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오래 버텼다, 잘 섞었다, 이날치가 되었다" 장영규
3억뷰 '조선의 힙' 이날치 밴드의 비밀은 탁월한 협업
‘범 내려온다'로 전 세계 ‘1일1범'의 K흥 퍼뜨린 장영규
"고여서 썩지 않으려면? 새로운 것 섞어야"
"사람이 자원, 우연에 몸을 열고 낯선 취향 반겨야"
"새로운 건 없어, 여러 장르 섞은 동시대성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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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밝았다. 코로나19로 뉴노멀은 모든 세대에게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공정과 투명, 평등과 다양성을 공기처럼 마시고 산다. 위계 없이 진화한 이 탁월한 개인들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리듬과 반복, 협력과 재미다.
바야흐로 타고난 엘리트들이 이끌던 화성의 시대에서 모두가 자기만의 박자를 느끼는 리듬의 시대가 밝았다. 격리된 개인은 루틴을 통해 일상의 리듬을 이어 가려 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는 시즌을 이어가며 반복 재생되며, 기업은 오직 다른 파트너와의 협업에서 재활의 출구를 찾는다.
리듬의 시대엔 메인과 서브의 구분도, 기승전결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평행 우주에서 통합 우주가 된 디지털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며, 서사는 짧은 단위로 반복되고, 비트 단위로 흐르는 음악에 춤을 추듯, 우리는 더 자주 우연과 행운에 몸을 맡긴다.
애매한 독창성보다 똑똑한 다양성, 지루한 오리지널보다 흥겨운 하이브리드에 열광하는 이 시장에서, 이 모든 시대 정신으로 무장한 강력한 그룹이 나타났으니, 바로 이날치다.
BBC라디오는 이날치 밴드를 일컬어 ‘희한하게 익숙하고 아름답게 낯설다'라고 표현했다. 장구와 북, 소리꾼이라는 간결한 판소리 룰을, 두 대의 베이스와 한 대의 드럼, 4명의 소리꾼으로 배열해, 전 세계 3억 명을 춤추게 한 남자, 리듬의 마법사 장영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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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래 버틴 ‘축적의 힘'으로 ‘이날치 밴드'라는 글로벌 잭팟을 터뜨린 남자. 오랜 세월 동안 음악을 하면서도 장영규가 고인 물로 썩지 않은 이유는, 그때그때 여러 장르와 잘 섞여 놀았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에는 늘 탁월한 협업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물과 철이 섞이듯 판소리와 신스팝이 섞이고, 한복과 선글라스가 섞이고, 공예와 그래피티가 섞이고, 막춤과 현대무용이 섞였다. 비빌수록 그 맛과 멋은 더욱 살아났다. 마성의 손맛이었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다양성의 시대, 근본을 유지하면서도 힙한 리듬을 뽑아내는 장영규의 ‘섞임의 철학'을 들어보자.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씽씽밴드, 이날치까지… 놀라움을 만들어내는 최전선에 항상 장영규가 있네요.
"오래 버텨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오래될수록 신선해지는 건 장영규라는 베이스에 새로운 성분이 계속 합쳐져서인 듯합니다. 트렌디함과 완성도를 유지하면서요.
"(수줍게)그런가요? 확실히 오래 하다 보니 뭔가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오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위를 돌아보면 참 궁금했거든요. 왜 한국의 음악 하는 멋진 형들은 다 사라지고 없는 걸까? 계속하면서 멋지게 살아남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달까요."
-데이빗 보위, 롤링스톤즈, 스팅, 보노… 해외에는 60~70대 팝스타들이 근사하게 늙어가지요.
"해외 팝밴드들은 시장이 넓어 하는만큼의 보상을 받아요. 자기 관리하며 음악에 집중하며 나이 들지요. 무슨 일이든 보상이 없으면 꾸준히 하기 힘들거든요. 보상도 없이 오래 하는 사람들을 보고 저희끼리 그래요. "잘 사는 집 애들만 살아남잖아." 하하. 저는 다행히 밴드를 하면서 영화 음악을 동시에 했어요. 경제적으로 버틸만한 구조를 마련한 거죠."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러 음악산업계가 아이돌 그룹과 거대 기획사, K팝 장르로 재편되는 동안 장영규는 영화계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타짜' ‘도둑들' ‘곡성' ‘부산행' 등 영화에 리듬을 입히며 화사하게 역동하는 장영규만의 비빔밥 사운드를 뽑아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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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와의 다양한 협업이 장영규라는 독특한 지형도를 만들어낸 듯합니다.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전략이었나요?
