웨스트민스터 테러 공격, 홀본 지하 터널 화재 등 여러 대형 사건을 지휘했다. |
-소방관으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굳이 꼽아야 한다면 우리 연구팀이 의사 결정에 관한 연구로 생명과학 연구 위원회에서 과학상을 탔을 때다. 제복을 입고 사랑하는 소방대와 과학계를 대표해서 소방관들의 안전을 향상하는 연구로 상을 받다니, 감격스러웠다."
-지금도 호출 전화가 오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구조 의욕이 일어난다(웃음). 요즘은 호출기가 울리면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목욕탕으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두세 번 깊이 숨을 들이켜서 아드레날린에 반응한 몸을 안정시킨다. 그다음 펜을 들고 앉아서 제어 센터에 전화해서 지휘를 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숨을 돌리고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테러 사건, 핀스베리 공원 테러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나는 상황조정실에서 지휘했다."
-당신이 고안한 ‘의사 결정의 기술’을 우리가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화재 현장에서든 아니든 나는 선택의 순간엔 항상 ‘결정 제어 프로세스’를 적용한다. 작은 선택이라 해도 더 큰 그림을 그려보는 습관을 들이는 거다. ‘지금,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행동의 파급효과를 떠올려보라.
1 목표 점검 2 행동 예측 3 혜택과 위험 비교. 가령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더 먹고 싶을 때. 내 목표는 체중 감량이고, 저걸 먹으면 1시간을 뛰어야 한다는 예측이 나온다. 먹는 혜택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나, 자문해보면 케이크가 별 매력이 없어 보인다(웃음)."
그녀는 긴급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과 지휘 기술에 관한 연구로 카디프 대학의 ‘심사위원 우수연구상'과 미국심리학회의 ‘신진연구자상'을 받았다. |
-마지막으로 ‘소방관이자 신경과학자인' 당신이 평범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가치는?
"나는 20년간 불길 속에서 일하고, 10년간 압박당한 뇌를 연구했다. 결론은 소방관도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도 모두 같은 조건의 인간이라는 거다. 약하면서 동시에 강하다. 두려우면서도 용기를 내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나는 사람들이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의 의기양양한 겉모습이 아니라 제복 뒤의 인간적인 부분을 더 많이 보길 바란다. 소방관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여러분처럼 동료애, 공감, 침착함 같은 정신 자원을 갖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