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 둘리〉김수정 작가
오랜 시간 우리 마음속에 동심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아기공룡 둘리>의 작가 김수정.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해온 그에게 영원한 아기공룡, 둘리는 어떤 의미일까.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의 총감독이자 둘리의 아버지인 김수정 작가에게 재개봉을 맞은 소감을 물었다.
<아기공룡 둘리>의 유일한 극장판이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개봉했습니다. 27년 만에 관객을 다시 만나는 둘리의 작가로서 소감이 궁금합니다.
둘리가 탄생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에 신작이 아닌 1996년 작품으로 팬들을 찾아뵙게 되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게으르고 무심했습니다. 반성합니다.(웃음)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이번 리마스터링 버전의 관람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이 콘텐츠는 지금도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굳이 포인트를 들자면, 과거 둘리의 만행(?)에 열광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아이들이 자라 어느새 고길동 씨의 절대적인 팬이 된 지금, 극장의 큰 화면을 통해 새롭게 둘리의 팬으로 입문하게 된 자녀들과 추억을 쌓고 공감하는 현재이자 과거로 향하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수정 작가 |
ⓒ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스틸 |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에 관한 작가님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1996년 당시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간 작품인데, 떠올렸을 때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기획부터 마무리, 마케팅까지 제가 직접 발로 뛰며 완성한 작품입니다. 27년이 지났지만 그때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첫 원화를 보고 수정 지시를 엄청나게 많이 한 날 뿔난 원화 맨의 일성, “총감독이 수정이니까 김수정보고 수정하라 그래!” 음악(포스트프러덕션) 팀을 콘택트하던 날, 일이 늦어져 지금의 아내인 사랑하는 여인을 몇 시간 동안 호텔 커피숍에서 기다리게 한 날, 유럽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심각하게 또치 노래 가사를 쓰던 일, 뭐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에피소드가 많았죠.(웃음)
둘리와 고길동 중 누가 더 불쌍하냐는 질문에 모두 불쌍하고, 서로 부대끼며 사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셨죠. 지금 작가님의 ‘최애캐’는 누구인가요?
글쎄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요? 따로따로가 아니라 함께 있어야 더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최근 재미있게 보신 콘텐츠가 궁금합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드라마 무엇이든 좋습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문신을 한 신부님>, <오마주>, <해피 버스데이>, <세자매> 등 재밌는 작품을 많이 봤어요.(웃음)
ⓒ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스틸 |
작가님이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은 무엇인지, 기록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파고 파고 또 파는 거죠.(웃음) 최근 들어 그리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네요.
<아기공룡 둘리>와 더불어 <○달자의 봄>, <날자 고도리>, <천상천하> 등의 작품을 발표하셨습니다. 작품들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또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둘리와 마찬가지로 저에게는 다 소중한 자식들입니다. <○달자의 봄>, <날자 고도리>, <일곱개의 숟가락> 등 지금까지 그려온 만화 모두 아이디어 구상부터 스토리, 캐릭터 디자인, 연출, 지우개질까지, 어느 하나 저의 심장과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올해는 <아기공룡 둘리: 방부제 소녀들의 지구 대침공> 단행본 만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3년 개봉 예정으로 준비했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인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제작이 무산되어 그동안 묻어뒀던 스토리를 꺼내 만화로 그리려고 해요.
ⓒ 김수정 작가 |
단행본 만화의 내용을 살짝 귀띔해주세요.
외계 소녀들의 지구 찬탈 과정을 담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둘리 일당과 공룡 시대에서 온 둘리 이모 ‘성희’의 활약으로 물리친다는 다소 해괴하고 황당한 이야기입니다.(웃음) 길동 씨의 야비한 활약은 덤이고요.
어떤 사람은 ‘불쌍한 고길동’을, 어떤 사람은 패러디된 둘리를, 누군가는 어릴 적 사랑했던 둘리를 기억해요. 누구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지금 시대에 <아기공룡 둘리>만의 개성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둘리는 참 말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캐릭터죠. 게다가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순수 악동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반면 길동 씨는 자기 재산도 지켜야 하고, 애들도 키워야 하고, 직장에서도 안 잘려야 하죠.(웃음) 이게 알고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잖아요. 수많은 황당무계한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 삶과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의 일상이 투영된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며 함께 울고 화내고 웃으며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둘리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요?
종이로 된 만화 월간지에서 출발해 TV 애니메이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거치며 ‘둘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마흔 살을 맞은 둘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늘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아기 공룡 한 마리.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동심은 무엇인지요?
동심은 꿈꾸는 마음이 아닐까요? 동심을 잃으면 꿈도 함께 잃으니까요.
ⓒ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스틸 |
둘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캐릭터와 함께 기억하는 것이 애니메이션 안의 노래인데요. 지면 만화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넘어오면서의 자연스러운 변화였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시 이런 변화를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사실 처음에 TV로 둘리가 나왔을 때는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웃음) 잡지 만화로 출발했다 보니, TV로 방영되었을 때는 퀄리티가 많이 떨어졌던 거죠. 그럼에도 어린이들이 TV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주었어요. <떠돌이 까치> 이후 두 번째 국산 애니메이션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고요. TV 애니메이션 버전의 둘리가 실망스러워서 제가 1996년에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의 감독을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아기공룡 둘리>의 수록곡은요?
다 좋은데, 특히 극장판에 삽입된 ‘또치의 노래’를 좋아해요.(웃음)
둘리의 스핀오프 버전이 탄생한다면, 둘리의 친구들이나 다른 인물 중, 전사를 더 설명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단행본 만화에 관련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존의 캐릭터 모습이 더 다채롭게 보일 것 같아요. 아마 길동 씨의 한층 인간적인 면모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시대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다양한 미디어의 영향을 받고, 접하는 콘텐츠의 양도 많은데요. 어린이들이 리마스터링 버전의 <아기공룡 둘리>를 본다면 어떤 점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지금의 어린이들은 일단 만화책 속 둘리가 낯설 것이고, 알더라도 SBS에서 방영한 2009년 버전의 둘리일 거예요. 이번 ‘얼음별 대모험’으로 둘리를 최초로 접할 수도 있겠죠. 제목처럼, 극장판은 꿈과 상상력이 응축된 이야기거든요. 어린이들이 처음 보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인류가 우주를 알기 위해 로켓도 쏘아 올리고,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주에 가볼 수 없잖아요.(웃음)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별도 달도 있고 ‘얼음별’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면서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으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글.황소연 | 사진제공.둘리나라 | 스틸제공. 워터홀컴퍼니(주)