"글쎄요. 저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다른 장르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연극, 무용, 영화, 미술 등 타 장르 사람들을 만나면서 확장성을 갖게 됐달까요. 젊은 시절부터 재질과 성분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며 지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무슨 말인가요?
"제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진 않았어요. 그런데 무용가 안은미, 설치미술 하던 이불, 최정화, 이재용 감독 등을 따라다니면서 함께 놀고 잡일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때 백현진도 함께 놀면서 발전소, 살바 같은 공간에서 희한한 뻘짓이며 퍼포먼스를 했어요. 꼭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다른 파트 사람을 만나 그 속에서 지내다 보니 눈이 뜨이고 귀가 열렸습니다. 그때 쌓였던 성분들이 지금 터져 나오고 있어요."
그가 교류한 아티스트 그룹은 지금도 고급과 플라스틱, 샤머니즘과 클래식, 전위와 뽕짝, 하이(high) 로(low)를 경계 없이 오가며 섞는 기상천외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초기에는 어떤 음악을 했습니까?
"안은미가 저한테 무용 음악을 의뢰하면서 한 첫 말이 "마음대로 섞어봐"였어요. LP 여러 장을 휙 던지면서(웃음). 그때 훈련이 많이 됐죠."
-이날치 밴드의 근본이 거기서 나왔군요.
"당시 무용 음악은 회현동 지하상가의 LP가게 아저씨가 맡았어요. 대충 감각으로 붙여주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저는 더빙할 수 있는 가정용 녹음기가 있었어요. 회현동 아저씨가 그냥 이어붙였다면, 저는 제대로 전문적으로 섞은 거죠. 이를테면 바그너와 김소희의 판소리를 붙이는 식이었어요. 그렇게 섞을 재료를 찾느라 90년대 초중반 음악의 전 장르를 다 찾아들었어요.
월드뮤직, EDM, 클래식… 섞기 시작하면 장르의 구분이 없어져요. 그러면 판소리나 클래식은 저한테 엄격한 장르가 아니라 특이한 재료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간혹 언론에서 이날치 밴드의 음악을 ‘퓨전 국악'이라고 규정하면 전 어색해요(웃음). 이날치의 음악은 얼터너티브 팝이에요. 춤출 수 있는 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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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홍대 인디 신에서 전위적인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를 이끌던 그가 인디를 뛰어넘는 밴드를 하고싶어 해외 시장을 겨냥해 시작한 밴드가 민요 록밴드 씽씽이었다.
펑크, 디스코, 레게, 글램록, 테크노와 어우러져 나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방가르드한 민요 사운드에 홍대 클러버들이 열광했고, 음악 마니아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 공영방송 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초대되면서 글로벌 잭팟이 터졌다.
유튜브 조회 수 600만 뷰에 이르는 이 콘서트 동영상을 소개하며 주최 측은 ‘씽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SsingSsing isn't like any other band I've ever seen or heard.(우리가 보거나 들은 적 있는 그 어떤 밴드와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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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상식을 뒤집으며 완전히 새로운 음악 경험을 선사했던 씽씽은, 그러나 얼마 뒤 해체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재결성에 대한 팬들의 열망이 뜨거운 가운데, 어느 날 이날치가 날아들었다. 더 익숙하고 더 새로운 구성으로. 하이브리드라는 최첨단 선물 보따리를 들고서.
장영규에게 상업성이란 자기 것을 버리고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뻔한 계산’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코어 콘텐츠를 대중도 함께 즐기도록 만드는 ‘고도로 계산된 파격'이었다. 첫 번째 시도는 취향의 마니아들을 겨냥한 난장에 가까운 특이한 쇼였고, 두 번째 시도는 그렇게 새로움에 눈 뜬 대중과 함께 노는 중독적이고 힙한 인터랙티브 놀이였다.
구경하게 한 뒤, 참여하게 했다고나 할까.
-우연인가요? 필연인가요? 장영규의 큰 그림 속에 다 있었던 건가요?
"다 우연이었어요. 씽씽밴드는 2~3년 정도 해외 시장에서 활동할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NPR 타이니데스크쇼에서 터져서 1년 만에 유명세를 탔어요. 그러다 갑자기 깨진 거고요. 그 후 우연히 양정웅 연출가가 수궁가를 재해석한 음악극 ‘드라곤 킹'을 제안했고, 거기서 안은미의 2007년 작 ‘바리' 공연에서 함께했던 소리꾼 안이호를 다시 만났죠. 그때 소리꾼들을 여럿 모아서 이날치를 결성했어요."
초기에 이날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민요 가락에 퀴어 패션을 밀어붙였던 씽씽의 ‘파격'에는 못 미친다는 우려였다. 장영규의 생각은 달랐다. 전통이 고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데 판소리만큼 좋은 장르도 없다는 것.
-확신이 있었나요?
"네. 저는 국악을 대중적인 재료로 보는 훈련이 돼 있어요. 씽씽은 민요고 이날치는 판소리예요. 민요와 판소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민요는 창법도 선율도 정해져 있지만, 판소리는 선율도 규칙도 없어요. 중요한 건 오직 이야기죠. 판소리는 기반이 음악이 아니라 문학이에요. 서사를 자유롭게 전달하면서 나온 기법이 창이에요. 그 특징이 힙합의 랩과 닮았어요. 재밌게 들려주기 위해 리듬을 만들었으니, 저는 밴드를 리듬 위주로 꾸렸지요."
그렇게 두 대의 베이스에 하나의 드럼, 신나게 엇박자로 달리는 네 명의 소리꾼은 전무후무한 ‘김치 웨스턴' 그루브를 만들어냈다. 별주부와 토끼가 간을 두고 벌이는 추격전은 신스팝과 뉴웨이브 리듬을 타고 클럽에서도 댄스 음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밴드 이름은 조선 시대 이름난 명창 이날치에서 따왔다.
이날치는 2019년 5월 이태원에서 ‘들썩들썩 수궁가’로 단독공연을 했고, ‘어류’ ‘토끼' ‘호랑이' ‘자라' 등의 싱글이 포함된 정규 1집 ‘수궁가'를 냈다. 앰비규어스 댄스팀의 흥겨운 춤이 결합된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온라인 공연은 조회 수 1,058만 회, 서울, 부산, 전주 등 전국 도시를 돌며 찍은 ‘Feel the Rhythm of Korea’는 조선의 힙으로 이름을 날리며 3억 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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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되려니 착착 리드미컬하게 진행됐군요!
"정말 우연히 장단이 맞았어요.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가 해체되면서 베이스 치던 정중엽이 조인했고, 씽씽의 드럼 이철희도 그렇고, 소리꾼 안이호도 과거 안은미 무용 공연에서 만났거든요. 저는 오랜 시간 이런저런 활동을 끊임없이 해왔는데, 그 인연들이 한 번에 모인 거죠. 연령 구성도 다채로와서 지금 멤버 7명이 50대, 40대, 30대, 20대에 고르게 분포돼 있어요(웃음)."
-레퍼런스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냥 자라면서 들었던 모든 음악의 영향을 받았어요. 특별히 80년대 팝음악 색채가 많아요. 당시 다들 록을 들었는데 저는 신스팝을 들었어요. 그 리듬이 몸 안에 남아 있어요. 목표가 춤출 수 있는 판소리를 만들자 였어요. 거기에 시장이 있다고 본 거죠."
-외국인들은 3억 뷰가 넘은 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를 ‘강남스타일'처럼 코믹한 움직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더군요.
"전 다르다고 봐요. ‘강남스타일'은 작정하고 B급을 만들어서 센세이셔널이 됐어요. 이날치는 팝인데,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팝밴드 음악으로 이해가 되고 있어요. 춤도 스트릿댄스같지만 자세히 보면 아니에요. 발레와 현대 무용, 전통 움직임이 뒤섞여 있죠. 쉽게 볼 수 있는데 쉽게 따라 할 수는 없어요. 막춤 같지만 구성이 치밀하죠. 재밌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우발적이지 않아요. 그런 지점에서 이날치의 음악과 앰비규어스의 춤은 닮았어요."
-협업에 대해 이야기해보지요. 현대무용그룹인 앰비규어스 댄스팀과는 안무를 맞춰보지도 않고 첫 무대에 올랐다고요.
-이날치의 30초 영상을 보여줬더니 재밌어하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그 팀이 바로 해외 장기 공연을 떠나야 해서 ‘무대에서 만나요!'가 됐어요. 돌아오는 날 함께 무대에 섰는데 무리가 없었어요."
-실제 무대 느낌도 ‘난입'에 가까웠습니다. 갓과 투구, 한복과 트레이닝복, 선글라스… 유머러스한 스타일링에 고도로 절제된 막춤이 판소리 그루브를 쫀득하게 쪼개더군요.
"그 정도로 믿고 가려면 사전에 그 팀의 장점이 뭔지 정확한 판단이 서 있어야 해요. 저는 앰비규어스 팀에 아무런 주문을 안했어요. 그런데 그 팀에서도 한 단원이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아이디어를 냈대요. 김보람 단장이 내키진 않아지만 일단 해봤는데, 그게 또 재밌게 어울렸어요. 우연을 배제하지 않으면 흥미로운 의외성이 나와요. 그래서 제 취향이 아니라도 일단 ‘해보자’고 해요."
이날치 밴드 정규 앨범 1집 ‘수궁가' 커버./오래오 스튜디오 |
한때 백남준과 활동했던 존 케이지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연이 뭘까를 생각했다고 했다. 우연이 발생하는 지점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소중하고 의미 있게 쓰고 있다고.
-‘팝아트' 수준의 뮤직비디오는 ‘오래오 스튜디오’ 팀의 작품이지요? 조금 과장하자면 핑크폴로이드의 ‘더 월' 이후 가장 신선한 비주얼이었습니다.
"서로 어울리는 팀을 만나면 굉장한 시너지가 나요. 오래오는 저희 첫 공연을 보고 포스터를 만들어줬어요. 이날치 음악을 재미있어하길래 모든 노래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달라고 했죠. 돈이 없으니, 돈 안 들이고 아트웍 필름처럼 해달라고요. 하하. 결과적으로 공연을 못 해도 굿즈와 동영상이 끊이지 않고 나오면서 확장성이 커졌어요. 결과물이 좋으면 저는 그게 그들의 것이라고 확실하게 크레딧을 줘요."
-‘Tiger is Coming’ 아트웍도 그렇고, 토끼와 범이 날아다니는 민속적인 팝아트가 이날치를 더 힙하게 만들어줬죠.
"그건 저의 디렉션과는 다른 작업이었어요. 저는 그래픽은 안 좋아해요. 하하. 그런데 그분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또 흐르듯 나온 거죠."
이날치 앰블럼/오래오 스튜디오 |
-사람이든 음악이든 섞을 때 원칙이 있나요? 메인과 서브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인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섞을 재료의 장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요것만 드러나면 된다는 포인트가 있죠. 그래야 서로가 빛나요. 다행히 그 지점을 선택하는 직관이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음악 감독으로 선택당하는 삶을 살다 보니 체득된 능력입니다."
-장영규와 함께 작업하는 협력자들은 다 몰아지경에 빠져서 자기 일처럼, 자기 흥으로 일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더 잘하고 싶어서 즐거운 경쟁을 합니다. 파트너를 탁월한 협업자로 만드는 비결이 있나요?
"제가 2013년에 일민미술관에서 ‘탁월한 협업자'라는 전시를 했어요(웃음). 저는 밴드 일도 하지만 영화계에서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주는 일도 하잖아요. 어떤 일을 할 때 한번 하고 인연이 끝나는 사람도 있고 같이 자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 차이가 뭘까를 생각했어요. 일단 협업이 잘 되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어요.
주문한 작업을 컨폼할 때도 중요해요. 특정 장면에 맞는 음악은 사실 수천 가지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제안한 음악 결과물이 상상과 달라도, 큰 방향이 맞고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오케이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감독들과 기분 좋게 일했죠. 반면 내 그림과 맞지 않다고 계속 다른 것을 요구하면 결국 평소 자기가 익숙하게 듣던 수준의 음악이 나옵니다. 가요만 듣던 사람은 가요가 나와야, 오케이를 하거든요."
-결국 탁월한 협업은 탁월한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군요.
"맞아요. 그러기 위해서 첫째는 잘하는 사람과 일할 것. 둘째는 협업자의 결과물이 내 상상과 다르더라도, 방향이 맞으면 그냥 가요. 내 취향은 여러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니, 열어 두자는 거죠. 그러면 다들 신나게 일하고 새로운 게 나와요. 저는 영화 음악을 작업하면서 남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훈련이 됐어요."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나홍진, 연상호, 이경미… 함께 일한 감독들은 다들 탁월한 협업자들이었나요?
"그렇죠. 그분들도 저한테서 몰랐던 것, 신선한 것을 얻어내야 이익이잖아요. 자기 머릿속에 원래 있던 것을 꺼내주는 사람에게 왜 음악을 부탁하겠어요? 저는 그 과정을 밴드의 협업에 적용했어요. 그러면 좋은 작업이 안 나올 수가 없어요. 충돌은 있지만 목표는 같으니까요."
최근에 작업한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최고의 음악 작업으로 꼽고 있다. 현재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을 작업 중이라고. |
-들어보면 이 모든 게 축적의 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엔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음악까지 장영규 타이틀이 나와서 놀랐어요.
"하하. 어쩌다 보니 단계별로 끊김 없이 나오고 또 나오네요."
-소통의 기쁨이 정말 크겠습니다.
"속도와 반응이 너무 빨라 당황스러울 정도예요. ‘보건교사 안은영'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야기보다 그림이 먼저 그려졌어요. 젤리 괴물, 무기 등 다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이경미 감독에게 비주얼 디렉터를 소개해줬어요. 저는 판타지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도와줄까, 빠져들어 가게 할까를, 많이 연구했죠."
-‘보건교사 안은영'도 이날치 음악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합니다. 자연스러운 중독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미소지으며)저는 음악의 화성이 아니라 구조에 매력을 느껴요. 작업 방식도 화성보다 구조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리듬으로 구조를 설계하는데, 거기서 중독적인 흥이 터지는 거죠. ‘수궁가'의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도 5분 정도의 곡에 ‘범 내려온다'라는 후렴구가 수십 번이 나오죠. 멤버들이 이렇게 많이 반복해야 하냐,고 했는데 저는 이 만큼은 해야 한다고 했어요. 나를 믿으라고요, 하하.
영화 음악도 화성보다 리듬을 중시하는 감독들이 저를 많이 찾았어요. 특히 2000년대 초에 작업했던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는 지금도 많은 분이 찾아 듣고 있어요. ‘전우치' 작곡가가 이날치에 있대… 이렇게 계보를 찾으며 즐거워해요. 저도 모르는 사이 ‘전우치'가 이날치의 상위 개념으로 있더라고요."
-대중들은 이날치의 조상이 전우치라고 생각해요(웃음). 20년 전에 이미 궁중 음악에 뽕짝을 섞어서 스윙하듯 비벼냈으니! 요즘은 ‘보건 교사 안은영’에서 ‘전우치'까지 장영규의 리듬을 타고 스타일을 추적해가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하. 저는 지금 영화 음악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요. 세대교체가 빠른 업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으니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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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움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새로운 것을 잘 섞었기에 가능했겠지요?
"뻔하지 않게 하려고 했어요. 장영규라는 스타일이 드러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감독은 그들이 원하는 걸 찾아가고, 저는 제 색깔을 유지하면서 균형을 맞춰온 거죠."
-장영규에게 리듬이란 무엇이죠?
"제 자신. 저는 리듬에서 시작해서 리듬으로 끝나요. 음악을 섞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리듬이 있어요. 그건 장르로서의 리듬이 아니라 소리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리듬이에요. 그게 충돌되면서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저는 그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 가령 드럼을 칠 때 리듬과 자동차 바퀴의 리듬, 인쇄기 돌아가는 리듬… 그런 걸 그걸 음악적으로 정리하고 새롭게 배열시키는 게 제 관심사예요.
판소리 리듬도 정말 이상해요. 미디도 박자도 없어요. 말이 나오는 대로 흐르죠. 소리꾼 4명이 어우러지면서 5박을 4박으로 좁히기도 하고, 끼워 넣기도 해요. 그렇게 신비한 엇박이 만들어져요. 악보도 없고, 글자로 표시해 가면서 하죠. 희한해요. 규칙이 없는데 또 규칙이 있어요. 리듬이 몸 안에 있으니 몸을 조금씩 바꾸는 거예요."
-그 리듬에 취해 ‘1일1범 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판소리를 하루에 한 번씩 듣는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는 단지 밴드가 살아남아 오래 활동하기 위해서 시장이 필요했어요. 이날치로 전통 음악을 알리겠다는 게 목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고리타분한 포장을 걷어내니 전통이 이 시대에 가장 앞선 팝이었어요. 다들 신나게 춤을 추니, 소리꾼들도 더 자극을 받고요."
-K흥이라는 말도 생겼어요. 저는 그 흥이 장영규가 뽑아낸 새로운 음악 리듬인 동시에, 팀원과 파트너들이 흥이 나게 일하게 만드는 장영규만의 존중의 리더십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하. 일단 한보다는 흥이라서 너무 좋고요. 흥을 내서 협업해야 좋은 게 나와요. 재밌어야 시작할 마음이 동하고, 즐거워야 결과물이 좋아요. 그런데 다들 지나치게 열심히들 하더라고요. 하하."
-사람들을 그토록 몰입시키는 정체는 ‘새로움’인가요?
"저는 새로운 건 없다고 생각해요.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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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하이브리드 리듬의 세계가 열렸잖아요?
"그게 바로 동시대성이죠. 저는 판소리를 듣기 힘든 옛날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현재의 음악으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출발부터 그랬어요. 사실 소리꾼들이 수련한 판소리를 팝으로 만드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웃음). 한편에선 전통을 이용한다고 오해도 받죠. 하지만 저는 갑자기 퓨전 국악을 한 게 아니에요. 오랫동안 지켜보고 연구하면서 결국 다른 접근법을 만들어낸 거죠."
양극단을 충돌 없이 붙이는 것. 개성을 해치지 않고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같은 다양성의 시대가 원하는 최고의 새로움이 아닐까. 전통 공예와 디지털 그래픽, EDM과 판소리가 서로 환대하며 섞여 노는 것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위계를 이루지 않고 환상의 협업을 이뤄낸 이날치의 비주얼과 사운드처럼.
-요즘엔 어떤 고민을 하나요?
"하하. 저는 고민은 별로 없어요.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요. 작업 속도도 빨라서 많이 만든 후에 과감하게 버립니다. 고민하지 않고 잘 버리는 게 저의 창작 루틴이에요."
-고민이 없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네.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어요. 심각하지 않아요. 매사 편안합니다. 영화 음악은 마감 직전에 클릭해서 보내기도 해요(웃음)."
-촉이 좋은 편이지요?
"(미소 지으며)그냥 제 귀에 들려요. 이거랑 저거랑 붙이면 좋겠다. 하하. 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이죠. 그들 옆에서 마음을 열고 수용 범위를 넓히는 게 훈련이 됐어요. 그런데 좋은 인연도, 황홀한 우연도 포착하지 않으면 사라져요. 저는 매끄럽지 않은 희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영향도 받고 도움도 받았어요. 음악만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넓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일하는 게 즐거운가요?
"네. 저는 일하면서 놀아요. 일하는 즐거움이 크죠. 감독들과도 따로 만나 놀아본 적이 없어요."
-미니멀리스트인가요? 맥시멀리스트인가요?
"미니멀리스트예요. 여러 장르 사람을 만나도 가지치기를 잘하지요. 작곡할 때도 만족이 안 되고 발전 가능성이 없는 부분은 초반에 미련없이 버려요. 긴 시간 공들여 수정하지 않습니다."
-밴드의 꿈은 언제부터 꿨나요?
"초등학생 때 산울림과 퀸을 보고 친구 두 명과 카피 밴드를 만들었어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탬버린과 멜로디언을 갖고 말도 안 되는 밴드를 했어요. 중학교에 가서야 봐줄 만한 밴드를 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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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는 당신에게 무엇이지요?
"리듬과 화성의 중간 지대. 제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악기이자, 저를 잘 받아주는 악기. 모든 음악의 베이스가 되는 악기죠."
-마지막으로 고여서 썩지 않고 새롭게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어 하는 이 시대의 창작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익숙한 경험, 자기만의 장르에 갇혀 있으면 금세 낡아버립니다. 의도적으로라도 다른 장르의 공간, 사람, 분위기에 자신을 자주 노출하세요. 저는 다행히 특이하고 대담한 취향의 사람들과 섞여 지냈고, 그때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퍼포먼스가 큰 자산이 됐어요.
뻔한 말 같지만… 영화, 연극, 패션, 건축 다 모여서 어울리고 그 다양성을 수용한 경험이 엄청난 창작의 재료가 될 거예요. 어떤 형태든 소셜 믹스의 씨앗을 뿌리세요. 연극은 대학로, 밴드는 홍대, 패션은 청담동… 한곳에 머물지 말고 다른 동네에서 어울리고 섞이세요."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